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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icial Kes Sep 28. 2021

진 교수가 죽었다.

나로부터 시작해 나로 끝난다.

 이 소설은 내가 대학 시절 문학 동아리에서 썼던 소설이다. 사실 매우 부족하기 그지없는 소설이지만 노트북에서 서서히 잊혀가는 것보다 브런치에서 가끔 꺼내보고자 올려본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써가며 나 중에는 작중 배경인 대학원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대학원생들을 인터뷰하며 완성이라는 말을 품고 싶었으나 3년째 진전이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을 썼을 때 신나는 기분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가끔씩 삶에 지칠 때면 이 소설을 보면서 힘을 얻고 싶고 앞으로 계속 써나가겠다는 마음을 다지는 부적으로 함께 했으면 좋겠다. 사실 부적보다는 완성시켜 마음속 부채를 덜고 싶다.

 

    추가로 이 소설에 대한 에피소드를 전하자면 학교 온 건물에 이 소설 첫 부분만을 복사해 여기저기 붙여놨다. 내 소설을 재미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페이스북에 페이지를 만들어놓고 복사본 아래에 주소를 남겼다. 그리고 소설 이후를 보고 싶으면 페이지 좋아요를 눌러 달라고 했다. 그 당시 내가 봐도 관종 같다며 스스로를 생각하며 혼자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실없이 웃으며 벽지에 소설을 붙였다. 10개가 넘으면 소설 뒷부분을 올리겠다고 했으나 좋아요는 10을 넘지 못했고 복사본에 조롱 섞인 댓글이 있어 혼자 씁쓸하기도 했다. 그래도 지나가다가 내 소설을 보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나름 뿌듯했다.

  



 진 교수가 죽었다고 한다. 대체 누가 그를 죽였을까. 도현은 책상 앞에 앉아 전화를 받고 난 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는 바로 일어나 급히 나갈 채비를 하다 그만두고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일 11시까지 교수실로 논문 들고 와라’


 핸드폰 메시지 창에 아직도 진 교수의 메시지가 상단에 있었다. 그의 마지막 문자 메시지는 마치 그가 아직 살아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저께 진 교수의 마지막 문자 메시지를 받고 급하게 내일 약속을 취소했다. 논문 심사를 앞두고 지난 몇 달 내내 쉴 틈 없이 도서관에서 머리를 싸매고 진 교수의 지도라는 이름 아래 행해졌던 폭언들과 손버릇들은 도현을 벼랑 끝까지 내밀었었다. 

 논문을 다시금 점검하고 있던 중 갑작스러운 진 교수는 출장 소식을 전했고 도현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잠깐의 자유라 생각했던 걸까? 자유 치고는 복잡한 기분,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도현이 그를 마지막으로 본 31일 저녁, 그가 없는 동안 열심히 하라며 고운 손으로 뺨을 툭툭 건드렸다. 도현은 찝찝하고 억울한 기분을 그대도 집으로 가져와 바로 침대에 누웠고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하얀색 천장이 아무 소리 없이 정적을 지켰다. 눈에서 점점 천장이 가까워지면서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그날 밤 도현은 예전에 자주 꾸던 꿈을 다시 꾸게 되었다. 어렸을 적 그는 지금 꾸는 꿈과 몽유병 때문에 오랫동안 고생했던 적이 있었다. 그 꿈은 내용은 항상 똑같았다. 매번 컨테이너만 한 블록들이 하늘 위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쌓여있었다. 도현은 그 위로 그 블록들을 쌓아 올려야만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럴만한 힘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저 무기력함을 느끼며 안절부절 지켜봐야 한다. 더욱 비참한 것은 그 블록들이 무너지리란 걸 그는 예견하고 있다. 하지만 해내야만 한다. 해내야만 한다. 무너질 블록을 다시 쌓아 올려야만 한다.


 밤새 무기력함 속에서 지낸 후 악몽 같은 아침을 맞이했다. 그대로 눈을 감고 멍하니 오른손을 뻗어 핸드폰을 찾았다. 바로 눈에 보이는 것은 진 교수의 메시지였다. 출장을 간다는 그는 난데없이 도현을 교수실로 부른 것이었다. 허겁지겁 짐을 챙기고 양치와 세수만 간단히 한 채 모자를 뒤집어쓰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는 주말이라 그런지 배차 간격이 너무 느렸다. 어렵게 학교에 도착하여 가기 전에 다시 한번 논문 파일 수정본을 복사하고 시계를 보니 10시 56분, 간신히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교수동으로 올라가는 계단 하나하나가 내 발목을 붙잡는 듯 다리는 무거웠다. 겨우 한 걸음 한 걸음 옮겨 진성한 교수 연구실 문 앞에서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보니 교수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허탈한 도현은 진이 다 빠진 채 의자에 걸터앉았다. 

