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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Sep 06. 2022

고통이 선물이 될 때

한 남자가 스님의 삶을 체험하기 위해 태국에 갔다. 그는 삭발을 하고, 다른 스님들과 함께 매일 자정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명상을 했다. 그리고, 동이 트면 거리에 나가 그날 먹을 음식을 구걸했다.


함께 탁발을 하던 스님이 남자에게 물었다.


"발이 아픕니까?"

"신발을 벗고 걸어본 적이 없어서 발이 아픕니다."

"바닥에 딛는 발은 아프고, 그와 동시에 바닥에서 뗀 발은 시원하죠? 시원한 발에 의식을 두세요."


그날 이후, 남자는 고통을 잘 다룰 수 있게 됐다.


"고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디에 의식을 두느냐의 문제입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마음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 것은 세계적인 영성 지도자 디팍 초프라 Deepak Chopra의 이야기다.




축구선수인 열일곱 살 아들이 몇 달 전 연습게임 중 부상을 당했다. 전방 십자 인대가 파열되고 연골도 찢어져 큰 수술을 했다. 적어도 1년은 축구 시합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재활 성공 여부에 따라 완전히 회복하는데 2년이 걸릴 수도 있고, 다시 제 기량을 찾기 힘들 수도 있다고 했다.


일곱 살 때부터 축구공을 발에서 뗀 적이 없는 아들은 충격을 받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을 하고, 한 번도 꿈이 흐트러진 적 없는 우리 아이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사실 언제나,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단지 나와 우리 가족에게는 예외일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운동장을 활보하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휠체어에 앉을 수 있는 게 인생이다. 근데 우리는 왜 아무 일도 없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두 발로 달릴 수 있는 게, 두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게, 아침에 일어나 배시시 웃는 내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왜 잊고 살았을까? 왜 감사하지 않았을까?


아마 고통은, 우리의 일상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 위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내려주는 신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고통의 한가운데에서는 그저 괴로울 뿐이지만, 지나고 나면 그것이 우리를 성장시키는 약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단단해지고, 초연해진다.


매일 명상을 하면서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중 가장 큰 축복은 삶의 충격에 크게 동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나쁜 일이 생겼을 때 "왜 나한테 이런 일이?"라고 한탄하기보다, "이 일이 나에게 주는 가르침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됐다.


아들은 축구부 합숙을 그만두고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얻어 혼자 생활하고 있다.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 혼자 아침을 챙겨 먹고, 학교 헬스장에서 혼자 운동을 한다. 수업이 끝나면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갈아타고 한 시간 거리의 재활센터에서 운동을 한 뒤, 혼자 저녁을 먹고 밤 10시가 되어서 귀가한다. 재활이 없는 날에도, 주말에도 운동을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다.


얼마 전 축구클럽 감독님이 서진이가 제출한 훈련일지를 크게 칭찬하시며 일부 내용을 공유하셨다. 일기 형식으로 쓴 아들의 훈련 일지를 읽으며 대견해서 웃다가, 결국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그것은 슬픔이나 통한의 눈물이 아니었다. 고통 속에서 오히려 빛을 발하는 한 인간에 대한 경이와 감동의 눈물이었다.


부상 후 아들이 겪었을 두려움과 불안함을 나는 가늠할 수 없다. 매일 반복되는 훈련이 얼마나 고단하고 외로울 지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이가 많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과 영혼까지 단단한 어른으로 커가고 있다. 앞으로 그의 인생에 벌어질 수많은 고통을 생각하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아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때때로 네가 가는 길이

고통스러울 때, 속상할 때, 힘들 때, 외로울 때  

땅에 닿아 아픈 발에서 의식을 거두고,

땅에서 떼어져 시원한 발을 바라보라고.

끊어진 인대에서 의식을 거두고,

아직 건강하고 훌륭한

허벅지를, 발목을, 발바닥과 온몸을 떠올리라고.

우리가 누리는 호흡 하나하나가

얼마나 감사한 신의 신물인지

한시도 잊지 말고 살아가자고.



- 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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