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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여행지, 이니스프리(10)

최고의 순간은 뜻하지 않게 찾아온다.

by ONicial Kes


이 날의 하이라이트


골웨이에서 4일을 보내는 내내 정말 날씨가 안 좋았다. 원체 영국부터 아일랜드까지 날씨 안 좋기로 유명해서 좋은 날씨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여행 내내 막상 흐린 날씨를 보니 나가고 싶은 에너지가 급감했다. 전날 모허의 절벽에서 비 맞으면서 관광을 한 탓에 지치기도 많이 지친 상태였고 게다가 고맙게도 빗소리가 창문을 세차게 뚜드려 아침 일찍 일어나 피곤함은 배가 되었다. 진짜 쉴까 아니면 아일랜드 와서까지 뒹구는 건 아쉬우니 나갈까를 30분 정도 고민하다가 결국 후자를 택했다. 목적지는 저 멀리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또 다른 지방인 슬라이고라는 곳이다. 이 곳은 노벨 문학상을 탄 예이츠의 고향이기도 하고 내가 찾아갈 이니스프리라는 섬이 있는 곳이다. 맞다. 그 화장품 이니스프리의 이름의 어원이 되는 장소이다. 진짜 갑자기 8시 30분까지 고민만 하다가 바로 버스 예매하고 9시까지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갔다. 참 이 때도 몰랐지만 항상 타지 여행을 쉽지 않다는 것을 예상치 못했고 역시나 이번 여정도 순조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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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골웨이를 벗어나서 내륙으로 가자 조금 날씨가 개었다. 정말 깨끗한 하늘에 맑은 구름 창가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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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같아서는 버스에 내려 들판에 누워있고 싶었지만 정말 로컬로 들어와서 무섭기도 했다. 사실 슬라이고가 별로 유명하기 않기에 그렇게 많이 찾는 관광지는 아니다. 구글에서 찾으면 나오 긴 나오지만 아마 간 한국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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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밖으로는 정말 아무것도 없고 난데없이 집 하나씩이 나오는데 여기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사는지 궁금했다. 이 당시 취준을 앞두고 있어서 먹고사는 문제에 몰두해서 이런 생각만 가득했다. 주변에 시내도 안 보이고 농사를 짓는 것 같지도 않고 문명의 이기가 닿지 않을 곳이라고 해야 하나 게다가 사람도 못 만나면 외로울 텐데. 별의별 생각이 들었지만 이 모든 것을 떨치고 살 수 있다면 최적의 장소라고 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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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인가 3시간에 걸쳐 슬라이고에 도착했다. 이상하게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하우스 오브 왁스의 마을 모습 같다고 할까나. 눈에 띄는 것은 강이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다. 근데 강 치고 파도가 심하게 쳐서 인공천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강 바로 앞에 음식점 혹은 가정집이 있어서 한국과 참 환경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강이고 자시고 일단 배고파서 큰 마음을 먹고 한 번 더 돈을 지르기로 했다. 매번 빵 쪼가리로 끼니를 때웠더니 힘들었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돌아가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시간이 촉박했다. 한국이면 저녁 늦게 돌아다녀도 상관없지만 아일랜드는 6시면 온통 깜깜해지기에 조금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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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보고 지금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아일랜드를 횡단하면서 여행했는지 신기하다. 이 음식점은 이탈리아 음식을 하는 걸로 기억하고 평점이 높아서 굉장히 기대했지만... 먹지 못할 만큼 음식이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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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파인애플을 좋아해서... 무슨 세트를 시켰는데 음료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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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전 빵과 수프인데 원래 이런 초록 초록한 수프는 그동안 멀리했지만 맛을 보니 생각 외로 맛있어서 그릇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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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닭? 돼지? 요리였다. 와 살다 살다 이렇게 짤 수는 없다. 반도 못 먹고 두고 나왔다. 주방장이 좋았냐고 물어봤는데 좋았지만 고기가 너무 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외국에서도 할 말은 하고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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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나니 이제 저기까지 가는 문제를 생각해야 했다. 근데 이렇게 까지 안 멀었던 것 같은데 지도로 보니 굉장히 멀어 보인다.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는 글을 보았지만 나는 돈을 아끼자는 마음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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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힘겹네 도착한 길 호. 내가 이 여행지가 가장 좋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어디서도 느낄 수 없었던 적막함을 느낄 수 있어서였다. 나는 적막함이라는 단어는 알고 있었지만 느껴본 적은 없었다. 아마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 눈이라는 개념은 알고 있지만 실제로 본 적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하나.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소리 없는 곳을 찾기란 힘들다. 내가 일부로 오지를 가지 않는 이상 차 지나가는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등 도처에 소리가 있다. 이 호수 위에는 사람들이 사는 타운이 바로 근처인데 정말 조용하다. 우리 집 앞에도 이런 조용한 호수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후부터는 호수 감상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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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주변에는 새들이 정말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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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오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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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저 작은 섬이 이니스프리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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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잘 찍지 못했지만 정말 이 순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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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적한 도시에 산다면 얼마나 평화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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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비가 온 탓인지 산책로가 물웅덩이로 끊겨 있었다. 하지만, 젖는 것을 무릅쓰고 호수 주변 산책로를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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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벤치로 돌아와 앉아있었는데 고니? 한 마리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아마 먹을 것을 줄 것이라고 예상한 듯하다. 마치 이 새는 사람에 익숙하고 강아치처럼 행동했다. 이렇게 가까이서 큰 새를 본 것도 처음이라 매우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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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곳을 상징하는 비석인 듯하다. 여기서 가장 많은 사진을 찍었다. 아침에 이 곳을 방문할까 정말 고민을 많이 했는데 안 왔으면 매우 큰 추억을 만들지 못할 뻔했다. 항상 어디 가는 것을 귀찮아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버스정류장부터는 다음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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