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Super Soul M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희 Jul 10. 2020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

인간관계에 대한 잡설


세상에 미움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나는 유독 다른 사람의 평가에 민감했었다. 누군가 나에게 섭섭해하거나, 오해를 받으면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 겉으로는 대인배인 척 신경 쓰지 않는 척했지만,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 의도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내가 말실수를 하지는 않았는지, 그 사람의 속사정을 헤아리지 못한 건 아닌지 어떻게든 만회할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느라 몇 날 며칠 속을 썩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노력하는 것 자체가 나 자신을 얼마나 갉아먹는 일인지, 최근에 와서야 깨달았다. 사람은 어차피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똑같은 일도 각자의 방식대로 해석한다. 아무리 내 입장을 떠들어봤자 구차한 변명이 될 뿐이다. 그래서, 좋은 인간관계를 위해 노력하며 살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다면 남이 알아주든 말든 개의치 않기로.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미움받는 걸 두려워하지 않기로. 모든 사람과 친해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내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만한 사람과는 가급적 거리를 두기로

결.심.했.다.



사람을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살면서 다양한 유형의 사람을 겪다 보니 나름대로 인간관계의 기준 같은 것이 생겼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는 사람은 믿기 어렵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 거짓말 못 해요."라고 대 놓고 말하는 사람 치고 양심적인 사람 못 봤고, "나는 계산이 느리고 순수해서..."라고 말하는 사람 치고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을 못 봤다.

'내 친구 중에...' '나 아는 사람 중에...'라는 지인 자랑이나, "내가 한 때는...."으로 시작하는 호시절 얘기를 자주 하는 사람은, 마음 한구석에 자격지심이 도사리고 있을 확률이 크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해 주는 말도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조언이나 충고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사람을 소개할 때 " **대학 나오고, 대기업 *** 출신이야."라고 굳이 필요하지 않은 배경 설명을 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의 기준을 잡지 못해 방황하고 있을 확률이 크다.

자신의 힘든 상황을 강조하여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는 사람은, 도와줘도 감사할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남에게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작은 불이익에 민감하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하는 안 좋은 얘기를 여과 없이 전달해주는 사람은 사실 나를 질투하고 있을 확률이 크다.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한다고 보면 된다.

시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 이상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얘기하지 못하는 사람의 말은 믿기 어렵다. 하지만 눈을 지나치게 빤히 바라보고 얘기하는 사람의 말은 더 믿기 어렵다.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 식당에서 까탈을 부리는 사람과는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다. 불행의 에너지는 금세 전파되는 법이니까.

나에게 과도한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관계가 틀어지면, 남보다도 못 한 적이 될 확률이 높다. 지나친 기대는 실망을 낫기 때문이다. (엄마를 제외하고) 나를 실제보다 과대평가해 주는 사람은 그래서 늘 부담스럽다.





과도한 기대에 관해 얘기를 하자니, 어린 시절 내 첫사랑이 떠오른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6년간 짝사랑하던 성당 오빠가 있었다. 껄렁한 기지 바지를 입고 다니며 성당 건물 뒤에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 부류였다.

그는 정녕, 나 따위는 범접할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콜라텍도 아닌 나이트에서 놀았던 후일담을 늘어놓았고, 화장한 언니들과 몰려다녔다. 기타를 메고 다녔고, 레드 제플린이나 스콜피언스 같은 록음악을 들었으며, 분식집이 아닌 경양식집(?)을 드나들었다.

반항아 같은 얼굴에서 가끔씩 환한 미소가 보일 때면 가슴이 설레어 터질 것 같았다. 언뜻언뜻 보이는 미소에 순진한 본심이 묻어 있는 것 같아 그가 마치 비련의 테리우스 같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성당 발표회를 준비하면서 가까워질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입대고 마시던 종이컵의 코코아를 그가 홀딱 뺏어가서 원샷을 한 사건 이후 내 사랑은 절정에 달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남녀공학에 다니던 나는 남자 친구를 여럿 사귀기도 했지만, 혹시라도 그가 사귀자고 한다면 언제라도 헤어질 용의가 있었다. 그만큼 성당 오빠는 내 학창 시절 6년간 절대적인 존재였다.  

나보다 고등학교를 3년 먼저 졸업한 그와 갓 대학생이 된 내가 서울 신촌의 포장마차에서 만났다. 술김에 6년간의 짝사랑을 고백했고, 그도 사실은 나를 좋아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부터 우린 애인이 되기로 했고, 나는 세상을 전부 얻은 듯했다. 잠자는 공주가 백마 탄 왕자를 만났듯이, 오랜 시간의 가슴앓이를 정리하고 '그 후로 쭈욱 행복하게 ~ '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깨에 손을 두른 다정한 연인이 되어 술잔을 기울이고, 2차로 그가 자주 가던 MTV 카페 (락이나 메탈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카페)에 가서 맥주를 마시며 손을 잡고 음악을 들었다. 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도 나도 돈이 없었다. 그는 술을 더 마시고 싶어 했고, 나는 첫 데이트를 이쯤에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이미 둘 다 많이 취해있었다.

손을 잡고 휘청이며 걷던 그가 길거리에 서 있던 가게의 입간판을 발로 걷어찼다. 화가 난 것도 아니고 그냥 재미로 한 짓 같았다. 술 취하면 과도하게 용감해져서, 예의고 뭐고 다 팽개쳐버리는 술버릇이 있는 남자였던 것이다.

짝사랑했던 수년간의 시간이 무색하게, 한순간에 마음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에 대한 환상이 그토록 바라던 데이트 첫날 와르르 무너졌다.

친구 중 한 명이 가사를 만들어 농담처럼 부르던 노래가 있다.

사람을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을 사랑했지. 우후~
사람을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을 사랑했지. 우후~
난 병신이야. 난 병신이야.
사람을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을 사랑했지. 우후~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상투적인 가사인데, 들을 때마다 내 어린 시절 짝사랑이 생각난다.

세월이 지나니 알겠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그 성당 오빠가 아니라, 그의 모습에 내 맘대로 덧 씌워놓은 환상이었던 것이다. 환상이 깨지고 실체를 마주하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경험이었고, 한동안 그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에겐 죄가 없다. 멋대로 상상하고 기대했던 내 잘 못이지.



- 리즈 -

매거진의 이전글 차를 마실 때는 차를 마시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