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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Jul 08. 2020

영어로 대화를 잘하려면

 


살면서 영어로 쓰는 말들을 생각해보니, 딱 중학교에서 배운 정도의 문법적 지식만 있으면 되지 않나 싶습니다. 전문 분야의 프리젠테이션을 하거나 업무를 하려면 해당 분야의 용어와 표현을 추가적으로 배우면 되고, 의회나 공식석상에서 연설을 한다면 좀 더 고급진 어휘를 구사하는 것이 좋겠지만 기본적으로 중학교 때 배우는 단어나 문법 정도만 입으로 말할 줄 알면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어 수다도 떨고, 사업적인 협상도 하고, 부당한 일에 항의도 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요즘 한국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정규 교과 과정으로 영어를 배운다고 하는데 (일찌감치 사교육을 시켜서 웬만한 읽기는 떼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만). 저희 때는 중학생부터 A, B, C를 배우기 시작해서 apple, bear, carrot... xylophone까지 철자를 소리로 변환하는 법 (생각해보니 xylophone이라는 단어는 그때 이후로 평생 써 본 적이 없네요.)을 거쳐, I am a girl, You are a boy 정도의 문장을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배웠습니다.


사는 게 다 고만고만해서 따로 사교육을 하는 아이는 많지 않았지만, 영어를 잘 하든 못 하든 맨투맨과 성문 기본 영어는 다들 한 권씩 있었습니다. 맨투맨은 회화 위주, 성문 기본 영어는 문법 위주라며 한 권씩 구비했는데, 공통점이라면 앞부분 열 장 정도는 열정적인 밑줄이 그어 있다가 뒤로 갈수록 새책이나 다름없이 깨끗했다는 것이죠.


영어 시험을 잘 보면 아이들의 부러움을 사지만, 발음을 좀 굴리면 조롱의 대상이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선생님도 발음에 자신이 없었는지, 어렸을 때 외국에 살다가 한국에 온 친구가 있으면 꼭 그 친구에게 책 읽기를 시키셨죠. 아이가 좀 수더분하게 생기면 그나마 나은데, 예쁜 게 영어 발음까지 좋으면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기 딱 좋습니다. 그래서, 이민 갔다 온 친구들의 유창한 영어 발음은 타의 모범이 되기도 전에, 날이 갈수록 한국화 되어 버립니다.


지금은 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그땐 그랬습니다. 영어를 섞어 말하거나 영어 원서를 들고 다니거나 하면 다들 재수 없어하는 분위기였죠. 외국인과 만날 기회 또한 전혀 없었으니, 영어는 그저 시험 과목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엄마의 증언에 의하면 저는 어렸을 때 책을 아주 좋아했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가 책을 너무 안 읽으셔서 딸이 많이 읽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읽을거리가 있으면 밥 먹을 때도 화장실 갈 때도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저희 집에 책이 별로 없었습니다. 제가 신문에 실린 통신판매 광고를 보고, 몇 날 며칠을 눈물을 글썽이며 졸라서 큰 맘먹고 사주신 주황색 창작동화 전집 18권이 제 어린 시절의 첫 책이자 마지막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1, 2 학년쯤 되었을 때인데 그림도 별로 없는 그 책을 닳고 닳도록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남양으로 간 소년의 모험>. 남양이란 적도 남반구의 나라, 즉 호주를 말합니다. 기억하시겠지만 당시엔 신문 기사에 한자를 섞어 쓰던 시절이라 웬만한 단어는 한자식으로 표기하는 트렌드가 있었습니다. 호주는 남양, 프랑스는 불란서, 로스엔젤리스는 나성, 스페인은 서반아, 유럽은 구라파 등으로 불렀죠. 어쩌다 호주에 가게 된 소년이 권투 하는 캥거루도 만나고 코알라도 만나면서 모험을 하는 이야기인데, 나도 언젠가는 호주에 꼭 가보리라! 다짐하고 꿈을 꾸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누런 갱지 재질에 몇 페이지마다 한 번씩 흑백 삽화가 전부인 책만 보다가, 친구네 집에서 디즈니 컬러 동화 전집을 발견했을 때 그 감동이란! 종이인형 놀이하자는 걸 뿌리치고 구석에 앉아 책만 보고 있으니, 친구 엄마가 '연희 좀 본받으라'며 그 딸을 야단치는 바람에 한동안 그 집에 못 가게 되어 아쉬웠던 일도 있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책을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거의 읽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통틀어 기억나는 책이라곤 '데미안' 한 권. 5학년쯤 되니 친구들과 돌아다니며 노느라 바빴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교과서나 참고서, 추천 필독서인 고전 이외의 책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개념이 팽배했습니다. 학교에서 읽으라는 필독서는 왜 그렇게 다 지루하고 졸리던지.



