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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icial Kes Jun 21. 2020

나는 그저 억울하기 싫었다.

이 시국에 채용을 거절하고 오리알이 되다.

 올해 한 회사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스타벅스를 다니다가 늦은 나이로 취업 시장에 문을 두드린 나에게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게다가 회사는 상장된 기업에 국내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가진 제품도 있는 이름 값있는 회사였다. 지난 하반기에 모조리 탈락하고 힘든 겨울을 버텨낸 나에게 온 행운 같은 보상이라고 느껴졌다. 바로 답장을 보내 인터뷰 일정을 잡고 부푼 마음을 가지고 회사 본사로 향했다.


 첫 번째는 실무자 인터뷰였다. 직무는 온라인/홈쇼핑 영업직이었고 이커머스 시장에 실무자가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본사 건물은 매우 깔끔했고 자사 제품 전시관이 있을 정도로 으리으리했다. 이전에 면접 본 회사들이 비교적 작은 중소기업이어서 본사 건물이 없었고 몇 개의 층을 쓰는 것을 봐왔기에 더 크게 느껴졌다. 

'나에게도 이런 기회가 주어지는구나' 그리고 꼭 붙어야겠다는 생각에 깊이 빠져들었다. 하지만, 실무자 인터뷰가 끝난 뒤, 나는 쓸쓸한 마음을 가진 채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술 잘 마시나요? 

담배 피우시나요? 

주말 출근 괜찮아요? 

저희 회사가 야근을 지향하지는 않지만 불가피하게 있을 수 있는데 괜찮으신가요?

마지막으로, 우리 회사 상명하복이 있으니까 고려해달라고 했다.


 이미 이런 질문 속에서 나는 마음속에서 이 회사를 지워가기 시작했다. 나를 필요로 하기보다 이 사람들은 버틸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 능력이 대단한 것은 아니고 회사도 신입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내가 적어도 나를 필요로 하고 나 역시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싶었다. 부당함과 억울함을 견디고 버티는 삶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질문들 속에서 나에게 아쉬움을 깊이 남겼던 것은 가장 처음에 받은 질문인 회사 지원동기였다. 나는 온라인과 홈쇼핑 직무에 관련한 내 경험과 관심을 말씀드렸으나 그런 것 말고 우리 회사의 괜찮은 회사 비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되물으셨다. 당연히 좋다고 했고 내가 미리 확인한 긍정적인 기사 내용을 토대로 말씀드렸다. 이에 대한 대답은 그런 것은 그냥 회사 배포 자료라고 했다. 그 당시 도대체 무슨 대답을 기대했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인터뷰를 하는 것은 인사과에서 보는 것과 직접 팀원이 보는 시각이 달라서 이런 자리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이 인사과에서 뽑는 애들이 계속 나가니까 우리가 직접 보고 뽑는 게 낫겠다는 말로 해석됐다. 순간 내가 발을 딛은 취업 시장의 이면을 직접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취업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던 나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짧은 인터뷰였지만 분당선을 타고 집을 오는 길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취업을 하려면 이런 것들을 감당해야 하는 걸까? 이건 너무 억울한 일인데. 내가 생각하는 직장은 생각을 나누고 치열하고 서로의 존중이 있고 아니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존중은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능력이 그거뿐인 걸까 나는 이런 직장을 다녀야 하는 걸까? 정말 고민이 많이 들고 자괴감도 많이 들었다. 나는 항상 이런 억울함들이 싫었다. 그래서 항상 불만이 있었고 항상 목소리를 내었다. 자연스럽게 내 과거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나는 조직에서 항상 불순분자 같은 존재였다.


 군대에서도 불합리함에 목소리를 내었고 스타벅스를 다닐 때도 부당함에 목소리를 내었다. 그 순간들은 매우 나를 힘들게 했지만 적어도 나는 당당했다. 누군가는 이런 모습에 적응 못하는 사람 혹은 순응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고는 하는데 내 입장에서는 스스로가 노예가 되려고 하는 꼴 같았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못하는 순간 우리는 바보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사회는 바보를 찾고 있는 것 같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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