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끊겠다고 선언이나 하지 말 것을. 고작 13일 만에 쓰윽 나타나 3일째 글을 올리고 있는 나란 인간을 도대체 무엇으로 변명할 수 있단 말인가.
부디 아무도 나의 경망스러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는 말아주길.
남편과 2~3일에 한 번 꼴로 긴 통화를 한다. 남편은 어제 제주에 두 번째 태풍이 오고 있어 여기저기 단도리를 하느라 뙤약볕 아래서 고생이 많다고, 삼십 분이 넘게 자화자찬을 해댔다.
생색내는 인간을 그냥 넘어가지 않던 예전의 나라면 "알았어. 알았어. 그런데 소방시설 관련해서는 알아봤어?"라며 안 했을 것이 뻔한 다른 일에 대해 질문을 함으로써 조금이라도 기를 죽여놔야 직성이 풀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팬대믹을 겪으며 세상일에 최대한 관대해지기로 결심했기에, "대단하네. 얼마나 고생이 많아.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잘 챙겨 먹어야 해." 하며, 수화기 너머로 관세음보살의 미소를 지었다.
너그러운 리액션으로 서로의 고생을 치하하다 보니, 대화는 점점 신성한 방향으로 흘러 결국 '코로나 사태가 우리 가족의 역사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관한 고찰을 하기에 이르렀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고, 가정의 화목함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더 원수가 되었다는 집도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이 기간 동안 가족 없이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법을 연습했다.
헤어져 지내는 동안 남편도 나도 근육이 붙고, 군살이 빠져가고 있다. 매일 운동을 하고, 인스턴트가 아닌 진짜 음식을 먹고, 부정적인 생각이나 말을 아끼고, 현재의 삶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남편은 요즘 습관적으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내뱉는다고 한다. 땀 흘려 일하고 시원한 물에 샤워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고, 너무 더운 시간을 피해 아침 일찍이나 저녁 늦게 시간을 정해 일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음에 감사하고, 맛있는 삼계탕이나 초밥을 저렴하게 사 먹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고 한다. 조기 축구를 하며 거북목 증상이 나아졌고, 망치를 잡고 일하며 오십견이 사라져서 감사하단다.
'이 인간이, 많이 외롭구나.'
마음이 울컥했다.
하지만, 혼자 지내는 시간이 쓰고 좋은 약이 되었구나 싶다. 내 잔소리와 감시가 없으면 자기 관리도 못하고 엉망으로 살 것 같았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초기 한 두 달은 라면을 먹고, 당구장을 드나드는 시기도 있었지만 그 정도의 일탈이야 이해할 만한 사안이니 모르는 척하고 있었더니, 결국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잘 사는 듯하다.
<남편도 나도,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꽤 단단한 어른이다.>라는 믿음이 싹텄다. 이를 통해 얻게 된 안도감은 앞으로 우리 부부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적어도 내가 잔소리는 훨씬 덜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제대한 군인처럼 한 달만에 군기가 빠져 모든 게 예전처럼 돌아가지만 않는다면.
11월에 아이들이 각각 9학년, 4학년을 마치면 한국에 들어갈 예정이다. 가격 협상도 없이 대충 집을 팔았고, 신중하게 고른 가구와 가전, 자동차와 살림살이들도 헐값에 팔아치울 것이다.
집도 물건도 이렇듯 살 때는 백년만년 끼고 살 것처럼 고르고 고르지만, 떠나야 할 때는 다 부질없음을 알게 된다. 한국에서 집도 절도 없이 떠돌며 몇 달 지내다가, 영국으로 갈 것이다.
남편이 많이 그립다.
하지만 정작 내가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되는 순간은 뿔소라와 방어회, 고사리 무침을 앞에 두고 제주 막걸리를 막 따르는 순간을 상상할 때라는 것.
아무리 애틋해도 우리는 살만큼 산 부부니까.
<풍요로웠던 제주의 삶을 회상하며, 미소 짓는 밤>
- 리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