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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Jul 18. 2022

한 여름 밤의 꼬치 어묵


  출출한 배를 정식으로 달래기엔 다소 늦은 시각, 밤 9시 30분. 나는 지하철 역사 내 어묵가게에서 따뜻하게 주름진 꼬치 어묵 하나를 집어 든다. 오픈된 주방을 앞에 두고 각종 튀김 어묵과 물 어묵, 김밥, 떡꼬치 등의 간식거리를 일렬로 진열해 놓은 바(bar) 형태의 가게다. 먹고 싶은 만큼 음식을 집어먹고, 나중에 계산을 하는 방식인가 보다.  바텐더 격인 아르바이트 생 청년의 얼굴이 피곤하고 지쳐 보였다. 손님들이 먹고 있는 튀김 어묵 개수를 세느라 신경이 곤두선 것일까?


  선불로 계산을 받을 것인가, 다 먹은 후 후불로 계산하게 할 것인가를 놓고 가게 주인은 한동안 고민했을지 모른다. 먹은 어묵의 개수를 속이는 손님들이 있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놓고 직원들과 한바탕 시뮬레이션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후불제를 택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터. 어묵이란 그 특성상 당초에 계획한 개수만큼만 먹고 말기엔 좀 아쉬운 음식이 아닌가. 먹을 때마다 계산을 받아 식도락의 맥을 끊는 것보다, 일단 손이 가는 대로 집어먹게 하고 나중에 계산을 받는 것이 매출에 훨씬 유리하다는 쪽으로 결론을 냈을 것이다.


  굳은 얼굴로 손님들의 먹는 모습을 힐끔거리고 있는 청년의 수고를 덜어주고자 나는 개수를 세기 쉬운 꼬치 어묵만 먹기로 한다. ‘생맥주를 팔면 참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종이컵에 육수를 한 국자 퍼 담았다. 마감 시간의 어묵 육수는 후후 불지 않아도 입이 데일 염려가 없어서 좋다. 칼칼한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 뽀얀 어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퉁퉁 불은 모양새 치고는 식 감이 제법 쫄깃하다.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정면을 바라보니 주방 벽에 붙어있는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저희 업소는 고객 님들을 더욱 위생적으로 모시기 위해, 절대 나무 꼬치를 재 사용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없는 게 나았을 안내문 덕분에 주방을 찬찬히 훑어보게 됐다. ‘절대’와 ‘재 사용’을 빨간 글씨로 강조한 것 치고, 싱크대 앞 플라스틱 통에 잔뜩 모아 놓은 나무 꼬치들이 너무 당당한 거 아닌가. 못 하나에 포개어 걸어 놓은 얼룩진 앞치마와 파리채도, 조리대 위에 널브러진 (어쩌면 행주 일지 모르는) 걸레도, 설거지를 한 건지 아직 안 한 건지 한참을 생각하게 만드는 싱크대 위의 그릇들도 ‘고객 님들을 위생적으로’ 모시겠다는 각오와는 좀 거리가 있는 거 아닌가. 과연 이 어묵에 생선살이 들어있기는 한 걸까?라는 생각을 하며 두 번째 꼬치를 꺼내 든다.


  보여도 보고 싶지 않고, 알아도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재래시장 얼음가게의 냉동고 바닥, 변두리 단무지 공장의 대형 다라이 속, 허옇게 뒤덮인 칼자국 위로 내장 얼룩이 박혀 지워지지 않는 노천 횟집의 도마 위, 중국집 뒷문 옆에 담배꽁초와 함께 쌓여 있는 돼지기름 깡통… 같은 것들. 유동인구만큼 먼지가 가득 한 지하철 역사 안에서 아르바이트생 혼자 관리하고 있는 어묵 가게의 주방 역시 보지 않는 게 나았을 뻔한 불편한 진실이다. 달리 시선을 둘 데가 없어 나는 어쩔 수 없이 안내문을 한 번 더 읽는다. 그리고, 개수대 옆 플라스틱 통 안에 모아 놓은 나무 꼬치의 개수를 하나하나 세어본다.


  “그것도 드셨어요?” 내 옆에서 튀김 어묵을 먹고 있는 남학생에게 아르바이트 생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소리가 잘 안 들렸는지 학생이 동문서답을 한다. “국물 안 먹어도 돼요.” “아니 그게 아니라…. 휴~.” 청년은 아무래도 지나치게 소심하거나, 지나치게 착실한 성격인 것 같다. 어쩌면, 어묵이 비는 개수만큼 급여에서 차감당하는 부당한 노동환경을 그러려니 하며 견뎌내고 있는 사회 초년생 인지도 모른다. ‘시원한 생맥주를 팔면 정말 좋았을 텐데’ 나는 다시 한번 아쉬워하며 먹고 난 꼬치 두 개를 가지런히 모아 청년에게 건넸다. 옆 자리에 굴러다니는 꼬치 두 개는 내가 먹은 게 아니라고 말해줄까 하다가, 그와 나의 삶이 함께 초라해지는 것 같아 그만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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