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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icial Kes Jul 30. 2020

이가 나간 기억

아 맞다! 그런 일도 있었지.

싱크대에 붉은 꽃이 피어난다

깊이 베인 것도 아닌데 이렇게 흘러내리는 걸 보니,

피부 아래 사정은 평일의 기억과 판이했다

막상 눈 앞에 쏟아지는 기억에 마음이 찌릿하다

누가 재촉하는 것도 아닌데.

이가 나간 유리잔은 참 잔인했다

예고도 없이 스스로를 찔러 자결을 택했다.

아팠을까?

그와 달리 비로소 붉은 잔은 생의 감각을 되찾았다.

아마 그는 

이유를 영영 모를 것이다.

깨진 유리 조각 속엔 무던한 그가 있었다.

덜거덕덜거덕 그가 하수구에 걸린 소리다.

오늘의 피는 멈출 생각이 없다.

그는 계속 잃어가고 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오래된 기억을 잊어간다. 자연스러운 일이고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려면 당연히 잊어야 한다. 그런데도 영영 못 잊을 것 같았던 일들을 잊어갈 때면 정말 시간이 흘렀다는 것도 느낀다. 좋았던 기억이든 안 좋았던 기억이든 아련해진다. 이런 게 추억 보정인 듯하다.  

 그렇게 잊어가다가 우연한 계기로 완전히 잊었는지도 모르는 기억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나는 그게 유리잔이었다. 그 유리잔을 쓸 때조차 기억 못 하고 있었던 친구가 이가 나가면서 순간순간 장면들이 떠올랐다. 나쁜 기억도 있고 좋은 기억도 있고. 흐르는 피만큼 쉴 새 없이 기억이 흘러나온다. 내가 잘못한 것, 내가 서운한 것 등등 별의 별것을 생각 해내가면서 점점 기억을 정리해나간다. 마침내 우리는 완전히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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