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쓰면서 하는 생각
10월 23일 소비기록 (9,500/9,500)
김 박사님에게 점심 얻어먹고 답례로 커피, 그리고 산책 (5,500)
졸음이 쏟아지는 오후 조 주임님이 사주신 커피에 눈이 번쩍! (-)
씽씽이에 자신감 붙은 셔니와 퇴근 후 동네 한 바퀴, 내리막길 달리고 착지하는 모습에 심쿵. 초코우유 조공. (1,200)
재테크에서 커피값 이야기를 많이 한다. '커피값으로 시작하는 주식투자', '커피값 아껴서 목돈 만들기' 등 재테크를 본격적으로 하기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커피값'이라는 단어를 쿠션어로 쓰는 모양이다.
나도 예전에 커피값을 테마로 한 챌린지 형식의 적금을 아주 잠깐 해본 적 있다. 돈을 모으겠다는 생각보다는 매일 물처럼 마시는 커피 이틀에 한 번꼴이라도 줄여보자는 마음에서 챌린지 적금을 시작했다.
커피를 안 먹은 날, 은행 앱을 켜서 달력에 해당 날짜 인증 버튼을 누르면 내 통장에서 커피값 5천 원이 적금 통장으로 빠져나갔다. 처음엔 양심적으로 안 마신 날만 착실히 인증하다가, 나중에는 커피도 마시고 적금 5천 원도 따로 냈다. 커피는 매일 마셔야겠고 적금 달력은 텅텅 비워두기 부끄러웠으니까.
매일 적금 통장으로 5천 원씩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도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은행에서는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금액에 대한 부담감이 적다는 이유로 커피값 적금 상품을 내놓았을 것이다. 아쉽게도 내가 적금을 쉽게 해지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담감만 적은 것이 아니라 적금을 넣으면서 느끼는 뿌듯함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내 입장에서는 목돈을 굴릴 만큼 큰돈을 모으지도 못하고, 커피도 못 마시게 만드는 애매한 5천 원이었다.
적금으로 빠져나간 5천 원에 비하면, 밥 먹고 마시는 5천 원짜리 커피 한 잔은 제값을 톡톡히 하는 소비다. 아침에 커피 한 잔 마시면 침대에 있던 정신이 얼른 책상으로 복귀한다. 커피가 직장인들에게 괜히 '검은 링거'라 불리겠는가. 원두마다 다양한 맛과 향은 특별한 것 없는 오늘도 어떤 커피를 마실지 기분 좋은 고민을 안겨 준다. 요즘같이 날씨가 좋을 때는 햇볕이 잘 드는 카페테라스에서 커피 한 잔에 가을 한 모금 음미해 본다. 그러다 보면 '행복별 거 없다. 이것이 찐 행복이지‘라는 생각까지 든다.
커피에 5천 원, 적금에 5천 원씩 쓰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커피값은 커피에 써야 한다는 거다. 누구에게는 '그깟' 커피 한 잔 이겠지만 나에게는 이것만큼은 ‘반드시’ 보장받고 싶은 오늘의 행복 한 잔이다.
매일 5천 원씩 모으면 부자는 될 수 없지만 재테크는 맛볼 수 있다. 덤으로 카페인 중독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나는 차라리 아주 맛있는 커피 한 잔 제대로 마시고 열심히 벌어서 매월 일정 금액 적금을 하자는 쪽이다. 물론 적금은 수입이고 커피는 지출의 영역이니 비교 자체가 말이 안 될 수도 있다. 다만 나의 소중한 ‘커피값’이 재테크를 시작할 수 있는 ‘푼돈’으로 비유되지만 않았으면 한다.
<돈 쓰면서 하는 생각 : 오늘 하루 소비한 것들의 기록, 모으는 이야기는 못 해도 쓰는 이야기는 신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