영어 이야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책 얘기냐 싶으시겠지만,



한 평생 영어 학원을 가거나, 따로 공부를 한 적이 전혀 없는 제가 영어로 일도 하고 수다도 떨 수 있게 된 배경의 저 초입에는 어린 시절 읽었던 책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영어든 중국어든 스페인어든 다른 나라 말을 배우고 익히려면 한국말을 잘하는 게 가장 기본이라는 얘기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래서, 외국어 교육을 아기 때부터 시켜야 하네, 어느 정도 한국말이 자리를 잡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켜야 하네 말들이 많죠. 물론, 어린 시절에 일찍 시작할수록 말랑말랑한 아이들의 뇌가 두세 개의 언어도 큰 무리 없이 소화해 습득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게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독일, 네덜란드, 이스라엘 등 유럽의 많은 나라에선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다양한 언어를 가르칩니다. 어릴 때 배운 언어는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져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와 자국어를 동시에 구사하죠.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있게 된 데에는 이미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섞여 사는 사회라는 배경이 있습니다. 모국어 사랑이 너무 각별해서 영어 쓰는 사람을 싫어하는 프랑스나, 토박이들만 사는 유럽 시골 마을의 경우 영어가 거의 안 통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단일 민족으로 구성된 한국은 어릴 때 아무리 돈을 들여 영어 교육을 시킨다고 해도, 성인이 될 때까지 꾸준히 이어지기가 굉장히 어려운 환경입니다. 우리 첫째 서진이는 두 살부터 다섯 살 까지 뉴질랜드 어린이집 종일반에 하루 종일 맡겨지는 바람에 영어를 모국어처럼 했고, 한국어가 어눌했지만 한국에 온 지 일 년 만에 놀라운 속도로 다 까먹었습니다. 둘째 서율이는 돌 지나서부터 영어 동화를 읽어주고, 영어 노래를 틀어주고, 간단한 대화도 영어로 하면서 이중 언어자로 만들겠다는 열정을 불태웠지만, 어느 정도 자기 의견이 생기는 네 살쯤 되자 "여긴 한국인데 왜 영어로 말해?" 하며 영어 사용을 극구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기 영어 교육의 효용은 아이가 영어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원어민스러운 발음으로 동화책을 읽는 모습을 보며 감동과 흐뭇함을 즐기기 위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들 영어는 그때부터 손을 놓고, 나나 잘하자 마음먹기로 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어휘력이나 습관 때문이 아니라 바로 상상하는 힘을 키우는데 그림 그리기나 책 읽기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상력이 뛰어나면 생각이 유연해집니다. 이건 이래야 한다. 저건 저래야 한다라고 틀 안에서 생각하지 않고, 이러면 어떨까? 저려면 어떨까? 상상하며 생각의 틀을 크게 키울 수 있습니다. 혹은 아예 틀이 없는 무한한 상상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는 이들을 천재라고 부릅니다.



상상력과 호기심이 있어야, 세상에서 당연시 여기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남들이 하는 대로 그저 따라 하지 않고, 의문을 가져야 자기 생각이라는 게 생깁니다. 다양한 것에 관심이 있고, 자기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다양한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능력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한국과 북한이 같은 언어를 쓰지만, 전혀 다른 배경의 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에 척하면 척하고 알아듣는 대화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요즘 초딩들이 자기네끼리 하는 대화를 70대 할아버지가 100%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문화적인 격차가 있으면 같은 언어를 쓰더라도 제대로 소통하기 어렵습니다.



글로벌 시대에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을 하려면, 언어의 장벽뿐만 아니라 문화의 장벽, 세대 간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연한 생각을 가지고, 새로운 것에 대해 늘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따로 영어 공부는 하지 않았지만 한국에 있을 때도 외국인 친구들과 만날 기회가 많았습니다. 잠깐 하던 승무원 시절에 기내에서 쓰는 문장이나 안내 방송 등을 달달 외우긴 했지만, 진정 영어권 친구들의 문화와 언어를 접하게 된 것은 종로에 있던 인터넷 카페에서 알바를 하면서부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제가 20대 초반이었으니 지금부터 약 20년 전, 한국 최초의 인터넷 카페가 종로 피맛골 막걸리 집 2층에 문을 열었는데, 주요 고객은 이메일 확인이 필요한 원어민 영어 강사들이나 배낭여행자들이었습니다.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하고, 토스트와 커피를 만들어 자리로 갖다 주는 1인 3역을 하는 시급 1,800원짜리 알바였는데, 영어도 못 하고 컴퓨터도 못하는데 어떻게 일하지? 승무원이라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고작 이런 일을 해야 하나?라고 생각했다면 시작도 못 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다양한 사람과 새로운 문물을 접할 수 있다는 데 무척 구미가 당겼고, 외국인들과 떠듬떠듬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 친구들과 어울리며 알게 된 생소한 문화들.... 예를 들어, "xx 네 집에서 파티하는데 올래?" 해서, 파티에 갈 때 뭘 입고 가고 뭘 준비해야 하나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젊은이들에게 파티란 (내가 상상했듯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각자 먹을 술이나 주전부리를 한 가지씩 들고 모여 노닥거리는 행위를 뜻한다는 것. TGIF에서 각자 음식을 시켜먹고, 계산서를 보며 자기 몫의 돈을 동전까지 챙겨내는 더치 페이 문화. 다들 함께 먹는 자리에서 '나는 괜찮아.' 하고 안 먹는 친구가 있어도 누구 하나 권하는 사람이 없어서 나 혼자 안절부절못했던 경험.