앉아 보니 학교는 정말 조용했다. 이제야 보니 밖은 화창했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앞을 보니 교수의 자리, 진 교수의 자리가 보였다. 저 자리를 정말 많은 것을 의미했다. 내가 언젠간 앉을지 모르는 자리, 너무 낯설어 보였다. 지금의 이 힘듦이 저 자리를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닐 텐데 도대체 나는 무엇을 쫓고 있는 걸까? 아니면 쫓기고 있는 걸까? 그 순간 저 멀리서 남자 구두 굽 소리가 울려 퍼져왔다.

이윽고 구두 소리가 멈추고 문이 열리며 진 교수가 들어왔다.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드렸다.

‘뭘 서서 있어, 앉지 그래’

그의 왼손에는 술이 담긴 봉지가 들려 있었다. 도현은 그가 왜 자신을 불렀는지 알 수 있었다. 의자에 털썩 앉으며 진 교수는 몸을 의자에 완전히 기대었다. 그리고는 천장을 보며 눈을 감았다.

‘하아 씨발 좆같은 세상, 논문 심사 교수가 갑작스럽게 바뀌어서 말이야. 이거 원,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 도현아 네가 봐도 내가 시발 자격이 없어 보이냐? 네 지도 교수가 병신으로 보이냐는 말이야.

그는 이미 술을 몇 잔 한 것인지 아니면 간밤에 마신 술이 덜 깬 건지 어느 정도 취한 듯 보였다. 도현은 어떤 대답도 하기 어려워 그저 묵묵부답으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생각했다. 빨리 뭐라도 말해야겠다는 그의 바람과 달리 머릿속은 밤새 악몽 속에서 보낸 탓인지 정신이 흐리멍덩했다.

‘휴… 저기서 종이컵 좀 가져와라, 이 씨발 새끼들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빡통 새끼들 교수직 달면 다 같은 교수인 줄 아네. 씨발놈들 허허.’

도현은 종이컵은 캐비닛에서 꺼내어 탁자에 두고 진 교수가 가져온 병맥주를 꺼내어 병을 따려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별안간 손이 얼굴로 날아왔다. ‘짝’ 소리와 함께 도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야 이 씹새끼야, 지도 교수가 말을 했으면 대꾸를 해야 될 거 아니야? 하 새끼 오냐오냐하니까 아주 씨발 기어올라. 너 씨발 그래서 교수될 수 있을 거 같아? 아니 박사 학위는 따겠냐고, 니 새끼가 아무리 잘해도... 이 새끼가 아주. 

‘죄송합니다. 교수님…’

도현은 그저 아무 일 없다는 듯 종이컵에 맥주를 따르고 앉았다. 그리고 눈앞에 들어온 수많은 책장 속 책들. 몇 평 남짓한 이 공간에 속속히 세로로 꽂힌 책들은 마치 세로줄 철창인 듯 보였다. 문 쪽으로 앉아 있는 진 교수, 도현에게는 피할 곳이 없어 보였다.

‘너도 알지? 내가 씨발 논문을 얼마나 써댔는지? 이 개새끼들은 그걸 몰라.

실제로 진석한 교수는 유능한 교수였다. 이 때문에 주변에 말이 많았던 진 교수를 지도 교수로 택한 이유였다. 가장 권위 있는 영어 관련 논문집에 비영어권 국가에서 그의 논문이 최초로 실렸고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인맥이라는 이름으로 권위에 걸맞은 대접을 못 받고 있던 것 같았다. 아마 이번 논문 평가 교수에서 제외된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으로 생각했다. 대학원생 사이에 퍼진 소문으로는 더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의 눈 밖에 철저하게 벗어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아무도 몰랐다. 사실 그딴 건 관심도 없었다. 다만 빨리 학위를 따고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아니 지금 당장 이곳을 뜨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건 진 교수가 한 잔을 바로 들이켜고 나에게로 넘긴 잔이었다.

