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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Aug 31. 2020

여덟 명의 아이를 키우는 호주 엄마, 조 이야기


호주 사람들은 아이를 참 많이도 낳고, 그래서 그런지 참 쉽게 쉽게 키운다는 생각이 든다.


얼굴에 빨간 기도 가시지 않은 갓 태어난 아기를 옆구리에 끼고 산책을 하고, 돌이 갓 지난 아기를 바닷가에 풀어놓고 모래가 얼굴에 범벅이 되어 있어도 후다닥 털어주기는 커녕 웃으며 지켜보는 부모들도 많다.


3년 전, 케언즈에서 만난 조 Jo 는 당시 임신 8개월이었다. 남편과 이혼한 후 열세 살, 열두 살, 여덟 살, 여섯 살, 세 살 다섯 명의 아이와 고양이 두 마리를 차에 싣고 약 1800km에 달하는 길을 혼자 운전해서 골드코스트까지 내려왔다.


뱃속에 있던 아이가 태어난 지 1년 정도 지났을 때 학교 축구 대회에서 그녀를 우연히 만났다. 네 살 아이와 걸음마를 막 시작한 막내, 전동 휠체어를 탄 90세 할머니를 모시고 큰 아이 축구 응원을 하러 왔단다. 엄마가 경기를 보는 동안 아기가 유모차에서 내려와 땅바닥에 철퍼덕 앉아 길거리에 흘려 놓은 팝콘을 주워 먹기 시작했다.


우리 애들도 떨어진 과자쯤은 다 주워 먹고 컸지만, 남들이 길에 흘려 놓은 (게다가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밟기까지 한) 팝콘을 먹는 모습을 그냥 보아 넘기기는 힘들었다.


응원에 정신이 팔린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니 애 좀 봐!" 하니 뒤를 돌아본 조가 활짝 웃으며 대답한다.


"정말 귀엽지 않아?"


말리기는커녕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엄마의 지지를 등에 업고, 아기는 결국 꼬물대는 손으로 작은 부스러기까지 다 주워 먹어 깨끗하게 길을 청소해놓았다.


최근 그녀는 또 아기를 낳았다. 아이 여섯을 혼자 키우는 와중에 연애도 하고 새로운 동거를 시작한 것도 신기한데.... 그새 또 쌍둥이를 임신해서 낳았단다.


이제 여덟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9인승 미니버스에 3개의 카시트와 두 개의 부스터 시트를 장착하고 조는 학교와 축구 클럽과 마트와 도서관을 누빈다. 아이들 등하교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닌데, 차로 한 시간 거리의 브리즈번 축구 클럽에 다니는 큰 아들과, 30분 거리의 골드코스트 축구 클럽에 다니는 아들 두 명을 모두 건사한다. 학교, 유치원에 아이들 방과 후 프로그램, 운동까지 모두 직접 운전해서 데려오고 데려와야 하는 상황이라 두 살 아이와 5개월 쌍둥이는 늘 차에 멀뚱멀뚱 누워있다. 물론 남편이 많은 시간 함께하며 돕긴 하지만 엄연히 직장이 있는 사람이니 대부분의 아이들 케어는 그녀의 몫이다.


그래도 그녀는 볼 때마다 웃는 낯이고, 볼 때마다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 자랑하느라 침이 마른다.


자기 아이들도 모자라 집에 늘 아들 친구들을 초대하기도 한다. 그저께는 큰 아들 생일이라 아이 친구 여덟 명을 불러 바닷가 공원에서 파티를 하고, 집에서 화덕 피자를 먹으며 영화를 보는 슬립오버를 했다. 다음날 일이 있어 우리 애는 공원에서 바로 데리고 오겠다고 하니, 자기가 아침에 서진이를 집으로 데려다주겠다며 꼭 보내라고 난리다.


중학생 아들 생일 파티를 해 주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인데, 생후 5개월 된 쌍둥이와 두 살 아이를 포함한 여섯 명의 아이들을 돌보며 어쩜 아이들을 다 초대해 집에서 재울 생각을 하는지.


더 놀라운 것은

그 집엔 강아지 두 마리와 고양이 세 마리, 닭도 몇 마리 있다는 거.



호주나 뉴질랜드에 사는 동안, 아이를 쉽게 쉽게 키우는 엄마들을 보며 역시 선진국 엄마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하는 모종의 존경심을 가진 적도 있다. 하지만, 살면서 생각해보니 그녀들의 육아 방식에 무슨 철학이 있어서라기보다, 키워야 할 아이가 많으니 자연히 덜 유난을 떨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생기는 대로 아기를 낳아 키우던 우리 할머니 세대도 일곱, 여덟 명의 아이를 어떻게든 키워내지 않았는가. 아기를 광목으로 기둥에 묶어두고 밭일을 나갔다 오기도 하고, 큰 애가 막내를 업고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그냥 쿨하게 막 키우던 시대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물론, 그 당시에 비해 지금 사회는 많이 풍요롭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은 걸 누리게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좀 더 풍요롭게 실현할 수 있다. 한두 명의 아이를 낳아 아낌없는 지원과 관심을 쏟는 방식과 좀 더 많은 아이를 낳아 그것을 분배하는 방식 중 어느 게 맞는지 모르지만 이 곳에 살다 보면 애 하나 키우는 것쯤은 큰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조의 경우는 호주에서도 흔치 않은 케이스이긴 하지만 매우 호들갑스럽게 엄지를 치켜드는 나와는 달리 "참 힘들겠네. 대단해."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대다수다.


