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고민하다.
누가 나에게 '백만 원 줄게. 닭발 한 개만 먹어봐"라고하면 나는 단호히 거절할 의사가 있다. 차라리 뱀 고기라면 눈 딱 감고 먹어보겠지만, 닭발은 생각만 해도 괴롭다. 생선의 머리, 동물의 내장 (곱창이나 양), 선지 등 살아생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고기류는 먹어 본 적이 없고, 먹고 싶지도 않다. 닭발을 잘 먹는 내 친구는 오이를 못 먹는다.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다고 한다. 계란 반숙이나 팥죽 등 질척한 음식을 못 먹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사람마다 곧 죽어도 싫은 음식이 있듯이, 연애를 할 때도 남들에겐 사소한데 내 눈에는 너무 거슬려서 정이 딱 떨어지는 순간이 있다.
술 취해서 괜히 길거리의 입간판을 발로 차던 내 첫사랑이 그랬고, 그 후로도 연애할 뻔하다가 딱 마음이 식어버린 일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그 중 가장 기억나는 에피소드를 하나 떠올려보자.
한 때 꽤 멋지다고 생각했고, 연애까지 할 뻔했는데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내가 기억하는 건 그가 꽤 멋진 차를 몰았고, 천만 원이 넘는 돈을 들여 튜닝했다는 오디오 시스템을 자랑스러워했다는 것. 첫 데이트를 하는 날 근사한 식당을 예약했다며 강변북로를 타고 마포구에서 강남구로 운전을 하던 장면이다. 평일 오후의 강변 북로답게 차가 적당히 막히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도로 사정이 답답할수록 다른 차들의 흐름에 맞춰 적당한 간격을 유지해 줘야 하거늘, 그는 자꾸만 앞 차와의 간격을 애매하게 벌렸다. 마치 비뚤게 걸려있는 액자를 보는 것처럼 은근히 신경이 거슬렸다.
결정적으로 정나미가 뚝 떨어진 것은, 멀찌감치 떨어진 앞 차와 그의 차 사이로 옆 차가 끼어들어오려 하자 그가 갑자기 '부웅'하고 속력을 내며 못 들어오게 막았을 때다. 어딜 감히 내 차 앞을 끼어들어와 하는 식으로, 옆 차의 진입을 막아내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그가.... 그야말로..... 꼴배기 싫었다. 그 날 함께 밥을 먹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바로 연락을 끊었을 거다. 하마터면 사랑할 뻔했던 그는 내 기억 속에 그저 '강변북로남'으로 남아있다.
지나치게 굽신굽신 친절한 사람도 매력이 없지만, 식당이나 편의점 등에서 알바생들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하는 사람과는 도저히 친해질 수 없다. 그건 나의 별난 취향이 아니라 보편적인 정서 아닐까 싶다. 그러나, 가끔 식당에서 "야, 주문 안 받아? 메뉴판 좀 가져와." 하는 남자와 마주 앉아 있는 여자들을 볼 때가 있다. 그럼 옆에 가서 "이 남자는 진짜 아니야. 당장 헤어져."라고 귓속말을 해주고 싶은 충동이 불끈 올라온다.
남들과 먹는 속도를 맞추지 않고 지 입만 생각하는 사람, 밥 먹을 때 입속의 음식이 보이는 사람, 거리낌 없이 큰 소리로 트림을 해대는 사람도 참기 힘들다. 인생이 참 아이러니한 것은 그 삼종 세트를 다 갖춘 남자와 내가 결혼해서 여태껏 살고 있다는 것이다.
J와의 연애에서 첫 번째 고비는 다름 아닌 즉석 떡볶이 집에서 찾아왔다. 부대찌개와 즉석떡볶이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라면사리 아닌가? 적당히 분배해서 오뎅과 함께 맛있게 먹어야 할 라면사리를 다 익기도 전에 왕창 떠다가 자기 앞접시에 덜어놓는 그를 보며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나 싶었다. 너무 빈정이 상해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그는 아랑곳없이 속력을 내며 2인분의 떡볶이를 먹어치우고 있었다.