“한 잔 받아라”

잔을 받아 들고 술이 잔이 담기는 동안 뺨이 욱신거렸다. 이 순간 도대체 무얼 하는 걸까? 그렇게 진 교수는 나를 모욕하고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시간을 채웠다. 그저 도현은 주는 술을 받으며 샌드백 노릇을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의 주사에 무덤덤해 질 무렵 눈앞에 진 교수는 술에 취한 것인지 혼잣말을 종종 내뱉으며 술잔을 비워나갔다. 도현은 조용히 진 교수가 취하길 바랄 뿐이었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니 취기가 더 돌았다. 비몽사몽 상태로 비틀거리며 소변기 앞에 겨우 섰다. 그는 몸을 지탱하기 힘들어 그저 머리를 벽에 박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몇 번을 벽에 머리를 박았다. 고요한 정적이 속에서 숨소리와 급하게 뛰는 심장소리가 그를 정신없게 만들었다. 겨우 심호흡을 하며 뒤돌아서서 교수실로 다시 향했다. 진 교수는 테이블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다시 자리에 앉아서 물을 한 잔 들이켰다. 도현은 가만히 진 교수를 바라보며 욱신거리는 머리를 감쌌다. 마치 동물원에 온 듯 그를 찬찬히 살폈다. 간간히 보이는 흰머리들, 강단 있어 보이는 그의 얼굴 그리고 빳빳하게 다려진 셔츠. 이렇게 가만히 진 교수를 살피고 있으니 죄라도 짓고 있는 듯 겁이 낫다. 이제는 정리를 해야겠다 싶어 조용히 옆에 다가가 교수님을 깨우려고 불렀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시끄럽다는 듯 손짓을 하였다. 그러고 도현은 가만히 진 교수를 내려다보았다.

“그럼 교수님 편하게 침대에서 누워 주무세요.”

도현은 교수님을 부추겨 교수실에 있는 간이침대에 뉘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허공에 인사를 드리고 교수실을 빠져나왔다. 어느새 밖은 어둑어둑해지고 학교 앞은 토요일 저녁이라 술 먹는 젊은 사람들로 붐볐다. 일어서서 걸으니 취기가 더 오르는 기분이었다. 도현의 몸을 계속 비틀거렸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면서 핸드폰을 보았을 때 전화가 3번이나 와있었다. 주연의 전화였다.


“어 주연아 교수님 사무실 갔다가 이제 집 가는 중이야”

도현은 이미 술을 많이 마셨고 진 교수 때문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아 주연의 방문을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주연은 집이 거리가 있어 종종 학교에서 일이 늦게 끝나면 내 자취방에서 자고 갔는데 그걸 모른 체하기는 어려웠다. 그녀에게 끝나면 연락 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으려 하는 찰나에 무슨 일 있냐는 그녀의 말에 그도 모르게 눈물이 흐를뻔했지만 애써 고개를 숙이며 아니라고 어렵게 이야기했다. 집에 도착해 방을 치웠지만 복잡스러운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먼저 샤워를 하고 옷을 새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주연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왔다. 그녀는 집 근처에 있는 분식집에서 만두와 김밥을 사 왔다. 눈빛은 이미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도현은 직접 교수의 갑질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교수 때문에 힘들어하고 그로 인해 생활이 망가져 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오빠, 얼굴 상한 것 좀 봐. 몸 좀 잘 챙기라니까”

주연은 잠깐 다시 나가야 한다며 측은한 눈빛으로 도현을 보고 다시 나갔다. 그런 모습에 도현은 그 자신에게 실망하였다. 못난 나 자신이 싫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는 오늘은 일찍 잠을 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지러운 마음을 정리하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도현을 둘러싸고 있었다. 방금 여자 친구뿐만 아니라 당장 다음 달 월세, 이 자그마한 집에서 머리를 싸매고 보내야 할 앞으로의 시간, 그리고 진 교수. 자신의 손 안에서 과연 모두 해결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내일이 궁금하지 않은 삶, 흔히 자살하는 사람들이 하는 생각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을 굳건히 지켜오던 도덕의 잣대가 깊이 박혀온 탓에 쉽사리 어떤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무기력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것일까? 눈을 떴을 때 주연이가 내 등 뒤에서 나를 안고 있다. 도현은 안는 느낌에 잠이 깨어 정신 차리고 주연에게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이 들어왔을 때 벽 앞에 서서 뭐라 웅얼거렸다는 것이다. 그녀는 적잖게 놀라 다가가 도현이 하는 말을 들어봐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놀랐던 건 울고는 내 모습이었다고 했다. 요즘 스트레스로 다시 몽유병이 찾아온 듯했다. 혼자 사느라 다시 몽유병이 도진 줄 모르고 있었다. 이제 괜찮다고 주연을 안심시키고 워낙 늦은 시간이라 우리는 다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가볍게 입을 맞추며 힘들면 자기에게 말해달라고 속삭였다.

