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밤을 깠다.
아이들 먹이려고.
까는 속도에 비해 먹는 속도가 빨랐다. 큰 아들이 엄마도 먹으라고 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하며 부지런히 밤을 깠다. 아들 입에 하나라도 더 넣어주고 싶었다. 혼자 자취하는 아들에게 반찬 한번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서 마음 한 구석이 늘 짠했는데, 옆에 앉혀놓고 밤이라도 까 먹일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남편이 다가왔다. 눈빛이 심상치 않다. 나는 까 놓은 밤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고, 밤 까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님을 암시했다. 그가 실실 웃는다. 애매한 암시 따위는 통하지 않을 것 같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홀랑 집어먹을 생각 말고, 가서 칼 하나 들고 와.’
내가 원하는 그림은 둘이 함께 힘을 모아 후딱 까는 것. 애들을 먹이고, 서로의 입에도 하나씩 넣어주며 부부간의 금슬지락을 나누는 모습. 혹은 내가 아이들 먹일 밤을 까는 동안 남편은 우리가 먹을 밤을 까서 나 한 톨 자기 한 톨 나눠먹는 다정한 풍경.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편은 뭐하러 힘들게 까고 있냐는 듯, 밤을 반으로 뚝 잘라 입에 우걱우걱 털어 넣었다. 세 개의 밤을 빠른 속도로 해치우는 그의 모습을 보자니, 나의 모성이 덧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까 놓은 밤을 하나 집어 먹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큰 아들은 그만 먹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작은 아들을 위해 계속 밤을 깠다. 최대한 껍질을 얇게 까야 밤이 부스러지지 않는다. 그러려면 칼을 쥔 손에 힘을 빼고,, 밤 표면 굴곡의 형태에 집중해야 한다. 내가 예술적인 밤 까기에 몰입하는 사이, 남편이 기습적으로 까 놓은 밤을 집어 입에 쏙 넣었다. 순간, 칼을 쥔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지금 뭐 하는 거지?”
남편은 내심 서운했을 것이다. 아들만 챙기고 자기는 안 챙겨줘서. 나 역시, ‘내가 너무 했나? 고작 밤 몇톨가지고…‘라는 생각이 슬쩍 든다. 근데 또 한 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나무라고 싶다. ‘남편이 자식이냐? 다 큰 어른한테 왜 밤을 까 먹여줘야 하는데?’
<이하 내적 갈등>
‘그렇게 따지면 아들도 다 큰 어른이잖아.’
‘남편은 남편이고, 아들은 아들이야. 얼마 안 있으면 진짜 독립을 해서, 밤을 까주고 싶어도 기회가 없을 거라고. 나는 단지 할 수 있을 때 뭐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었을 뿐이야.‘
‘아무리 그래도 남편이 고작 밤 한 톨 집어먹었다고, 이렇게 장문의 글까지 쓰는 건 너무 뒤끝 있는 거 아니니?’
’아 몰라 몰라 ‘
앞으로 밤은 각자 숟가락으로 파먹으라고 해야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