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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icial Kes Oct 21. 2020

기업 선생님, 저를 좀 봐주세요

포트폴리오 만들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나, 공채는 안될 것 같아'에서 이어서...)


    나는 보다 능동적으로 구직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잘 만들어서 한 100군데 뿌리면 한 곳은 연락 오겠지라는 기대가 나를 컴퓨터 앞으로 앉혔다. 그리고 하루 종일 정보를 찾다가 ppt에 글자 하나 넣지 못하고 뻐근한 뒷목을 부여잡고 대충 컴퓨터를 껐다. 


    침대에 누워 생각해보니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본 적도 없고 PPT를 잘 다루지도 못 했던 걸 그제야 깨달았다. 왜 이리 뒤늦게 깨닫는 게 많은지 하루 이틀 사이에 머릿속의 종이 쉴 새 없이 울렸다. 다음 날 아침 종소리에 멍한 상태로 보는 PPT의 공백이 무서워졌다. TESOL 수업 들으면서 교육 자료로 간단한 PPT 정도 만들어봤고 광고 수업 들으면서 한두 번 정도 PPT를 만들어봤지만 그다지 고퀄은 아니었다. 그래서 광고브랜딩PR관련 수업을 들었을 때는 PPT 제작 쪽은 손을 놓고 있었다. 구성 짜는 것까지 어느 정도 한다고 쳐도 가장 어려운 부분은 내 생각을 어떻게 표현할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 고민을 해결하더라고 내 손은 결코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분명 내 손인데...


    이틀 정도는 유튜브에서 PPT 제작 관련 동영상만 봤다. 계속 따라 하고 또 따라 하고 같은 것을 하는데 왜 결과물이 달라지는지 의아했다. 애초에 3일 안에 만든다는 계획이 일주일로 늘어났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찾고 따라 하고 이후 내 이력들을 하나둘씩 정리해서 집어넣기 시작했다. 참고하려고 본 다양한 고퀄리티 PPT를 보고 내 PPT를 볼 때마다 부끄러웠다. 디자인과를 다니는 학우들에게 정말 존경심이 생겼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미대가 없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하나 같이 잘 만든 것 같은데 식상하다는 평도 있고 생각한 대로 못 만들겠다 등등 혹평도 많았다. 그들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느낄 수 있었고 디자인에도 수준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겨우 사진을 붙이고 자르는 공작을 하는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중간중간 자소서를 써가면서 남은 시간은 PPT 작업에 몰두했다. 내 대학 시절에서 엄청 큰 성과는 없지만 적어도 난 열심히 살아왔고 일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었다. 만드는 과정 중 노력해온 순간을 마주 할 때는 조금은 뿌듯하기도 했다. 물론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 아쉬움도 컸다. 특히, 공모전에서 수상하지 못한 경험들이 왜 더 열심히 하지 못했냐고 핀잔을 주는 것 같았다. 내 PPT가 복잡해지는데도 한 몫했다. 굵직한 경력이 있다면 딱 한 줄 쓰고 관련 이미지를 넣으면 되지만 난 구구절절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렇게 2주 동안 머리를 싸매고 여러 친구들에게 피드백을 받아가면 만든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뭐 사실 완성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생각했던 것을 결과물로 만들어서 기뻤고 그 기세를 살려 사람인에 첨부했다. 게다가 SQLD 자격증도 땄겠다. 내 이력에 추가할 것이 생겨 기쁨은 커져만 갔다. 이대로 서류 합격 소식만 가져만 주면 된다. 그렇게 10 몇 군데를 돌리고 속속히 이력서를 열람했다는 메일이 도착했다. 하지만, 어느 곳에도 연락이 오지도 않았다. 다시 한번 현실 자각 타임. 내 포트폴리오 수준을 알게 되었고 저번에 세운 내 좌우명처럼 빠르게 다르게 영리하게 움직이기로 했다. 더 이상의 좌절의 시간은 시간 낭비였다. 


    문제가 뭘까 싶었는데 만들면서 이미 답은 나왔다. 생각해보니 지원동기가 없는 무작위 지원이었다. 가뜩이나 취업이 힘든데 무작위 지원을 받아줄까 싶었다. 기업에 모셔갈 만큼 대단하지도 않은데 동기가 없다니 좋은 탈락 이유였다. 그래 그러면 회사에 대한 자소서를 추가로 쓰고 포폴을 보여주는 식으로 가자. 마음을 먹었고 자소서를 추가로 쓰거나 내가 정말 가고 싶은 회사는 추가로 회사에 관한 포폴을 만들어 보내자고 전략을 변경했다.


    이따금씩 면접 제의가 왔는데 정말 이상한 회사들이 왔다. 이름을 바꿔가며 면접 제의를 넣는 회사들. 즉, 자기 회사 이르도 못 깔만큼 당당하지 못한 회사들. 야근을 지향하지는 않는 회사 그러나 잡플래닛에 야근이 너무 많다는 리뷰가 넘쳐나는 이중적인 회사. 이 회사가 정말 웃긴 건 야근 없는데 오해를 했다는 뉘앙스에 답글들 때문이었다. 야근한 사람은 넘쳐나는데 회사는 야근이 없다고 댓글을 달고 있다. 하지만, 마냥 웃을 수 없는 건 지금의 이게 내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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