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부부들을 위해서, 우리 부부가 결혼 전 서명한 서약서의 전문을 공개한다.
결혼 서약서
1. 결혼은 4년 중임제로 한다. 양쪽 모두의 동의가 있는 한 무제한 연임할 수 있다.
2. 매 4년마다 도래하는 결혼기념일에 결혼 유지 또는 이혼 여부를 결정한다.
3. 결혼 유지는 상호 간의 동의가 이루어질 때에만 가능하다. 일방이 이혼을 원할 경우 지체 없이 따르며 법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4. 결혼 유지 또는 이혼을 결정하는 사유는 서면을 통해 상세히 전달한다.
5. 매 4년마다 도래하는 결정일 이외 기간에는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 단, 도박, 폭력, 범죄, 알코올 또는 향정신성 약물 중독 등 이혼의 사유가 분명하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배우자와 자녀의 안전에 해가 될 경우 즉각적인 이혼이 가능하다.
6. 이혼 시 재산은 기여도를 따지지 않고 3:7로 분할한다. 자녀의 주양육을 담당하는 사람이 7을 갖는다.
7. 이혼 시 양육권은 아이의 의견을 따르며, 아이가 만 12세 이하인 경우 엄마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단, 도박, 폭력, 범죄, 알코올 또는 향정신성 약물 중독으로 인한 이혼 귀책사유 당사자에게는 양육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8. 주 양육권자가 아닌 경우, 주 2회 주말에 아이와 시간을 보낸다. 단, 7항에 열거된 사유로 이혼하는 경우의 면접 교섭권 여부는 주 양육권자가 결정한다.
9. 아이가 있는 경우, 이혼 후 2년 뒤 재결합의 의사를 확인한다. 그 전에는 재혼할 수 없다. 2년 이내 재혼하는 경우 위자료로 현금 5억을 배상한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남편만을, 아내만을 사랑할 것을 맹세하신 분들께는 어처구니없는 내용으로 들릴 수 있다. 국회의원도 아니고 평생 반려자를 4년 단위로 갈아 치우겠단 말인가? 하고 버럭 화를 내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결혼 4년 중임제를 법적으로 제도화하자는 것은 아니니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시기 바란다.
이 서약서는 4년 후 일방이 이혼을 원할 경우 지저분한 소송이나 시비 없이 깔끔하게 헤어질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와 동시에 결혼 초반부에 충분한 숙고 없이 결혼과 이혼을 결정하는 사태를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남과 함께 사는 일은 피곤한 일이다. 적당히 눈 감아주고, 이해하고, 상대방이 싫어하는 일은 웬만하면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은근히 신경을 건드리는 말투, 이해할 수 없는 생활 습관, 돈 문제, 가사분담에 얽힌 갈등, 늘 나만 노력하는 것 같은 억울함 등등. 살다 보면 먼지가 뭉쳐 털실이 되듯 켜켜이 쌓인 스트레스가 커져만 간다. 뭉친 분노가 손에 단단히 잡힐 정도가 되면 우리는 패대기치듯 직구를 날린다. "이혼 해!"
'이혼 해!'라는 말은 주로 아내가 남편의 기선을 제압하고, 굴복시키기 위한 용도로서 사용된다. 동시에 자신이 매우 힘든 상황이며, 남편의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자주 사용되는 비슷한 표현으로는 '나 우울증 걸린 것 같아"가 있다.
문제는 남편이 아내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할 확률이 크다는 것. 비난에 취약한 그의 귀에는 아내의 하소연이 "너 같은 쓰레기랑은 못 살겠으니 꺼져!"라는 말로 들릴 뿐이다. 상처 받은 남편의 영혼은 속을 알 수 없는 음험한 야수로 돌변한다. 침묵하고, 문을 쾅 닫고 집을 나가버린다. 새벽에 술이 떡이 돼서 기어들어와 "내가 뭘 그렇게 잘 못 했어?"“네가 그렇게 잘났어?”하고 다짜고짜 따진다. 그나마 한바탕 싸우고 말면 다행이다. 이 참에 잘 됐다는 듯 '그래, 이혼해!'하고 맞불이라도 놓는 날에는 일이 복잡해진다.
홧김에 한 이혼으로,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지나고 나니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일들인데 '이혼하자'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는 바람에, 자존심 싸움으로 번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원한다면 4년 후에 하자'라고 미리 협의해 두면 불필요한 소모전을 피할 수 있다. 진정 이혼을 하고 싶으면 4년간 차곡차곡 준비해서 하면 되는 것이지, 자꾸 들먹여서 서로에게 상처를 줄 필요는 없는 거니까.
약속을 생명으로 아는 고지식한 사람이라면,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겠다는 언약을 담은 성혼 선언문에 '네'라고 대답하는 순간 발에 털컥하고 족쇄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때가 되니 결혼을 하고, 어쩌다 보니 결혼을 한다. "신랑 xx군과 신부 xx양은 어떤 경우라도 항시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진실한 남편과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 할 것을 맹세합니까?'라는 주례 선생님의 질문에 '글쎄요.'라고 답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모두가 난감해지는 일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네!'하고 대답한다.
엉겁결에 한 약속이라도 그것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한다. 일가친척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나와 상대방의 인생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사는 게 지겹더라도, 생각지도 못 한 결혼의 부조리에 맞닥뜨리더라도 어떻게든 버티며 노력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그 최소한의 기간을 4년으로 정했다.
