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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Oct 30. 2020

부러워말고, 꿈꾸지 말고...

아침마다 길을 걸으며 많은 집들을 지나친다. 고급 자재를 사용해 모던하게 새로 지은 집들 보다, 오래되었지만 주기적인 페인트 칠이 잘 되어 있고, 마당이 잘 가꾸어진 집들이 눈길을 끈다.


오늘은 모자 밑으로 희끗희끗한 머리가 드러난, 60대쯤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사다리에 올라가 손수 지붕 밑 거터를 페인트 칠을 하는 모습을 봤다. 진녹색 작업복을 아래 위로 차려입고 포터블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로울러를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거터란 지붕에서 처마 쪽으로 떨어지는 빗물을 받는 빗물받이, 이른바 긴 홈통을 말한다. 지붕 전체를 두르고 있기 때문에 전체 길이를 쭉 펴면 70미터는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거리나 면적 계산 등에 매우 취약하니 부디 계산해보시는 분은 없길)


거터의 소재는 금속이고 물이 많이 닿는 곳이라 (내가 알기로는) 쉽게 씻어낼 수 있는 수성으로 작업을 할 수 없다. 끈적하고 냄새가 심한 유성 페인트와 신나 등을 사용해야 한다. 데크나 테이블처럼 쓱싹쓱싹 반나절만에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매끈하게 잘 칠하지 못하면 결과가 안 좋을 수 있다.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 중 하나이고, 시간당 효율을 따져볼 때 전문 업체에게 맡기는 것이 백번 타당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호주에선 자신의 집을 구석구석 직접 매만지고 사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단순히 인건비가 비싸서 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조금 다른 각도로 생각해보게 된다. 어쩌면 저들은 돈을 아끼는 것보다, 자기의 손으로 정성을 들여 집을 가꾸는 것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에 더해 그 과정을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단독주택을 살아보면 집이 사람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금만 방치하고 관리를 소홀히 하면 금세 여기저기가 틀어지고 고장 나고 휑해져 버린다. 청소가 한 번 하면 끝나는 일이 아닌 것처럼 집과 마당도 계속 다듬고 칠하고 가꿔줘야 반짝반짝 사람 사는 집처럼 빛이 난다.


한마디로 손 볼 것이 끝도 없다. 호주 사람들은 그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게라지에 모든 장비를 갖춰놓고 일상의 시간을 쪼개 밥을 먹고, 책을 보고, 차를 마시듯 집과 정원을 가꾼다.


덕분에 호주의 거리에서 만나는 집들은 주인의 마음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으리으리한 집도 한쪽에 버리지 못 한 물건이 폐기물처럼 쌓여있거나, 수영장에 죽은 벌레와 나뭇잎이 둥둥 떠 있으면 보기에 좋지 않다. 반면, 오래되고 소박해 보이는 집이라도 깨끗하게 페인트칠이 되어 있고, 화단의 나무가 죽은 잎사귀 하나 없이 파릇하면 그 집주인의 안정된 삶이 부러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잘 가꾸어진 하얗고 예쁜 집을 보며 ‘언젠가 나도 저런 집에 살아봤으면’하고 남의 것, 미래의 것을 꿈꾸지 않기로 했다. 얼마나 마음과 정성을 쏟는지에 따라 지금 우리가 사는 집도 (반지하 연립일지라도) 청결하고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불필요한 짐을 버리는 것부터! 죽은 화분이 없게 하는 것부터! 먼지가 쌓이지 않게 매일 청소를 잘하는 것부터!


집은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드러낸다. 반대로 깨끗하고 반질반질한 공간이 사람의 마음에 빛을 줄 수도 있다.



- 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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