다음날 눈을 떴을 때 옆을 보니 주연은 아직 잠에 빠져있었다. 먼저 씻기로 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칫솔을 집어 들었다. 칫솔을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문득 전에 만나기로 했다가 진 교수와의 약속으로 만나지 못한 영준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잠깐 영준을 떠올리니 진 교수를 혼자 교수실에 두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다시 학교에 가볼까 싶었지만 주말 시간 동안 다시 진 교수를 보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애써 잊어버리려 하고 화장실에서 나와 집에 찬거리가 없어 편의점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영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흐리멍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야 아직도 자냐?’

‘뭐야… 도현이냐’

영준이는 주말에 직장인을 깨우는 것이 아니라며 일장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졸업하고 바로 취직한 그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있었다. 영준은 내일 출근이라며 일찍 저녁을 먹자고 했고 도현은 알았다고 전화를 끊었다. 집으로 김치와 즉석밥을 사서 돌아온 뒤 도현은 김치볶음밥을 했다. 아침이 다 준비되도록 주연은 여전히 자고 있었다.

‘주연아 일어나서 밥 먹자.’

주연은 기지개를 켜고 도현에게 안기며 밥은 이따가 먹으면 안 되냐고 물었다. 그는 그녀를 달래며 일어나게 한 뒤 같이 밥을 먹고 점심 늦게까지 같이 시간을 보냈다. 주연은 그간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풀어놓으며 대학교라는 곳이 얼마나 다사다난한지 다시 확인시켜주었다. 나 역시 몇 달간 많은 일이 있었고 그녀에게 털어놓고 싶었지만 다 늘어놓을 수는 없는 실정이었다. 그녀와 있는 시간은 항상 즐거웠다. 관심 분야 이 외에 조용한 도현과 달리 주연은 항상 어떤 주제로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너무도 짧은 3시간이 지나고 갈 시간이 되자 이것저것 챙기며 주연은 내일이 공강이라 학교를 안 온다고 하고 화요일에 보자고 했다. 도현은 영준을 볼 시간이 다 되었기에 같이 집을 나서면서 주연을 먼저 정류장에서 배웅하기로 했다. 주연은 몇 달 사이 스트레스로 변한 도현이 걱정되었는지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이윽고 버스가 저 멀리 보이자 살짝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버스에 올라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었다. 도현은 또 한 번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렇게 그녀를 보내고 바로 전화가 울렸다. 영준이었다.


‘나 거기 근방이거든 조금만 기다려’

잠시 후 검은색 차가 도현을 맞이했다. 영준은 잘 아는 밥집이 있다며 도현을 데리고 갔다. 차를 타고 가면서 별일 없는지 이것저것 안부를 물었다. 내심 도현을 걱정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영준은 그를 데리고 돼지갈빗집에 도착했다. 돼지갈비는 도현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요즘 회사 일은 어떠냐’

영준은 입사 후 4년 차가 되었지만 이제 서야 조금 적응이 되고 할 만하다고 하였다. 애초에 긍정적인 성격인 그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것 같았던 그였지만 직장 생활 초기 매번 끌려가야 했던 술자리, 예상외로 군대 같은 수직적인 문화에 힘겨워했다. 술을 아예 못하던 영준에게는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껏 버텨온 걸 보면 사실 학부 시절 착하다고 생각했던 그가 이렇게까지 독한 친구일 거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많이 나약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제 박사학위를 시작한 지 2년 차인 도현은 앞길이 걱정되었다. 그리고 진 교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영준도 같은 학과였기에 진 교수를 알고 있었다. 어느 정도 교수에 대한 평이 학부생에게도 알려져 있었지만 직접 마주한 적은 없기에 만날 때마다 그에 관해서 물었다. 진 교수에게 당한 만행들을 영진에게도 자세히 말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나오는 표정들과 몸짓들은 숨길 수 없었던 탓인지 매번 도현을 걱정하듯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너 정말 지도 교수를 왜 진 교수로 택한 거야?’