상대가 기분 나쁜 티를 내면 "왜 그래? 뭐 기분 안 좋은 일 있어?"라고 물어보기라도 해야 할 거 아닌가. 그와 관심은 오직 음식에만 있어서 기껏 한 다는 질문이라고는 "이거 안 먹을 거야?" 뿐이었다. 각자 한개씩 먹을 계획으로 주문했으나, 나중에 먹으려고 아껴두었던 내 앞에 놓인 삶은 계란을 가리키며 한 말이다. 사람은 분노가 극에 달하면 냉정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싸늘하게 대답했다. "먹을 거야."
내가 아무리 뾰로통하게 있어봤자, 음식을 앞에 둔 그는 알아채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 그만 받아들여야 했다. 나의 씁쓸함을 처참히 짓밟고, 쾌재를 부르며 삶은 계란을 냠냠 먹는 그의 모습은 차마 허락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몫의 계란을 잘게 부수어 남은 떡볶이 부스러기와 함께 국물에 비벼 악착같이 먹었다. '네가 너무 빨리 먹어서 나는 이것밖에 못 먹는다' 시위라도 하듯이.
하지만 그는 그 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음식 앞에서라면 배려와 대화보다, 경쟁에 익숙한 그는 나의 불편한 심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라면 일곱 개를 한 번에 끓여먹던 시절을 추억하고, 떡볶이를 안 삼키고 먹는 신공을 가진 친구의 이야기를 웃으면서 하는 그의 식문화는 나와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다. 상대방이 음식을 느리게 먹으면, '먹는 속도가 느리니 나도 좀 맞춰서 먹어야겠다.' 생각하는 게 아니라 "왜 그렇게 안 먹어? 난 음식 남기는 건 못 봐." 하면서 먼저 싹싹 먹어치우는 식이었다.
그 날 나는 큰 결단을 내려야 했다.
헤어질 것인가.
가르칠 것인가.
이 것은 남편과 연애시절 이야기이니, 그 날 내가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는 다들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르침의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얼마나 부단한 마음 수련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는지는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먹는 걸로 잔소리를 하고, 눈치를 주는 것만큼 치사한 일이 없다. 듣는 사람은 서럽고, 하는 사람은 괜히 말했나 난처해진다. 적당히 기분 나쁘지 않게 농담처럼 진담인 듯 말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밥 먹는 중에 이야기하면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데, 그렇다고 안 먹을 때 이야기하면 건성건성 안 듣는다.
우리는 이 문제로 사는 내내 싸웠다. 평생의 습관을 고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러니 잦은 분쟁을 원치 않는다면 적당히 포기하고 사는 지혜도 필요하다. 하지만, 30대의 나는 그럭저럭 참아 넘기는 성격이 아니었다. 나 삐짐! 하고 티를 내는 것으로, 알아차려주기를 기다렸다가는 내 속만 터질 뿐이다라는 걸 깨달은 후 나는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천천히 먹어. 나도 먹을 거야. 내 속도에 맞춰줘. 다 먹지 말고, 남겨. 나도 좀 먹게 그만 먹어."
그러다 보니 나는 남편에게 '여자치고는 식탐이 꽤 있다.'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억울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결혼을 하고 나니 무엇보다 남편이 다른 사람들과 밥 먹을 때 욕먹을까봐 더욱더 지적질을 멈출 수 없었다. 남편은 대부분 허허 웃으며 넘기는 편이지만, 반복되는 잔소리가 마음속에 앙금처럼 쌓였을 것이다.
각고의 투쟁 끝에 (그리고 세월이 지나 남편의 소화 능력이 예전 같지 않아 지면서) 지금은 먹는 속도가 꽤 느려졌다. 마지막 하나 남은 음식은 상대를 위해 배려해 두었다가, 아무도 안 먹는 게 확실해질 때 집어먹는다. 음식을 입에 넣고 말을 하다가도, 내가 눈을 딱 마주치면 손으로 입을 가리거나 음식을 삼키고 말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철부지 자식을 포기하지 않고 가르쳐 사람 구실을 하게 만들어 놓은 것 같아 흐뭇해진다.
물론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지난주 한국에 있는 남편과 영상 통화를 하는데, 옆에 있던 후배가 고자질을 했다. "아침에 라면 끓이는데 자기는 안 먹는다고 해서 두 개만 끓였거든. 근데 또 형이 거의 다 먹었어!"
“이 노무 인간 그 버릇을 또 못 고치고!" 하고 후배의 역성을 들며 나는 평. 생. 교. 육. 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 리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