아이가 서너 명쯤 되는 집은 아주 흔하고, 여섯 명 이상인 집도 드물지 않다. 이혼하고 재혼하면서 가정이 합쳐지는 경우가 많은 탓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큰 고민 없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경향이 있다.


아이를 많이 낳는 문화의 한 축에는 최대한 육아를 돕고 배려하는 사회 곳곳의 장치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아기 출산 전, 출산 시, 출산 후로 나뉘어 각 기간마다의 정부 지원금, 각종 세제혜택, 휴가 혜택 등이 주어지는 것은 물론, 어딜 가나 남자, 여자, 패밀리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고, 대부분의 길과 버스까지도 유모차나 휠체어가 다닐 수 있게 되어 있으니 한국에 비해 아이 키우기가 훨씬 쉽다. 도서관, 공원 등 공공시설에선 영유아를 위한 프로그램이 늘 제공되고, 시에서 주선하는 유모차 워킹 클럽도 여기저기서 열린다.


예를 들면, 골드코스트에 있는 대부분 짐 (헬스클럽)은 $3~$5 정도의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보육 서비스를 제공한다. 엄마가 운동하는 동안 전문 보육 교사들에게 아이를 맡길 수 있다. 골드코스트에 날씬한 아기 엄마들이 많아 참 대단하다 했는데, 짐에 가보니 엄마들은 거기 다 모여 있었다.


어쨌든 호주 엄마들을 보면 확실히 애 키우는 거 힘들다는 소리는 쑥 들어간다.


하지만 지난날 나의 푸념에 대한 반성이 남편들에게 '애 하나 키우는데 뭘 그렇게 유세를 떠냐'라고 함부로 말할 수 있게 하는 빌미가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한국에 산후 우울증에 걸리는 여자들이 유독 많은 이유는 고작 애 하나 키우는 게 힘들어서가 아니다.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젖 물리고, 종일 슬링과 아기띠를 캥거루처럼 매달고 사는 삶이 고단하긴 하지만, 옆에서 함께 해주는 남편이 있다면 얼마든지 행복한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다.


한창 부부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고단한 시기에, 집에 가면 아내가 징징대고 쉬지도 못 하게 집안일을 시켜댄다며 밖으로 겉도는 (일부...라고는 하지만 아주 흔한) 남편들을 보고 있자면, 저런 마음으로 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나? 의문이 든다. 물론, 한국의 직장은 여전히 가족을 고려하지 않는 문화가 팽배하고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둘 다 잘하기는 많이 힘들다는 걸 안다. 하지만 아기가 어려서 손이 많이 가는 때에는 당연히 많은 부분을 함께 희생할 준비를 해야 한다.


갓난아기를 키우는 과정에서 여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사회로부터 격리된 것 같은 소외감이다. 혼자 힘으로는 먹을 수도, 일어 설 수도, 대소변을 가릴 수도 없는... 나 하나만 의지하는 생명을 몸에 달고 하루를 지내다 보면 내가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특히, 젖을 내놓고 잠들다 깨다를 반복하는 밤중 수유 시기에는 내가 사람인지 젖소인지 헷갈리면서 아주 원초적인 자괴감이 밀려든다.


자괴감만 드는 게 아니라 죄책감도 든다. 특히 아기가 품 안에서 곤히 잠들어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혔는데 베개가 머리에 닿자마자 화들짝 깨어 울기 시작할 때. 우는 아이를 대책 없이 노려보며 "도대체 왜 그래? 좀 자!" 하고 소리를 꽥 지르고는 나도 엉엉 운다. 그런 때가 있었다. 내가 엄마 자격을 갖추지 못 한 천하의 몹쓸 년이 된 것 같아 울고, 이 고통을 나 혼자 짊어지고 사는 것 같은 억울함에 울던 시절이.


이렇듯 동물적으로 예민한 시기에, 함께 손 잡아주는 남편이 없으면 정말 절망적인 마음이 될 수밖에 없다. 그에 더해,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며 일주일에 몇 번씩 술에 취해 밤늦게 들어오고, 나의 하소연을 잔소리 취급하고, 슬슬 눈치나 보며 아내를 피한다면.... 아, 한국 엄마들에게 유독 산후 우울증이 많은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기를 하나씩 매달고, 대 식구가 주말엔 늘 야외활동을 하는 조와 남편.


대단한 조의 옆에는 과묵하지만 다정한 남편이 있다. 하루 종일 분주했을 조를 대신해, 밤중 수유나 아이들 재우는 일은 남편이 맡는다고 한다.


덕분에 밤에 충분히 푹 자면서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고, 남편은 하루 중 유일하게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한다며 또 은근히 자랑질을 한다.


참 긍정적인 그녀, 조.

이렇게 멋진 사람이 가까이 살면서 나를 꾸준히 돌아보게 만드니

감사한 일이다.



- 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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