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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Nov 03. 2022

좋댓 확인 중독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잘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일찍 자기, 소금빵 한 개만 먹기, 발바닥 각질에 손대지 않기, 그리고... SNS의 좋아요와 댓글 수시로 확인하지 않기.


아침 6시.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핸드폰 알람을 끄고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을 켠다. 오른쪽 위 하트 버튼을 눌러 최근에 올린 피드에 대한 반응을 살핀다. 그 다음은 네이버 블로그를 열어 새로운 좋아요와 댓글이  없는지 확인한다. 그 다음은 페이스북. 마지막으로 브런치를 본다.


브런치 순위가 마지막으로 밀린 이유는 요즘 올린 글들이 하나같이 반응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할 때와는 달리 메인에 노출되는 일도 없고,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도 거의 없다. 엊그저께 오랜만에 알림이 왔길래 반가운 마음으로 클릭해보니 광고도 아니고 시민운동도 아닌 어리둥절한 댓글이 달려있었다.


스팸 댓글 게시자에게 울부짖고 있는, 외로운 나.


어쨌든, 나는 하루 몇 번씩 SNS를 들락거리며 좋아요, 댓글 확인 루틴을 반복한다. 심지어, 내가 최근에 올린 게시물이 없을 때도 그러고 있다. 한참 지난 글에 좋아요가 달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손가락이 먼저 움직인다. 무의식에 지배받는 노예 상태 - 습관에 빠진 것이다.


나는 이 습관을 '좋댓확인증'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렇다. 나는 초딩 아들의 영향으로 '별다줄'에도 빠져있다.) 그 증상을 심도 깊게 분석해보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우선, 나의 '좋댓확인증'이 가장 심해지는 때는 언제인가?


그것은 물론 글을 쓰고 난 직후다. 발행 직후의 반응에 그 글의 성패가 달려있다. 구독자가 알람을 받아 클릭하거나, 최신 글로 다수에게 노출되는 유일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때 제목이 매력적이지 않으면 클릭을 하지 않을 것이며, 글이 지루하면 끝까지 안 읽고 나가버린다.


간혹 상부상조 정신이 투철하거나, 인정 많은 분들이 글이 올라감과 동시에 좋아요를 눌러주시기도 한다. 속독을 전문적으로 배운 분이 아닌 다음에야 도저히 글을 읽었다고는 볼 수 없는 속도다. 그런 식의 좋아요는 기쁨보다 서글픔을 자아낸다. '안 읽은 게 뻔하지만, 그래도 무반응보다는 낫죠. 감사합니다.'라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 아 쓰고 보니 정말 서글프군요.


아무튼, 나는 이 초기 반응을 살피며 내 글의 문제가 뭔지 분석을 시작한다. 제목을 바꿔보고, 도입부를 수정하거나, 지루해 보이는 단락을 통째로 없애고, 다시 쓰기도 한다.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다 보면 어느새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날 때도 있다. 그때쯤이면 내 글은 이미 모두의 관심 밖으로 사라져 버린 뒤다.


그럼, '좋댓확인증'이 가장 잠잠해지는 때는 언제인가?


바쁠 때. 바빠서 핸드폰을 잡고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때. 회계 장부를 보거나, 멈출 수 없는 영화 또는 책을 보거나, 운동을 하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등 몰입을 필요로 하는 일을 할 때. 물론, 그러다 잠시 한숨을 돌린다는 핑계로 '좋댓확인'을 하기도 한다.



왜 나는 '좋댓'에 집착하는가?


요즘 내 브런치 글 대부분은 좋아요가 열개를 넘지 못한다. 네이버 블로그는 오랜 구독자수가 좀 더 있어서 스무 개 안팎의 좋아요가 달린다. 이 정도의 숫자는 사실 의미 있는 데이터라고 볼 수 없다. 충분한 노출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글에 대한 반응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는 없다. 블로그나 브런치,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이례적인 숫자의 좋아요와 댓글이 달리는 경우가 있다. 그때 나의 '좋댓확인증'은 극에 달한다. 그것은 단지 내가 알지 못하는 알고리즘의 결과이며, 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사람들의 반응에, 의미 없는 숫자에 집착한다.


왜 일까? 나는 오직 타인의 반응을 얻기 위해서 글을 쓰는 걸까? 공감을 얻고, 훌륭하다는 칭찬을 받기 위해서? 물론 읽는 사람이 있어야 글을 쓰는 일에 흥이 붙는다. 하지만, 오직 읽히기 위해서만 글을 쓴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또 서글퍼진다.






나는 어려서부터 일기를 썼다. 꾸준히 계속 쓴 것은 아니지만, 숙제가 아닌데도 그저 내가 쓰고 싶어서 쓴 일기가 많다. 수업시간에 지루하면 엎드려 자는 대신 노트에 끄적끄적 낙서를 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도 썼고, 시도 썼고, 혼잣말이나,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해서 글로 적기도 했다. 따라서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순전히 글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그렇지 않다면야,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수익성이 한 참 떨어지는 이 짓을 왜 하고 있겠는가?


사람마다 각자 이유 없이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요리를 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음악을 듣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글을 쓴다. 우리는 자신에게 운명처럼 주어진 일을 할 때 (잘하고 못 하고에 상관없이) 온전한 기쁨을 느낀다. 그 기쁨이 깨지는 것은, 몰입의 틈 사이로 다른 사람의 평가에 연연하는 마음이 스며들 때다. 내가 하고 싶은 말 대신,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쓰려고 할 때, 나의 글쓰기는 목적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된다. 수단이 되면 일이 되고, 일이 되면 하기 싫어진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다잡아 본다. 내 멋대로 글을 쓰자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은 마음, 멋져 보이고 싶은 마음, 공감을 얻고 싶은 마음 따위는 한쪽으로 접고. 나 자신을 위해서만 글을 쓰자고 마음을 먹는다.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털어버린 감정은 한결 가벼워진다. 내 삶을 회고하는 과정을 통해 글로 쓰기 전에는 생각지 못 했던 깨달음을 얻게 되기도 한다. 그저 그런 목적으로 가볍게 힘을 빼고 글을 쓰자.


어쩌면 그렇게 쓴 글에 좋아요가 더 많이 달릴지도.... %*&(*)$& 크흠!


습관은 무섭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생각이자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썼다. 내 무의식에 빛을 비추기 위해서.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무의식적인 행동을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습관에 이름을 붙였으니 나는 앞으로 하릴없이 브런치 알림 창을 기웃거릴 때마다 '음, 좋댓확인증이 발동했군.'이라 생각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무의식에 지배당하지 않고, 습관과 나를 분리하여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럴 수 있을까? ㅋㅋㅋㅋ





- 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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