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일요일 밤이라면
벌써 마음이 무거워지고 있었을 거다.
내일 출근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머리 어딘가에서부터 긴장이 시작되니까.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내일도 쉰다는 것.
그 사실이 오늘 하루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었다.
늦게 일어나도 괜찮고,
낮잠을 자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설거지를 내일로 미뤄도 괜찮은 날.
이 느슨함이 주는 안정감은
잠깐이지만 마음을 정돈시켜 준다.
그래서 오늘은 루틴도 잠시 쉬기로 했다.
쉐이크도 패스, 스킨케어도 간단하게,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걸 먼저 꺼내보기로.
누워서 웹소설을 보고,
유튜브 동영상 재생 버튼을 누르고,
오래된 책장을 뒤적이며,
멍하니 커피를 마셨다.
그런데 이상하다.
쉬고 있음에도 어딘가 허전한 기분이 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불안한 걸까,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는 자신이
어쩐지 못난 사람처럼 느껴져서일까.
요즘은 쉬는 것에도 자격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살아야 쉴 수 있고,
바쁘게 움직여야 게으름이 허용되는 시대.
그래서 더더욱 게으름에도
루틴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오늘도 살아냈고,
내일은 더 쉬어도 된다는 걸 기억하면 좋겠다.
게으르고 부족한 오늘이지만
이게 지금의 나고,
이렇게라도 쉰 덕분에
조금은 더 괜찮아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아마도, 그걸 ‘회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오늘은 분명 의미 있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