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Super Soul M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희 Sep 14. 2022

아이의 인생에 참견하지 않게 해 주세요.

"누구나 세상에 온 목적이 한 가지씩 있어. 이 세상을 위해 서율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뭘까?" 라고 물으면 아이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한다. "다른 사람을 웃게 해 주는 거요."


언제부터인가 나는 아이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어?"라고 묻는 대신 위와 같이 질문한다. 같은 질문 같지만 큰 차이가 있다.


첫 번째 질문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뭘까?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등을 생각하게 만든다.


반면, 두 번째 질문은 예능인, 유튜버, 웹툰 작가 등 아이가 현재 수준에서 생각할 수 있는 직업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세상에 기여한다는 개념이 아닌, 돈과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써만 직업을 바라보게 한다.


누가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꿈은 명사가 아닌 동사로 가지라 했다.


목표를 직업이라는 명사로 한정하면 사람은 딱 그만큼의 꿈을 꾸고 그 직업의 성취 여부로 꿈을 이루었는지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세계를 누비며 사는 것' '맛있는 음식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것' '감동을 주는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 등 동사로 꿈을 정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무궁무진하게 많아지고 인생이 흥미로워진다.

 



나는 아이가 재량 휴업일에 혼자 등교를 해도 모르는 방임형 엄마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 정성을 쏟는 부분이 있다. 아이가 자신의 정체성에 한계를 두지 않도록 말 한마디라도 신경 써서 하는 것. 자주 질문을 던져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 되도록이면 아이 일에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 않는 것.


정성을 쏟아 간섭하지 않는 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시겠지만, 내 아이디로 유튜브에 접속해 약 40여 개의 채널에 구독, 좋아요, 알람 설정을 하고 댓글을 부지런히 달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도 화를 내지 않으려면 보통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이 채널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라고 물으며 종종 관심을 보이고, 가끔 함께 영상을 보며 깔깔 웃어줌으로서 아이가 자신의 세계로 숨지 않도록 하는 데에는 엄청난 정성이 요구된다.  


잔소리를 해 봤자 사이만 멀어진다. 나는 아이를 끝까지 믿어주고 사랑을 퍼 부어 주고 싶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답을 정해놓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이가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차피 아이가 살아가야 할 인생이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을 더 오래 살았지만, 아이가 한창 날개를 펼 20년 후 세상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요즘 아이들의 사고패턴이나 소통방식, 트랜드 등도 따라잡지 못하는 판에 20년후를 어떻게 알겠는가.


내가 사회 초년생이던 20년 전은 어땠는가? 그때는 천리안, 나우누리로 채팅을 하던 시절이었다. 구글은 물론 유튜브도 없었고, 스마트폰도 없었다. 페이스북도, 인스타그램도, 에어비앤비도,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도, 쿠팡도, 우버나 카카오 택시도, 전기차도, 공유 킥보드도, 맛집에서 대신 줄을 서 주는 알바도 없었다.


영국 옥스퍼드대 칼 베네딕트 프레이 박사는 2013년 발표한 보고서 '고용의 미래'를 통해 현재 직업의 47%가 20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보고서를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 20년 전에는 없었고 지금은 있는 서비스들을 보자. 신종 직업이 얼마나 많이 생겼으며,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도 얼마나 달라졌는가.


1인 유튜브 채널이 정규 방송 못지않은 파급력을 발휘하고, 방에서 웹툰을 그려 억대 연봉을 버는 젊은이들이 있다.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간단한 능력과 창의력만 있으면 자본이 없어도 창업할 수 있고, 메타버스라는 가상세계 안에서 땅을 사모으거나, 아이콘 NFT를 거래하기도 한다. 방구석에서 게임만 하며 부모의 피눈물을 짜내던 아이가 프로 게이머가 되어 세계 무대의 주역이 되고, 백수건달의 상징이었던 당구 역시 억대 프로 선수를 양산하는 스포츠가 됐다. 먹고사는 방법이 20년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초등학생 시절 내 꿈은 화가였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소질도 있었다. 엄마를 조르고 졸라 동네 화실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선생님이 몰래 출품한 내 작품이 국제 청소년 미술제에서 우수상을 받자 엄마는 다음 달 학원 등록을 끊어버렸다. 내가 미련을 갖지 못하도록 상장까지 없애버렸다. 금장 리본으로 장식된 영어로 된 상장은 내 인생 10년 만에 이룬 가장 자랑스러운 성취였다. 액자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벽에 스카치테이프로라도 붙여두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중학생쯤 됐을 무렵 나는 엄마가 묵은 옷을 보관하던 서랍장 바닥에서 신문지 아래 깔린 상장을 발견했다.

