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편의 아내로 사는 법
부모가 되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아이의 표정과 말투, 행동방식에 내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걸. (우리는 종종 아이의 단점은 아빠 닮았고, 장점은 나 닮았다고 주장하며 사실을 은폐하려 들지만) 내 아이의 어떤 행동이 눈에 거슬린다면 그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반영하는 것일 확률이 아주 높다.
아이뿐만이 아니다. 배우자나 직장 동료의 특정한 행동이나 성격이 유독 신경에 거슬린다면 사실 나도 그와 비슷한 면이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상대방을 통해 나의 모습을 거울처럼 반사해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난폭 운전하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욕을 한 바탕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면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본인도 운전을 험하게 하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남편의 잔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아내일수록 아이에게 잔소리꾼 엄마인 경우가 많다. 쉽게 짜증을 내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짜증을 못 견디고, 바람둥이일수록 바람둥이를 알아본다.
최근에 나는 생면부지의 한 여성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본 일이 있다. 1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다. 엘리베이터 안에 젊은 부부가 타 있었고,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사내아이가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던 참이었다. 아빠가 문을 잡고 아이의 이름을 부르자, 반층 정도 계단을 오르던 아이가 잽싸게 뛰어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순간, 아내가 짜증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왜 애를 못 가게 해?” 함께 타 있는 우리를 의식해서인지 복화술을 사용해 최대한 조용히 이야기했지만, 엘리베이터 안엔 순간 긴장이 감돌았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봉변을 당한 남편은 순간 당황한 듯 고개를 숙였으나, 이대로 당하고만 있기엔 억울했던지 낮은 목소리로 항변했다. “얘가 걸어서 올라간다고 얘기했어?”
남편은 천방지축으로 혼자 뛰어가는 아이를 불러 엘리베이터에 태운 것뿐이다. 하지만 아내의 눈에는 그의 행동이 혼자 걸어가겠다는 아이의 자유의지를 기어이 꺾은 독불장군처럼 보였나 보다. 남편의 반박에 할 말이 없어진 아내의 시선은 아이를 향했다. 아이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창피하기도 하고, 자신이 뭘 잘 못 한건지 정확히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엄마가 눈을 부릅뜨며 생뚱맞은 훈계를 한다. “그 정도 일은 네가 알아서 결정해도 돼!”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도 살짝 후회하고 있다는 걸. 섣불리 화를 내고 보니 화 낼 상황이 아니었고, 하지만, 이미 뱉은 짜증을 주어 담을 수 없어서 애꿎은 아이의 ‘부족한 주체성’을 탓하는 것으로 자신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걸.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 나에게는 꽤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남편과 밥을 먹으며 엘리베이터 사건에 대해 뒷담화의 꽃을 피워보고자 운을 띄웠다. “아까 그 여자 너무하지 않아? 내가 볼 땐 전혀 화낼 상황도 아닌데, 옆에 사람도 있는데서 남편을 그렇게 무안하게 하고 말이야. 애는 또 무슨 죄야?” 같은 남편의 입장을 대변하는 나에게 깊은 공감을 표할 줄 알았던 내 남편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아, 그 엄마가 화난 거였어?”
부적절한 분노에 대한 토론의 장을 기대했던 시도는 그렇게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후 몇 주가 지난 지금, 나는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낸 그 일을 왜 나는 기억 속에 담아 곱씹고 있을까? 왜 남의 일에 흥분해서 식사자리에까지 대화의 소재로 끌어들이려 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그녀의 모습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상황을 섣불리 판단하고 한숨 쉬던 나.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전에 화부터 내던 나. 오해였음이 밝혀져도 나를 정당화하느라 고집스럽게 사과하지 않던 나.
당초 이 글의 의도는 그녀를 성토하기 위함이었다. 돈 벌고 아이 키우느라 한창 스트레스가 많은 시기, 예민해진 부모가 별 것 아닌 일로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눈치 보고 불안해할 아이들을 생각해보자는 얘기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글로 묘사하다 보니 그녀의 모습 속에 내가 보였다. 내가 누구를 지적하고 비난한 자격이 있단 말인가? 그래서, 결국 처음부터 다시 쓸 수밖에 없었다. 글을 마치고 나니 그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좀 오글거리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스승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남과 나로 분리된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사실 하나의 큰 덩어리가 아닐까? 서로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며 깨닫고 성장하는 하나의 큰 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