도현은 이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지만, 딱히 명확한 대답을 주기 어려웠다. 할 사람이 이 사람밖에 없었다고 할지, 많은 논문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할지, 별생각이 없었다고 할지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나갔지만, 딱히 정답이라고 혹은 괜찮은 변명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없었다. 지도 교수를 정할 때 신중하게 연구실 실적과 연구를 어떤 것을 하는지 살펴보면서 택하였다. 그런데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되어버렸다. 물론 그때는 애초에 도현이 학구적인 성격이었기에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대학원을 진학하긴 하였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지난 뒤 종착지는 항상 ‘나도 잘 모르겠어.’였다. 이제는 이것이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한참 대학원 생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후 생각을 비우려던 만남이 머리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순간 잊어버리고자 술을 몇 잔 더 나누고 취기가 돌 때쯤 영준은 멋쩍게 웃음 짓더니 자기는 어쩌면 올해 결혼을 하게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야, 오늘 너한테 처음으로 이야기하는 거야. 어디 가서 이야기하지 말고.’

예전에 그의 여자 친구에 대해서 말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가 업무차 다른 부서 사람들과 협업할 일들이 많이 생겼었는데 그때 알게 된 타 부서 여직원과 연애를 시작했다고 이야기했었다. 자연스럽게 도현은 주연을 떠올렸고 어떤 막힘이 없이 자연스럽게 단계를 밟아 가는 영준을 눈앞에 두니 그는 눈에 초점을 잃어갔다.

“정신 차려, 최도현”

술을 어제오늘로 먹다 보니 속도 아프고 머리도 어지러웠다. 영준은 그런 나를 부추기고 차에 태웠다. 영준도 취해있었던지 대리기사 대신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잘못하여 밖에서 잔소리를 듣고 있는 듯했다. 점점 말소리가 멀어져 갔다.

“정신 좀 차려봐, 도현아.”

어느새 보니 내 자취방 앞이었다. 가까스로 잠에서 깨어 차에서 기어 나와 다음에 연락하겠다며 손을 흔들고 영준을 보냈다. 자취방에 들어와 1L 생수를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자취방은 싸늘했고 도현의 책상은 허전했다. 그 옆 책장은 전공 서적들로 꽉 채워있었다. 세로줄로 몸을 비비며 세워진 빼곡히 책들은 순간 도현의 숨을 막히게 했다. 조여 오는 숨통에 정신이 혼미해졌는지 눈앞에 높이 싸인 블록들이 불현듯 나타났다.

“이게 또 무너져 내리는 걸까?”

매번 보는 이 산처럼 쌓여 있는 블록들은 도현을 더욱 옥죄여 왔다. 도대체 무엇일까. 이것이 무엇이길래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걸까. 이내 블록은 점점 크게 흔들리며 또다시 무너질 준비를 하고 있었고 도현은 무기력함에 놓여있었다. 누구도 도와줄 수도 없고 오직 내가 오롯이 짊어져야만 한다. 이 블록들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은 사막 속에서 목이 말라오는 심정이었다. 그 찰나에 순간들은 영원할 것이 느껴지고 깊은 내면에서 오는 그 떨림은 두려움으로 변모해 온몸으로 번져갔다. 그렇게 혼자 서서 어떻게를 외치며 괴로워하다 도현에게 한 가닥 먼지 같은 생각이 스며들고 뒤돌아서서 쓰러져 다시 잠에 들었다.


‘… …’

다음 날 아침 알람 소리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졌다. 겨우 일어나서 어제 책상 위에 놓은 물을 페트병째 들이켜면서 의자에 털썩 앉았다. 머릿속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천장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고 점점 생각이 머릿속을 채워나갔다. 얼마쯤 지났을까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자 씻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씻는 동안 같이 조교 하는 정아에게서 전화가 5통이나 와 있었고 문자 한 통이 와있었다. 바로 그 문자였다.

믿을 수 없었다. 불과 이틀 전에 본 사람이 죽었다니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충격적이었다. 도현의 인생에서 어찌 보면 지금 시기에 가장 중요한 사람이 죽어버렸다. 그다음 막막함이 밀려왔다. 순간 앞길이 깜깜해졌다. 도현은 잠시 의자에 앉아 멍하니 있다가 이내 겉옷을 챙겨 연구소로 향했다. 교수실 쪽으로 다다르니 이미 진 교수는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정아는 경찰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현아... 어떡하니…”

정아는 차가운 계단에 앉아 울먹이며 도현이 오자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일단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도현은 정아를 지나 조심스럽게 교수실로 들어갔다.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교수실 그대로 변함이 없었다. 술을 같이 마시고 난 후 치운 탁자 위로 그대로였고 책장, 간이침대 역시 이상한 점은 없었다. 누가 진 교수를 죽인 걸까. 다시 교수실을 나와 정아 옆에 앉았다.

