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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Oct 16. 2020

삶을 내 편으로 만드는 법


내가 닭발 먹기를 주저하는 것은 토막 난 신체의 일부분을 보면서 자꾸만 닭의 살아생전의 모습을 떠올리는 유아적인 생각의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면 닭다리는 왜 신나게 뜯는 거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돼지 앞다리 살은 먹으면서 족발은 먹지 않는 이유, 순대는 먹으면서 곱창이나 간이나 허파를 먹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어렵고 귀찮다고 해서 <나는 닭발은 안 먹는 사람이야>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습관은 갖지 말자.'라고 나는 오늘 아침 길을 걸으며 다짐을 했다.


뜬금없이 이런 다짐을 하게 된 배경에는 어제 아침에 지인과 나눈 대화의 한 토막이 있다.


나는 아이 친구의 엄마들과 만나면 대화에 잘 끼지 못 하고 겉도는 편이다. 하지만, 간혹 애들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고 다양한 주제의 사는 이야기를 풍족하게 나눌 수 있어서 만남을 주저하지 않게 되는 분들이 있다. 어제 만난 아들 친구 엄마도 그런 분이다. 코로나 시국에 어떻게 지내왔는지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다 보니, 이야기는 어느덧 멜번에 사신다는 그분의 중학교 동창생 소식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오랜만에 친구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코로나로 락다운 상태가 오래되자 심하게 우울해하여 마음이 계속 안 좋다고 하셨다.


멜번은 현재 거주하는 주소지에서 5km 이상 벗어나지 못하는 강경한 락다운을 수개월째 지속 중이다. 그 분이 우울감에 시달리는 이유는 만나고 싶은 가족과 친구들이 모두 5km 이상 떨어진 곳에 살기 때문이라고 한다. 감옥에 갇힌 것 같다는 친구에게 '왜 꼭 아는 사람만 만나려고 하냐, 옆집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고, 산책도 하면서 주변에서 친구를 만들어라'라고 조언하자, 친구분이 단호하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난 그렇게 사람을 쉽게 사귀는 사람이 아니야."


지인은 안타까운 마음에 친구에게 돌직구 한 마디를 날리셨다.

"너 괴팍한 노인 같아."


우울해하는 친구에게 위로는 못 할 망정, 입바른 소리를 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하셨지만 사실 나는 그녀의 촌철살인이 통쾌했다.


'나는 한 번 아니다 싶으면, 절대 아닌 사람이야.'

'나는 술은 끊어도, 담배는 못 끊어.'

'나는 국 없으면 밥 못 먹어.'

'나는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야.'

'나는 청소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야.'

'나는 낮잠은 꼭 자야 하는 사람이야.'

'나는 올빼미 체질이야.'


우리가 즐겨 쓰는 이런 표현에는 자신의 취향, 습성, 현재 상태와 자아를 하나로 묶어 분리하지 못하는 잘못된 습성이 자리 잡고 있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싫어하고, 어려워하고, 잘하는 것은 그저 나의 현재 상태일 뿐이다. 상태는 상황과 시기에 따라 변화한다. 상황과 시기에 맞게 변화하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을 우리는 '유연하다.' '적응을 잘한다.' '어디 데려다 놔도 잘 살겠다'라고 표현한다. 반대로 나의 현재 상태를 자아와 분리하지 못하고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철통같이 선언하는 사람, 변화하지 않으려는 본인의 의지를 주변 상황과 타고난 천성 탓으로 돌리는 사람을 우리는 '완고하다.' '고집불통이다' '꽉 막혔다.'라고 평한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완고하고, 고집불통이고, 꽉 막히게 변해가는 친구를 보며 '괴팍한 노인 같다.'라고 표현한 데에는 그녀의 날카로운 통찰과 안타까움이 녹아있는 것이다.


오늘 뉴스에 '이번 주 일요일을 기해 멜번의 이동 허용 반경이 5km에서 20km로 늘어날 예정이다.'라는 빅토리아 주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부디 지인의 친구의 지인분들이 20km 이내 거리에 사셔서, 지인의 친구분이 우울증에서 헤어나고, 덕분에 내 지인의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몇 년 전부터 페이스북에서 눈여겨본 김지호라는 청년이 있다. 숙박 플랫폼 스타트업을 만들어 런칭하고 투자를 받아내고 인수합병을 하는 등,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세계의 근황을 종종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정황상 매우 좌절할 만한 사안에 대해서도 꿋꿋이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하는 것이 엿보여 '참 배울 점이 많은 청년이로군'하고 생각해왔다. 만나 본 적도 대화를 나눠 본 적도 없지만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 친구였다.


그 친구를 얼마 전 브런치에서 다시 보게 됐다. 장례식 장에 갔다가 코로나에 걸렸다고 한다. 그는 병실에 격리되어 있는 동안,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자신의 귀한 경험담을 글로 써 내려갔다. 코로나 환자의 애환과 일상, 그 치료과정을 써 내려간 - 너무나 시의 적절한 - 그의 글이 며칠 전 한 권의 책으로 출판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출간 소식을 알리는 그의 포스팅을 보니, 나도 모르게 엄마 미소가 지어졌다.

'참, 한시도 가만히 못 있는 친구로군'


자식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지만, "아들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나요?"라고 혹시 누가 물어본다면 "김지호 청년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답하고 싶다.


어떤 상황이 닥치든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 시점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사람.

코로나에 걸려도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셨나이까?'라고 하늘을 원망하고 자신을 슬금슬금 피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복수의 칼날을 가는 대신, 위기를 기회로, 어려움을 성장과 성숙의 기회로 삼는 사람.


나는 내 아이들이 그런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 (물론 나 자신을 향한 다짐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가 쓴 햄릿의 대사에 이런 구절이 있다. "~ for there is nothing either good or bad, but thinking makes it so.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다. 생각이 그것을 만들 뿐이다."


닭발은 닭발이고, 곱창은 곱창이다. 그것을 먹기 괴롭다 여기는 것은 내 생각일 뿐이다.

코로나는 코로나이고, 격리는 격리이다. 그 상황을 괴롭게 여기는 것은 내 생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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