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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1997 -5편. 신라면과 깊은 슬픔

by 레이지마마

‘틱칵 틱칵’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무섭게 들렸다.


20대는 모를 것이다. 한 통에 70원. 장거리 통화라면 동전을 우르르 넣어도 빠른 속도로 돈이 줄어들어, 허겁지겁 용건만 말하고 끊어야 하는 공중전화. 2000년대 초부터 철거가 시작되어 2015년을 전후해 거의 자취를 감춘 공중전화. 1997년은 집 전화와 삐삐, 그리고 공중전화가 주요 통신 수단이던 때였다.


호주의 통화료는 한국보다 훨씬 비쌌다. 한 통화에 400원 (달러 환산가). 시외전화는 분당 500원에서 1,000원 사이. 복사 한 우프 (Wwoof) 책자를 들고, 동그라미 쳐 둔 후보지에 차례차례 전화를 걸었다. 50센트짜리 하루 지난 식빵으로 연명하는 나로서는, 공중전화의 돈 떨어지는 소리가 엄청난 압박감을 주었다. 호주 시골 사람들 억양은 왜 이리 강한가. 왜 말은 이리 빠르고, 나는 알아듣지 못하는가. 왜 기다리라고 하고 빵 두 봉지의 시간이 다 되도록 와이프를 바꾸어 주지 않는가?


"우프 리스트 보고 전화했어요. 저는 한국에서 온 스물두 살 싱글 여자예요. 내일부터 2주간 머물 수 있나요?"


최대한 전화비를 아끼기 위해, 그들이 물을 만한 질문의 답을 연습했다. 그리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마자 따다다다 말했다. 그렇게 서너 군데를 통화한 끝에 내일 당장 와도 된다는 집을 한 군데 찾았다.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누사에서 내리면, 본인이 데리러 나오겠다고 했다. 햇살처럼 밝고 친절한 목소리였다. 뛸 듯이 기뻤다.


브리즈번에서 케언즈까지 무제한 정차하며 위로만 올라갈 수 있는 버스 티켓 (케언즈에서 다시 아래로 내려올 수는 없다.)을 샀다. 표를 사고 나니 정확히 50달러가 남았다.


(당시 환율 기준) 4만원도 안 되는 돈을 수중에 들고, 6개월간 여행을 하겠다는 발상이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지만, 그때는 훌륭한 계획이라 생각했다. 일단, 공짜로 숙식을 해결할 방법을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버스 티켓이 있으니, 차비도 해결됐다. 딱 하루만 식빵과 잼, 그리고 수돗물로 때우면 (그때는 다들 수돗물을 먹었다.) 내일 저녁부터는 농가에서 제공하는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시골에서 돈 쓸 일이 뭐가 있겠는가. 당분간 그렇게 지내며 일당직 일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호주에 도착한 지 이틀 만에 살길을 찾은 거 같아, 나는 너무나 신나고 설레었다.


버스 터미널에서 한참을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한 번 버스를 타면 돌아올 수 없을 테니, 졸지에 브리즈번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왠지 아쉬운 마음에 차이나 타운을 서성이다, 무언가에 이끌려 슈퍼마켓에 들어갔다.


라면! 한국 라면! 신라면이 눈에 띄었다. 호주에도 한국 라면이 있구나. 신기하고 반가웠다. 그리고, 간절히, 미치도록, 못 견디게 먹고 싶었다. 1.5달러 정도 했던 것 같다. 그 라면 앞에서 한 참을 떠나지 못했다. 살까? 말까?


‘사자. 내일부터 시골에 가면 한국 라면은 구경도 못 할 텐데.’

‘너 이제부터 돈 안 쓰기로 마음먹었잖아. 긴급상황에 대비해 50달러는 지켜야지.’

‘그래도 너무 먹고 싶어. 딱 한 번만! 다시는 사달라고 안 할게’

‘너 여기 온 지 이틀 지났어. 이틀 만에 라면에 목을 맬 거면 호주엔 뭐 하러 왔어. 그냥 한국에서 라면이나 끓여 먹고 있지.’

‘칫…’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는 기억이 있고, 절대 사라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어떤 기억이 선명하게 각인되는가? 바로 100퍼센트 몰입했던 순간의 기억이다.


"신라면이 잔뜩 쌓인 매대 앞에서 고뇌하며 슬픔에 잠겨 있는 20대의 여성을 샤갈 풍의 이미지로 그려줘" Chat GPT

28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신라면 봉지를 앞에 두고 벌어진 첨예한 마음의 대립. 간절함과 냉정함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사이 점점 커지던 슬픔. 유난히 커다랗게 눈에 들어오던 매울 신!


하지만, 결국 나의 완고한 이성이, 식욕을 제압했다. 터덜터덜. 실망한 마음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다. 시내 구경이고 뭐고 숙소에 가서 잼을 왕창 바른 식빵을 먹자.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해 질 녘까지 테라스에 앉아있자.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또 식빵을 먹자.


그렇게 돌아온 레드 핫 칠리 패커스. 다들 나갔는지 조용했다. 내가 묵던 15달러짜리 혼성 도미토리. 우울한 방이었지만, 제이크가 있는 방이기도 하다. 그를 생각하면 내일 떠나는 것이 슬그머니 아쉽기도 했다. 오늘도 일하러 갔겠지? 저녁에 돌아오면 말을 걸어봐야지.


식빵과 잼을 꺼내기 위해 방문을 열었다.

그 안에선 내가 살면서 한 번도 상상해 본 지 못 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리즈


* 이번 편 부터 우프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수다가 길어져 아직 출발도 못 했네요. 다음 편엔 부디 출발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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