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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Jul 25. 2020

핸드폰 좀 봐도 괜찮아.

엄마들을 위한 시


아이가 방바닥을 딩굴딩굴 구르며

책을 잡고 읽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쁘고 보람될 수 없다.

좀처럼 보기 힘든 그 광경을

찰칵 핸드폰 카메라에 담아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

인스타에 올린다.

'딩굴딩굴 평화로운 오후'

#독서삼매경 #육아스타그램


사진을 본 이웃집 엄마들은

하루 종일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내 아이를 바라보며

자괴감에 시달리고

급격한 불안 증세를 경험한다.

야! 그만하고, 너도 책 좀 봐!

엄마의 난데없는 불호령에

눈물이 글썽해질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미안하다. 얘들아.


고백하건대,

인스타는 인스타일뿐

우리집 사정도

님들과 다르지 않다.  


빌 게이츠가 자기 아이들에겐

컴퓨터 사용 시간을 제한한다는 기사를 보고

하루 30분! 이야 하고 엄격한 지침을 만들어 보지만

아이가 "엄마 이것 봐봐"하며

손가락에 낀 고무줄이 무슨 모양인지

맞춰보라는 요구가 스물두 번째를 넘어가면

그냥 쓰윽 핸드폰을 던져주고

못 본 척 문을 닫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밀려든다.


종일 티브이 앞에 앉아 있는 아이를

애써 모른 척하며

언젠가 아동 심리 발달 전문가가 나와

그간의 이론을 뒤엎고

"사실, 아이가 하루 종일 영상을 봐도

정신 건강에 큰 지장은 없습니다."

라고 말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기도 한다.


이 불량한 육아 환경에서 아들은

주니어네이버 '한글이 야호'를 통해

혼자 한글을 배웠다.

어느 날부터인가

'가가가에 이를 붙이면 개!'

하는 노래를 종일 흥얼거리더니

간판의 받침 없는 글씨를 읽기 시작하고,

부지불식간에 동화책을 혼자 읽을 수 있게 됐다.


아이 키우는 집집마다 거실에 붙여진

가나다라 한글판도 학습지도 없이

한글을 터득하고 책을 읽게 된 데에는

한글이 야호 50%

핸드폰에 아이를 맡긴 죄책감을 만회하기 위해

밤마다 읽어준 동화책 50%

의 공로가 있었다.


큰 아들도 따로 한글을 가르친 기억이 없다.

뉴질랜드에서 말을 배우기 시작해

한국말이 어눌한 상태로 귀국해서

서울의 한 어린이집을 보냈을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다른 아이들은 글씨를 읽는데,

혼자만 못 해서 적응이 힘들 수 있어요."


"언젠가는 하겠죠. 괜찮아요."라는 나의 대답에  

엄마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저 엄마 이상해"


그렇게 나는 한국에 사는 내내

아이를 방치하는 무신경한 엄마로

취급받곤 했다.


부족함이 많은 엄마이지만

내가 아이를 내버려 두는 이유는

사람은 뭐든 하고 싶을 때

스스로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뜻을 굽히지 않고 유유자적 살다 보면

언젠가는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자유방임형' 엄마들을 만나게 된다.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게 되어있다.

아이의 성장 과정에 대해

솔직하고 느긋한 그녀들 덕분에

유쾌하고 행복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우리 애는 15개월 때까지 못 걸었어. 뭔가 문제가 있나 싶었다니까."

"두 돌 지날 때까지 말을 제대로 못 했어요."

"우리 애는 여덟 살이 돼서 자기 이름 석자도 겨우 썼어."


그럼 우리는 이렇게 맞장구를 친다.


"지금은 키도 크고 잘만 뛰어다니잖아."

"지금은 말을 너무 많이 해서 탈이잖아. 엄마한테 한 마디도 안지더만"

"지금은 글씨도 다 잘만 읽고 쓰잖아. 우리 남편은 아직도 맞춤법을 틀리는데 사는데 아무 지장 없어."



아이가 얼마나 빨리 걸었나,

얼마나 빨리 기저귀를 떼고, 글씨를 익혔나

경쟁하듯 은근히 자랑하는 엄마들 틈에서

주눅이 들고, 조바심이 느껴진다면

홀연히 그들과의 관계를 끊자.


그리고,

'가만 냅두면 언젠가 다 알아서 한다'라는 소신을

함께 공유하고 지지해 줄 수 있는

느긋한 이웃을 만나 친구가 되시라.


엄마가 믿는 만큼

아이는 반드시

큰다.



- 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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