 

왠지 서러웠지만 엄마에게 따져 묻지는 않았다. 우리 집 형편으로는 미술을 계속 배울 수 없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도 충분히 알았기 때문이다. 잠깐 다닌 화실에서 내야 했던 재료비만 해도 엄마에게는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동네 문구점에서 산 티티 그림물감은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4B 연필도, 수채화 물감도, 붓도, 팔레트도 모두 일제 아니면 독일제를 써야 했다.


훗날 엄마는 회상했다. 내가 하필 미술에 재능이 많아 속상했다고. 형편껏 밀어주고 싶었지만, 미술 시키려면 얼마나 뼈골이 빠지는지 만날 때마다 하소연하던 엄마의 절친 때문에 마음을 단단히 먹을 수밖에 없었다고. 엄마 친구의 등골을 빼먹던 화가 지망생 언니는 미국으로 유학까지 갔다 와서 변변한 작품도 직업도 없이 빌빌하다가 결국 결혼해서 평범한 애 엄마가 됐다고 한다. 그 얘기를 전하며 엄마는 매정하게 아이의 꿈을 접게 만들어야 했던 당시의 처지를 조금이나마 위로받는 듯했다.


미술을 전공하면 배고픈 화가가 된다.

의사, 판검사가 최고의 직업이다.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장땡이다.


이 것은 30,40,50년대생 부모님들의 아이디어다. 그들은 색채와 디자인에 대한 감각이 얼마나 많은 분야에 활용될 수 있는지, 얼마나 큰 부가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지 모른다. 의사, 판검사가 명예와 보수에 비해 얼마나 큰 노동강도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지 알지 못한다. 40세 이후 대기업 종사자들이 겪는 심리적 불안을 가늠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부모님 세대를 비하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은 나라 전체가 배고팠던 시대를 사셨다. 먹고사는 것을 안정적으로 해결하는 게 가장 중요했던 분들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삶의 주요 가치가 변해버린 세상을 살아가려면 그들의 조언을 다 귀담아듣지는 말아야 한다.


70, 80년대생인 우리는 급속한 경제 성장의 시대에 살았다. 빈부의 차가 커지고, 학벌로 인한 사회적 격차를 경험했다. 어린 시절 가난을 경험했기에 모험보다는 안정을 선호하고, 나의 행복보다 남에게 잘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성장의 과도기에 살았기에, 우리 부모님 세대의 사고방식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기도 하다. 아직도 많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의사, 판검사가 최고다.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장땡이다. 연금 받는 공무원이나 교사가 돼라.'라고 조언하지 않는가.


야근을 해서 한 푼이라도 더 버는 것이 미덕인 시대는 이미 지났다. 내 아이들은 점점 더 시간과 오락, 예술, 건강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대에 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사, 판검사 같은 전문직 포함) 인간의 노동을 갈아 넣어야 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기피 직업군이 될 수 있다. 노동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고,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기계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잘하는 사람이 사회의 지배층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예술적 감각, 틀을 깨는 사고방식, 엉뚱한 상상력, 효율을 따지지 않는 양심, 타인에 대한 공감, 거시적인 시각 같은 능력 말이다.


코로나로 인해 2년만에 인류의 삶의 방식이 엄청나게 바뀌었다. 10년, 20년 후의 일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는가? 나는 아이가 살게 될 세상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70년대생식 사고방식으로 아이의 미래를 설계하겠다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나는 내 아이가 위대하다고 믿는다. 그 위대한 아이를 내 그릇 안에 가두고 싶지 않다. 그리고 아이가 다른 사람들의 생각 안에 갇히지 않도록 돕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잔소리하지 않고, 늘 열린 질문을 던지고,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 내가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 기록한다.

그리고, 눈을 감고 기도한다.

"아이의 인생에 참견하지 않게 해 주세요."

“아이의 인생에 참견하지 않게 해 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월 1억을 버는 데 불행한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