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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하는 남편에 대처하는 자세

by 레이지마마

결혼 생활을 22년 유지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깨닫게 된 것들이 있다. 오늘은 욱하는 남편에 대처하는 내 나름의 노하우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아래는 몇 달 전 일이다.


…….

전화벨이 울렸다. 남편이다. 그는 지금 세 준 집의 수도 계량기가 계속 돌아간다고 해서 살펴보러 인천에 가 있다. 누수탐지 업체를 불렀는데 견적이 400만 원 정도 나온다고 했다. '아~~' 이렇게 또 목돈이 나가는구나. 사는 게 참 산너머 산이다. 어쩔 수 없지. 처리할 건 하고, 다시 힘을 내 보는 수밖에. 번민하며 마음을 추스르느라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한 두 군데 더 불러서 비교 견적을 받으면 어떨까?"


남편은 크게 한 숨을 쉬더니 '업체를 섭외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견적이라는 건 검사를 어느 정도 해봐야 확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부른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집은 아파트가 아닌 50년 된 구옥이라 작업이 만만치 않다. 작업하러 여기까지 와 주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라는 둥의 말을 했다. 습관처럼 업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남편의 말에 짜증이 났지만,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운하우스 시행일을 한 번 경험한 이후로, 남편은 주택 하자 문제에 직면하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우리는 34세대의 집을 지어 분양한 건축주였는데, 시공회사가 도망가서 결국 모든 책임을 뒤집어써야 했다. 그 과정에서 분양자들의 항의와 원망을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했고,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았다. 집과 관련한 문제가 생겼을 때 남편이 지나치게 예민해지고, 방어적으로 돌변하는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신호대기 중인 차 안, 스피커 폰으로 울려 퍼지는 그의 흥분한 목소리에 나도 점점 격앙되어 갔다. '왜 이 남자는 툭하면 흥분하는가? 견적을 몇 군데 더 받아보자는 말이 이렇게 화 낼 일인가? 같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사람이 왜 업자 편을 드는가?' 반박의 말들이 머릿속에 차 올랐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못 한채, 운전대만 꽉 움켜쥐고 그가 퍼붓는 분노의 구정물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과의 관계에선 자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나는 두려웠다. 왜 자꾸 화를 내는 걸까? 앞으로도 계속 이러면 어떻게 사나? 그 두려움이 내 이성을 마비시키고, 공격적으로 만들었다. 그의 취약점을 조목조목 지적해 자존심에 상처를 내고, 눈물을 흘려 죄책감을 자극하고, 때로는 '이혼하자. 도저히 못 살겠다.'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남편이 언성을 높이면 나도 질세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그의 화가 나의 화에 불을 지피고, 나의 화가 그의 화에 기름을 끼얹었다. 오랜 패턴이다.


그 패턴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인 감정적 습관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나는 수년간 나에 대해 탐구했다. 심리, 철학, 영성, 정신과학 책을 읽고, 침묵 속에 들어가 내 생각과 그에 대한 몸의 반응 - 감정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했다. 화가 나지만 화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화를 낼수록 더 화가 나고, 해결되는 건 하나도 없고, 치러야 할 대가만 남기 때문이다.


수화기 너머 남편의 폭주.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았다. 그저 숨을 고르며 화가 만들어 내는 내 몸의 감각을 느꼈다. 명치에 뭉쳐있는 에너지의 덩어리. 심장이 빠르게 뛰고, 열이 오르고, 가슴이 조여지는 느낌, 뒤통수에 아릿아릿 흐르는 전기가 서늘했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남편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지 할 말만 하고...' 머릿속에 또다시 문장이 떠오른다. 그 문장에 끌려가지 않도록 크게 숨을 쉰다. 그 숨이 만들어내는 내 가슴의 확장과 수축에 집중한다. 여전히 불덩이가 있지만, 금세 조금 흐릿해진 느낌이다. 조금씩 조금씩 심장 박동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뒷목의 아릿한 느낌도 점점 약해진다.


잠시 그러고 있자니 남편에게 또 전화가 왔다. 간신히 잦아든 화가 다시 살아 올라올까봐 망설였지만, 결국 전화를 받았다. 그의 목소리가 차분했다.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미안해. 빨리 끝내고 가고 싶은데 업자 섭외도 어렵고, 생각보다 일이 커졌고, 마음이 답답해서 좀 예민해 있었던 것 같아."


‘사정이야 어찌 됐든 나는 당신의 감정 쓰레기 통이 아니야.'라는 말이 차올랐지만 내뱉지 않았다. 이해한다는 둥, 수고가 많다는 둥 화해를 위해 진심이 아닌 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냥 "알았어."라고 했다. 남편도 머쓱한 목소리로 "그래"라고 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거 먼저 입을 열었다. "두 군데 정도 업체를 섭외해서, 견적을 더 받아볼게."


- 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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