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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Dec 16. 2022

그는 패딩을 벗지 않고, 나는 하반신에 이불을 감는다.

302,680원


지난달 가스비 고지서에 찍힌 숫자다. 11월 1일부터 30일까지 사용한 LPG 요금이다.


남편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보일러 온도를 17도로 고정했다. 21도가 적정 실내 온도라고 믿는 나는 눈을 부릅뜨고 항의했다. “이게 나라… 아니, 이게 집이냐?”




남편은 지난주에 나와 서율이가 제주도에 가 있는 동안 혼자 15도로 지냈다며, 17 도는 추위를 많이 타는 나를 특별히 배려한 것이라 주장했다.


심지어 밖에 나갔다가 들어올 때마다 집이 좀 덥지 않냐고 했다. 16도 정도로도 충분할 것 같다며 내 눈치를 쓰윽 살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보일러 온도 조절기 쪽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불안에 떨며 소리를 지른다. ”건들기만 해 봐.“


참고로 남편은 열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양말을 신으면 온몸이 바짝 바짝 마른다며 겨울에도 맨발일 때가 많다. 그런 그도 집안에서 하루 종일 패딩을 입고 지낸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 벗지 않는다. 경량 패딩이 아니라 스키복 같은 패딩이다. 방풍 기능이 있고 두꺼운….


집이 참 훈훈하군


”답답하지도 않아? 덥다면서 옷 좀 벗어!“라고 잔소리를 하면, 남편은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운 법. 옷으로 체온을 조절해서 계절에 내 몸을 맞춰야지”라거나, “실내 온도와 바깥 온도가 너무 차이 나면 몸에 안 좋아.” 라거나 “에너지를 아껴야지. 기름 한 방울도 안 나는 나라에서….” 같은 꼰대 같은 소리를 하다가, “아니 기름이 아니라 가스구나. 그럼 가스는 뭐라고 해야 하지? 가스 한 방울은 아니잖아? 한 루베?” 하며 껄껄 웃는다.


사실 나는 그런 남편이 싫지 않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기도 하고, 훈화도 유머러스하게 웃으면서 하니 눈을 흘기면서도 입은 같이 웃게 된다.


나 역시 가스비로 30만 원을 내고 싶지는 않기에, “이게 집이냐?” 하면서도 결국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이고, 보일러 조절기에 직접 손을 대지는 않는 것이다.


게다가, 지내다 보니 지낼만하다.


나는 몸이 찬 편이기도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 체온이 잘 떨어진다. 그래서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고, 자주 일어나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옷을 따뜻하게 입고, 담요로 허리 아래를 감싸는 건 기본이다. 낮에는 창가에 앉아 볕을 쪼이면 몸이 금세 따뜻해진다. 최근에는 이불을 두 겹으로 덮기 시작했는데, 밤에 따뜻하게 자니 하루를 지내기가 훨씬 수월하다.


사실 이건 모두 뉴질랜드 살 때 많이 해 봤던 일이다. 뉴질랜드 북섬의 겨울은 0도에서 -1도 사이로 한국만큼 춥지 않지만, 그만큼 단열이 허술하고 난방도 없어서 집에 있으면 뼈가 시릴 정도로 으슬으슬하다. 그래서 뉴질랜드 사람들은 너나 할 거 없이 온몸에 이불을 똘똘 둘러매고 산다. 그때를 생각하면 사실 17 도는 황송하고 따뜻한 거다.


정 추울 땐, 밖에 나갔다 들어온다. 그럼 정말 집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솔직히, 남편 말대로 ‘좀 더운 거 아니야?’ 하며 16도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위험한 발언은 하지 않겠다. 그가 들으면 재깍 보일러 온도를 낮출 텐데, 그럼 나는 일하다 말고 30분마다 한 번씩 밖에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 이러고 삽니다.



- 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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