“정아야 도대체 뭐야?”

정아는 교수님이 내준 과제와 자신의 연구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일찍 교수실을 찾았다고 했다.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 교수님이 간이침대에 누워있었고 부어오른 진 교수 모습에 다가가지 못하고 119에 신고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아마 그녀는 예상하지 못한 죽음을 보았지만 짧은 순간 확실히 체감했을 것이다. 부풀어 오른 모습, 코를 찌르는 냄새, 고요한 정적, 차가운 아침 공기 그리고 죽음을 보고 느껴질 혀끝의 쓰린 맛을 이제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문을 두드린 순간 오로지 공부만 해서 화초처럼 자란 그녀는 문틈으로 새어 나오던 생전 느껴보지 못한 역겨운 냄새에 당황했을 것이고 문을 열자 방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싸늘함에 동공이 흔들리고 다리가 풀렸을 것이다. 도현은 일어나 다시 교수실로 들어가 보았다. 그는 왼손으로 책상을 살며시 쓸었다. 책상을 뒤로 환한 넓은 창 앞에 서서 밖을 바라보았다. 어떤 기분, 어떤 감정 뭐라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었다. 뭐라 지칭할 단어를 못 찾은 그런 상태였다. 잠시 후 밖에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가까워져 왔다. 경찰이었다.

‘여기 이제 이렇게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40대쯤 보이는 경찰관은 도현을 밖으로 안내하고 나중에 정아와 함께 조사에 협조해달라고 했다. 도현과 정아는 조교실로 향했다. 둘은 가는 동안 말이 없었고 도착 후에도 각자의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있었다. 그렇게 밤은 아무 일없다는 듯이 찾아왔다. 학교 병원에 장례식장이 마련되었고 수많은 조문객들이 찾아왔다. 조문객들의 분주한 틈에서 도현은 연구소 사람들과 구석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아진 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말들이 나올지 사뭇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씹새끼, 남의 인생까지 조지고 가버리네.’

한 대학원생의 말이었다. 다들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도대체 왜 죽은 거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누군가 토로했고 이후 그가 인생이 행복한 이유와 불행한 이유를 서로 말하며 고인의 삶을 헤집어보았다. 도현은 어느 편에 서야 할지 확실해졌다. 진 교수, 그는 명석하고 세계적으로 명망이 있는 교수다. 그를 인간적으로 혐오하는 도현조차도 그의 명석함에 움츠러들 때가 있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소신이 강하고 성격도 거칠다. 아니 씨발새끼라는 표현이 가장 적당하다. 그는 항상 옳은 길을 걸어왔기 때문인지 아니면 교수는 학문하는 사람일 뿐 그에게 그만큼의 인성을 연관 짓는 것이 오류일까? 그는 지식이 갖고 있는 폭력성에 젖어 그 아래 있는 사람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던 것 일 수도 있다. 도현은 그를 다시 떠올리자 헛웃음이 나왔다. 왠지 모를 마음 한편에 시원한 바람이 드는 듯했다. 그는 전날 꿈속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했던 그 작은 먼지 같은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리려 애를 썼다. 이내 뭔가 떠올렸는지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정아가 여전히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다리를 오므려 안고 앉아있었다. 그녀는 도대체 뭐 때문에 우는 걸까? 막막해져 버린 미래? 진 교수의 죽음? 후자라면 그렇게 자기도 당해 놓고 정신을 못 차린 건가? 정아는 아마 나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그녀의 몫까지 내가 맡았으니 말이다.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어디가?’

도현은 대답 없이 조용히 옷가지를 챙기고 밤공기를 맞았다. 도현은 매번 숙이고 다니던 고개를 들고 하늘을 응시했다. 하늘은 검었지만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모습에 왜 미처 이런 것들을 보지 못했나 싶었다. 그렇게 조용히 그는 병원 출구로 향했다. 그에게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몇몇 장소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 자주 가던 순댓국집, 혼자 처음 술을 마셨던 파전집, 혼자 논문을 쓰던 24시 카페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와 4년을 함께한 자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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