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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Jun 13. 2020

제목 빨 없이도,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브런치 시작 2일 차, 조회수 18,411명

명상을 시작한 후로 밥 먹을 땐 가급적 스마트폰이나 TV 화면을 보지 않고 먹는데만 집중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무의식 적으로 음식을 쑤셔 넣지 말고, 차분히 앉아 음식의 향과 맛과 식감을 음미하며 먹으라는 영적 스승 에크하르트 톨레 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때로는 흐트러지고 싶은 날이 있는 법. 며칠 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도시락 싸고 남은 음식 부스러기를 모아 대충 밥에 비벼 아점을 한 술 뜨려는데 유튜브의 유혹이 강렬하게 몰려왔다. 마음 같아서는 라디오스타 박나래 편을 보고 싶었지만 그러다 보면 또 아침 한나절을 유튜브 예능 꼬리물기로 허비할 것이 뻔하기에, 유혹을 뿌리치고 15분짜리 세바시 강연 한 편을 틀었다.  


빨리 밥을 먹고 싶은 마음에 랜덤으로 골라 클릭한 영상은 '스몰 스텝'의 저자 박요철 님의 강연이었다. 매일 글쓰기라는 작은 실천을 통해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이야기하는 내용의 이 영상을 통해 브런치를 알게 됐다.


네이버 블로그를 수년간 이용해 온 나로서는, 이미 하고 있는 블로그 업데이트나 제대로 하자는 마음에 다른 플랫폼은 아예 거들떠도 안 봤었다. 내 블로그는 오래 유지해 온 덕에 구독자 수가 5,640명에 달하지만, 최근 인플루언서 제도가 생긴 이후 키워드를 통해 들어오는 방문자 수도 많이 줄어든 느낌이고, 다양한 관심사와 사업 홍보를 뒤 섞어 놓은 모호한 블로그의 정체성 덕분에 인플루언서 신청도 거절된 참이었다.


나 자신의 성찰과 일상의 기록을 위해 글을 쓴다지만, 말이 좋지 사람들이 보지도 않고 반응도 없는 글쓰기는 흥도 안 나고 지치기 마련이다. 더 기분 나쁜 것은 글이 올라가자마자 읽지도 않고 누르는 게 뻔한 좋아요 버튼.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 블로그에도 놀러 오세요. 서이추 신청합니다.' 하는 기계적인 댓글. 그런 좋아요와 댓글을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하고 있는 내 모습.


그러던 중 브런치를 알게 된 것이다.


심사를 통과해야만 글을 쓸 수 있다는 대목에서부터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정식으로 심사를 받을 수 있다니! 사이트를 둘러보다 보니 진중하게 글을 쓰고 읽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특히 책의 포맷으로 글쓰기를 기획하고 연습해 볼 수 있게 하는 '브런치 북'이라는 콘셉트에 와우 하고 감탄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작가 신청을 하고, 하루 만에 '축하합니다.' 하는 메일을 받았다. 블로그에 써 놨던 글들이 꽤 많이 있으니 하나씩 퍼 나를 참이었는데, 사이트 화면마다 '작가님' '작가님' 하니까 쉽게 발행 버튼을 누르지 못하겠다. 게다가 맞춤법 체크를 하니 띄어쓰기는 왜 이렇게 많이 틀렸는지. (브런치 운영팀 님, 맞춤법 체크 기능 너무 훌륭하고 감사해요.)


글 한편 한편을 가치 있게 대접한다는 느낌을 확실히 주는 브런치 곳곳의 장치 덕분에, 글을 대강 퍼다 나르지 않고 꼼꼼히 몇 번씩 읽으며 매만졌다. 지우고 수정하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다 보니, 첫 글은 거의 반 이상을 새로 썼다. 맞춤법 검사까지 마치고 최종 점검을 한 후 발행 버튼을 눌렀다. 두근두근.


내 글은 어떤 경로로 어떤 사람들이 보게 되는 걸까? 구독자가 0명이니 아무도 안 보는 거 아닐까? 오늘 시작했으니 욕심내지 말자. 새 출발하는 플랫폼에서 만큼은 좋아요 - 브런치에서는 라이킷- 에 집착하지 말고 그간의 글들을 잘 정리하는 데 목표를 두자. 잘 기획된 브런치 북 하나를 만들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리디북스를 열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죽음 2편을 읽기 시작했다. 이미 사망한 작가의 불타버린 작품을, 인공지능 로봇을 통해 완성시키겠다는 출판사 대표의 발표 장면을 보며 '로봇이 창작 활동조차 대체할 수 있는 세상이 과연 올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핸드폰에서 딩동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혼하지 않고 17년'글의 조회수가 1000을 돌파했습니다.



브런치 대단한데? 이름도 몰랐던 플랫폼이었는데 글을 올리자마자 1,000명이나 보다니. 그런데 그 이후로도 약 한 시간 단위마다 2000명, 3000명을 알리는 알람이 딩동 댔고, 대체 어느 경로를 통해 내 글을 보는 건지 궁금해진 나는 본격적인 추적을 하느라 눈 영양을 위해 거금을 들여 챙겨 먹은 루테인이 무용지물이 되도록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통계에 나타난 글의 유입 경로는 바로 '기타'

'기타'의 정체는 다음 모바일.


눈이 침침하고 거북목 증상이 심해져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다음 모바일 화면을 들여다봤지만, 결국 유입 경로를 찾지 못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목과 어깨가 단단히 뭉쳐 머리까지 지끈지끈하다. 다시는 유입경로를 궁금해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며 명상을 하는데, 또다시 알람이.



브런치의 글들이 다음을 통해 노출이 많이 된다지만, 모든 글이 이렇게 많이 읽히는 건 아니겠지?라는 의구심에 두 번째 글을 올리고, 세 번째 글을 올려봤다.


두 번째 글 '왜 나는 가난한 남자와 결혼했는가?'에 비해 '쌍꺼풀 진한 남자'의 조회수는 거의 십 분의 일도 안 되게 떨어진다. 글이 잘 보이는 곳에 노출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확실히 조회수를 가름하는 것은 제목이 아닌가 싶다. 특히 브런치의 경우 홈 화면의 구성이 손가락으로 휙휙 넘기기 좋게 되어 있어, 내 글이 운 좋게 노출되더라도 제목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열어보지 않게 된다. 만약 '이혼하지 않고 17년'이란 제목 대신, '결혼 생활 17년'이라고 썼으면 이 글을 만 명이 넘게 클릭했을 리 없다는데 십만 원을 건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을 떨렁 '죽음'이라고 지어도 1,200만 부가 팔려나가는 책을 쓰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같은 작가는 얼마나 행복할까? 그에 비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스마트폰을 들락거리며 조회수를 추적하고, 확 끌리는 제목 궁리나 하고 있는 나란 존재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서, 오늘 나는 삶의 목표를 하나 더 추가했다.


아무렇게나 제목을 지어도 사람들이 읽고 싶어 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자.




그러면서 또 은근히

제목 빨을 세워버린,


- 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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