4년을 잘 넘겼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정치인이 유권자를 대하듯 우리는 늘 재신임을 위해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밖에서는 세상 좋은 사람 행세를 하면서 집에만 오면 아내를, 또는 남편을 냉랭하게 외면하거나 쥐 잡듯 잡는 부부의 이야기는 흔해 빠진 드라마 소재가 되었다. 부부들은 싸우기 싫어서 서로를 피한다. 늘 똑같은 문제로 싸우는 게 지겹고, 싸워봤자 답이 없다는 걸 알기에 체념하고 서로 입을 닫는다. 하지만, 그런 식의 회피로는 4년 후 재신임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법륜스님의 '스님의 주례사',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같은 책이라도 읽으며 소통의 기술이나 배우자의 마음을 사는 법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최선의 노력을 다해보고 한 이혼이라야 후회가 없다. 아이에게도 덜 미안하다. 이혼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이혼 과정에서 입은 상처가 너무 커서 재결합의 가능성은 1%도 없다고. 양쪽 모두 이혼에 동의하고 재산과 양육권 분할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주로 한쪽은 이혼을 원하고, 한쪽은 원하지 않는다. 혼인파탄의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애쓰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내밀한 삶은 타인에게 처절하게 까발려진다.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며 공방 하는 동안 당사자들은 물론 아이가 받는 상처는 상상 이상이다.
한쪽이 원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이혼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합리적인 이성이 작동하는 시기에 재산이나 양육권에 관한 문제는 미리 원칙을 정해두고, 지난 일을 왈가왈부하며 싸우는 과정을 생략해야 한다. 또한, 4년 후 닥칠 수 있는 이혼에 대비해 경제적, 심리적으로 배우자에게 의지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처를 최소화 한 깔끔한 이혼은 훗날 자기 자신을 가감 없이 되돌아볼 수 있게하는 마음의 여지를 준다. 다른 사람을 만나봐야 다 그놈이 그놈이고, 그년이 그년이라는 것. 상대에게 변화를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바뀌어야 했다는 것. 그래도, 아이에게 진정한 아빠가, 또는 엄마가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이라는 것.
고독과 그리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뒤에야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결혼을 번복했듯, 이혼을 번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긴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께라면, 이제 그만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위 서약서는 서두에 얘기했듯 결혼 전에 쓴 것이 아니다. 결혼 19년 차를 넘어서고 마흔일곱 살이 된 내가 수개월간의 고민을 거쳐 어제 저녁에야 비로소 완성한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조금 더 현명하게 갈등을 극복할 수 있었을 텐데. 편하게 대하는 것과 함부로 대하는 것의 선을 넘나들며 말과 표정으로 상처 주지 않도록 조금 더 신경 썼을 텐데. 여자로서의 매력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일을 게을리하면서, 왜 더 이상 나를 여자로 봐주지 않는 거냐? 따지지 않았을 텐데. 모든 불행을 남편 탓으로 돌리지는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서약서를 썼다.
이 서약서는 가정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노력한다는 약속을 담고 있지 않다. 잘하겠다는 약속만큼 공허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마음이 변한다. 작은 욕심으로 비열해지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하고, 좌절하여 막 나가게 되는 때도 있다. 하지만, 영혼이 완전히 망가지지 않는 한,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옆에 있는 한 우리의 삶은 언제든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결혼을 했다면, 인생의 동반자가 되기로 약속했다면 비난하지 않고 지켜봐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한낯 말에 불과한 약속에 집착하며 왜 지키지 않느냐고 상대방을 몰아세우기보다, 당신은 지금 잠시 방황하는 것뿐이라고 철석같이 믿어주어야 한다. 가정생활 준칙이나 각서 같은 것은 그것을 지키지 못했을 때 마음 놓고 상대방을 비난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줄 뿐, 깔끔한 이혼에도 다시 잘해보자는 악수에도 도움을 주지 못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2003년, 갓 서른을 넘긴 남편과 아직 20대였던 나는 이렇게 심도 깊은 생각을 할 만큼 결혼에 대해 알지 못했다. 진지한 고민 따위도 없었다. 그저 모텔비가 아까워 차라리 방을 얻자고 했고, 매일 몰래 외박을 할 수는 없으니 부모님께 허락을 구했다. 그래도 식은 올려야 하지 않겠냐는 말에... 얼렁뚱땅 결혼을 했다.
살아보니 그게 얼마나 용감한 짓이었는지 깨닫는다. 내 인생을 함께 할 동반자, 내 아이의 아빠가 될 사람을 고르는 일이 얼마나 무겁고 신중한 일이어야 했는지 말이다. 땅을 치며 후회한 일이 없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돌이켜보면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이 참 많았다. 엉겁결에 한 결혼치고는 정말 다행이다.
이미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나는 남편에게 이 서약서를 내밀려고 한다. 아직까지 함께한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많기 때문이다. 짧으면 5년, 길어봐야 10년쯤 지나면 에스트로겐과 테스토르테론의 분비 양상이 드라마틱하게 바뀌고, 우리 부부의 관계도 지금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어떤 경우라도, 서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심드렁한 중년부부가 되고 싶지는 않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사랑받는 아내가 되고 싶고, 지팡이를 짚더라도 한 손으론 남편의 손을 잡고 싶다. 황혼이혼, 졸혼 가정이 늘어가는 100세 시대에 나는 끝까지 부인으로 생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남편도 끝까지 긴장해주기 바란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 서약서에 서명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