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희 Jul 27. 2022

하와이 우리집

우리 집 거실과 에메랄드 빛으로 반짝이는 태평양 사이에는 투명한 통유리가 있다. 해무와 바닷바람, 간간이 내리는 비에도 불구하고 늘 얼마나 깨끗하게 닦여있는지 매년 지불하는 관리비가 전혀 아깝지 않다. 특수 제작된 스테인리스 프레임의 가느다란 선과 중간중간 얇게 드리운 리넨 커튼이 없었다면 이곳에 오는 손님들은 (심지어 주인인 나 조차도) 수십 번 이마를 부딪쳤을 것이다.


실제로 몇 주 전 테이블에 남아있던 음식을 보고 달려들던 물새 한 마리가 창문에 머리를 부딪쳐 기절한 일이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새가 밤새 마음에 걸렸다. 다음 날 아침  묻어주러 밖에 나가보니 새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살짝 기절했다가 밤 사이 정신을 차리고 날아간 것인지 어슬렁 거리던 야생 너구리에게 물려 간 것인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그날 이후로 나는 집 앞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고 들어올 때마다 새가 떨어져 있던 자리를 흘깃 보며 ‘Peace be with you’라고 마음속으로 속삭인다. 어디에 있든 평화롭길.


우리 집은 타운하우스 내에 있다. 골프장을 낀 숲을 바라보는 북동쪽 뷰와 프라이빗 비치를 낀 남서쪽 뷰 중 나는 바다를 선택했다. 어떤 방향의 집이든 다 장단점이 있으며 이 동네 사람들은 바다 뷰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고 부동산 에이전트가 말했다. 매일 저녁, 초록 바다를 물들이는 붉은 노을. 그 경이롭고 아름다운 광경에 어떻게 집착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은 늘 천국에 살아서, 이곳이 천국인지 모르는 것일까?


심지어 몇몇 집은 바다 쪽으로 난 창에 야자수를 빽빽하게 심거나 거대한 차양막을 설치하기도 했다. 내가 밖을 보는 것보다, 외부에서 내 사생활을 보지 못 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들인가 보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해가 쨍한 낮에는 밖이 더 환해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고, 밤에는 비치에 사람이 없으니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정 신경이 쓰이면 새도 보호할 겸 안에서는 밖이 보이고,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특수 유리를 설치하면 그만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돈 계산을 하지 않고 살게 되었을까? 그것이 늘 신기하고 감사하다. 나는 석유곤로에 물을 끓인 후 찬물과 섞어, 시멘트 바닥으로 된 물부엌 한 귀퉁이에서 머리를 감아야 하는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옥상을 개조해 방으로 만든 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고, 주민등록 초본이 책 한 권이 되도록 이사를 다니며 더 좋은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애썼다.


미래가 불안한 가운데서도 행복한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상상력 때문이다. 나는 종종 눈을 감고, 살고 싶은 집과 그 안에서 하루를 보내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자고 나면 잊히는 두루뭉술한 꿈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떠올린다.


언젠가 내 집이 될 곳에 서 있는 나. 부드럽고 따뜻한 마룻바닥의 감촉, 목덜미를 감싸는 태양의 기운을 느끼며 아침 명상을 하고, 깨끗한 유리컵에 담긴 물 한잔을 손에 들고 먼바다 거품 속 고래의 흔적을 찾는 내 모습. 그러다 문득, 나에게 주어진 삶이 너무 감사해서 가슴에 손을 얹고 눈을 감는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기분 좋은 인사에 뒤를 돌아보니, 직원들이 바닥에 요가 매트를 깔며 환하게 웃고 있다. 출장 올 때마다 내 집에 묵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다. 요가 강사로 일하고 있는 직원의 지시어에 따라 우리는 아침 바다를 마주하고 몸과 마음을 정돈한다. 요가를 마치면 따뜻한 야채 수프에 빵을 먹으며 간단한 회의를 할 것이다. 내년에 제주도에서 개최할 명상, 요가, 웰빙 리트리트의 프로그램에 관한 회의다. 우리는 이 행사에 오프라 윈프리와 디팍 초프라도 초대할 예정이다.


7년 전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을 상상하고 글로 써두었다. 미래의 모습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이미 그곳에 가 있는 듯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 차고 손가락엔 부드럽고 섬세한 전기가 흐른다. (감정은 생각이 아니라 몸의 반응이다.) 상상과 감정이 일치를 이루는 순간.


그 순간이 오면 나는 언제나 느낄 수 있었다. 나를 둘러싼 우주가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을. 무한한 다중 우주 속에서 내가 골라잡은 그곳으로 내 운명이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나는 그저 알 수 있었다. 내가 꿈꾸던 것들은 그렇게, 늘 하나도 빠짐없이 이루어졌으니까.


7년 후

나는

하와이에 있는 내 집에 앉아

이 글을 읽으며

지금 이 순간을

회상하게 될 것이다.

“이것 봐. 내가 말했지? 하나도 빠짐없이 이루어진다니까.”

하고 조용히 마음으로 속삭이면서.


새가 머리를 부딪치지 않도록

먹고 남은 음식은 바로바로 냉장고에 넣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나도 책을 좋아하고 싶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