어차피 그들의 대화 속도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제대로 낄 수는 없었지만 덕분에 엄청난 양의 영어를 귀로 들었고, 생소한 그들의 문화를 가까이 접하면서 내 사고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며 여행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에서 일하며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첫 행선지는 어린 시절 책을 보며 꿈꾸었던 '남양' - 호주였습니다.



호주 배낭여행 스토리로 이어지면, 얘기가 산으로 가니 다시 돌아와 영어 얘기를 하자면....



그렇게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리고, 해외로 체류형 여행을 다닌다고 해서 영어가 비약적으로 확 느는 것이 아닙니다. 영어 실력이 늘었다기보다, 학교에서 배워서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계속 반복적으로 써먹는 연습을 하며 말하는 것에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입니다. 아무리 토익 900점을 맞았더라도, 소리 내어 말하지 않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됩니다.



한국 학생들은 워낙 공부를 열심히 하기 때문에, 다들 잘 못 된 문법을 집어내는 것과 읽기에는 강합니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문법에 딱 맞게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철수야 영화 볼래?"라고 하지, "철수야 나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지 않겠니?" 말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요. 상대방이 "wanna go movie tonight?"이라고 물었을 때, 그냥 그런가 보다 하지 않고 "Would you like to go to cinema tonight?"라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고지식함을 깨지 않는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대화로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아는 단어가 많다고 해서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어로 대화를 하려면 다양한 주제에 대해 수다를 떨 수 있는 소재가 풍부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는 바가 별로 없다면, 상대방의 말에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배우려는 태도라도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달변가보다 말을 경청하는 사람을 더 신뢰하고 좋아합니다.



한국에 살면서는 (또는 외국에 산다고 해도 한인 커뮤니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외국인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에, 중학교 때 배웠던 문법을 바탕으로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연습을 아주 많이 꾸준히 끊임없이 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십 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읽고 말하고 쓰고 읽기를 꾸준히 반복하고 있습니다. 걷거나 운전할 때 영어로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끊임없이 웅얼 웅얼 따라 합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모르는 단어가 반 이상이더라도) 무작정 소리 내어 읽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Matilda 같은 초등학생용 책을 읽었는데, 요즘엔 경영서적도 있고 성인용 소설도 있습니다. 한 단락을 두 번 정도 읽으면 신기하게 모르던 단어가 문맥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러다 보면, 영어로는 무슨 뜻인 줄 아는데 한국어로는 딱 떠오르지 않는 단어가 생깁니다. 영어 단어를 영어로 알게 되는 것이죠. 마트 팸플릿이나 타운하우스 관리소장이 보낸 안내문, 과태료 벌금 통지서 뒤에 붙은 작은 글씨들까지 그냥 버리지 않고 웬만하면 읽습니다.



경영 저술가, 말콤 글래드웰이 말한 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게 있습니다. 무엇이든 하루 3시간씩 10년을 꾸준히 연습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 언어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영어에 노출되고 사용할 기회가 없는 우리 한국인들은 자발적으로 그 기회를 만들고 연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두 달이나 일 이년이 아니라 10년, 20년 꾸준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긴 시간 많은 양의 연습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필요를 느끼고, 재미가 있어야 하고,


강제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데 대한 관심과 흥미는 어느 정도 선천적인 것 같기도 합니다. 책을 전혀 안 읽는 부모님 밑에 태어난 제가 책을 좋아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데 관심이 많았던 반면, 제 동생은 영어에 전혀 관심이 없고, 굳이 외국 여행도 안 하거든요.



누구나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분야가 있고, 다 잘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봉준호 감독도 가장 한국적인 영화로 오스카 상을 거머쥐었고, 영어 못 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영어 잘하는 강경화 장관보다 더 높은 직위에 있잖아요. 달라이 라마는 영어를 떠듬떠듬 하지만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좀 더 폭넓고 다양한 생각을 접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저는 영어를 좋은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는 내용이 알찬 사람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에게 기계적인 단어 암기나 문법 문제 풀기 같은 건 안 시켰으면 좋겠어요. 영어의 즐거움을 알기도 전해 지겨워하고, '나 영포자야'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이 될까 봐 걱정입니다. 다양하게 상상하고, 유연하게 생각하고,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신의 호기심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조금 더 여유롭게, 다소 심심하게 아이를 키우면 어떨까 싶어요.


책 읽는 엄마를 위해, 우리 서율이가 만들어준 책갈피


- 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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