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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Jun 15. 2021

피부과 시술기 2. 통증에 대하여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점차 피부톤을 밝게 만들어 나갑시다."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급한 불을 끈다는 것은 피부 겉 표면(표피층)에 두드러지게 침착된 색소에 고의적으로 불빛이나 레이저를 쏴서 상처를 낸 후 새살이 올라오게 하는 잡티 시술을 하는 것을 뜻한다. 시술 후 한동안 세수를 못 하고, 다닥다닥 딱지가 생기고, 딱지가 떨어질 때까지 재생 연고를 열심히 발라줘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한 대표적인 피부과 장비는 아이피엘이라고 하는데, 귀가 얇은 나는 상담 선생님의 권유에 넘어가 뭐가 뭔지 알 수 없지만 내 피부에 딱 적합하다는 트리플 잡티 패키지를 32만 원에 계약했다. 기왕 세수 못 하는 김에 점도 좀 빼라 하여, 개당 5,000원씩 55,000원을 추가로 지불했다.



마취 연고 바르고 대기 중


이때만 해도 몰랐다. 피부과 시술 후기를 보면 다들 따끔따끔한 정도고 참을만하다고 하던데 무슨 마취 연고를 이렇게 많이 바르나? 여유만만 거울삼아 셀카를 찍으며 곧 피부 미인이 될 내 모습을 상상했다.


30분쯤 지나 얼굴이 약간 얼얼하게 마취가 되자 간호사님이 치료실로 따라오라 하신다.



애 낳을 때랑 사랑니 뺄 때 이후, 병원 침대에 누워본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정체모를 기구들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온다. 드디어 의사 선생님 입장.


선생님이 자리에 앉으시자마자 조심스레 물었다. "아픈가요?"

"아프다기보다 좀 화끈거리는 느낌이 있을 건데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점부터 좀 빼겠습니다."


지지직~ 지지직~


점 빼기는 그럭저럭 참을만했다. 전기모기채로 치지직 치지직 살이 가볍게 태워지는 느낌이랄까? 하나, 둘, 셋, 넷.... 55,000원을 냈으니 열한 군데를 태우겠지? 하며 숫자를 셌다. 숫자가 늘어날수록, 참을만한 따끔함이 욱신욱신으로 변해갔다. 열한 번만 참자. 했는데 웬걸.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을 지나 스물을 세도록 선생님의 레이저 광선은 멈출 기미를 안 보인다.


"점이 생각보다 많아서 조금 더 빼드렸어요." (나중에 메디폼 붙인 자국을 세어보니, 무려 스물두 군데나 됐다.) 꼼꼼한 의사 선생님의 배려에 고마운 마음과 왠지 예상치 못 한 봉변을 당한 것 같아 얼떨떨한 마음 그 어드매에서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잡티를 좀 빼겠습니다. 아프지는 않은데 약간 불빛이 번쩍 합니다. 하나, 둘, 셋 (번쩍) 이런 느낌이에요. 괜찮으시죠?"


아이피엘

돈도 다 냈고, 마취 연고도 잔뜩 발랐는데 "별로 안 괜찮은데요."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내 얼굴은 이제 당신 거예요.' 하고 체념하는 심정으로 무기력하게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말씀대로 사실 크게 아프지는 않았다. 근데 뭐랄까? 5공 시절 안기부에 끌려가 취조를 당하는 기분이랄까? "공범 세 명의 이름을 불지 않으면 얼굴을 못 알아보게 만들어주는 수가 있어"하며, 라이터를 피부에 바싹 대고 끝도 없이 껐다 켰다 하는 느낌? (미천한 저를 피부 미인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주신 피부과 선생님을 고문 기술자에 비유한 것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그저 육체적 통증보다 정신적 고통이 조금 더 컸음을 표현하기 위함이니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허허 웃어 넘겨주시어요.)


민주화 운동 세대의 희생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숨을 고르고 있는 사이, 새로운 장비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쉬이익~ 하는 바람과 함께 얼굴에 촘촘히 내려 꽂히는 수십 개의 바늘.


모공을 좁혀주고 흉터와 여드름 자국 등을 없애는데 효과가 좋은 프락셀이라고 했다.


나는 사실 모공은 넓은 편이 아닌데. 흉터나 여드름 자국도 없는데.... 왜 프락셀이 들어간 패키지를 끊은 거지? 잠시 의문을 품는 사이, 다시 한번 얼굴을 드르르 긁고 지나가는 알싸한 통증. 나는 곧 전기 모기채나 라이터 협박쯤은 한낱 아름다운 추억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중에 건네받은 스케줄에 의하면 이날 내 얼굴엔 아기주사 시술도 했다고 한다. 아기주사가 뭔지, 주사인지 약인지 레이저인지 조차도 모르겠다. 사실 프락셀 이후로 내 얼굴은 누가 무슨 짓을 해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철수세미로 얼굴을 박박 문지르면 이렇게 될까? 얼굴에 불이 붙어 살갗이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중, 몽골인들이 포로를 죽이는 가장 잔인한 방법에 대해 묘사한 부분이 있다. 피부 전체를 아주 아주 얇게 벗겨서 바로 죽지도 않고, 몸 전체가 뻘건 고기 덩어리처럼 되어서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서서히 죽어가게 한다는 것.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서 몸을 부르르 떨었던 기억이 나는데.... 프락셀 후 마취가 풀려감에 따라 나는 몽골에서 죽어간 포로들을 상상했다.


어떻게 걸어갔는지도 모르게 관리실로 자리를 옮겨 누웠다. 관리 선생님이 후다닥 달려와 얼음장같이 차가운 팩을 올려주셨다. 이 것은 단순한 얼음팩이 아니고 32만 원짜리 패키지에 포함된 크리오셀 이라는 피부 진정 고보습 마스크팩이라고 했다. 화끈화끈한 얼굴에 차가운 것이 닿으니 조금 나아지는가 싶더니, 차가움이 점점 뜨거움으로 변해갔다. 화상의 후유증이 가시기도 전에, 동상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랄까?


약 30분간 얼굴을 냉동시킨 후 거울을 봤다. 점 뺀 자리 수십 군데에 붙은 메디폼이며 퉁퉁 붓고 얼룩덜룩하고, 각질이 다 일어 나보이는 건조한 얼굴.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꺼멓게 타버려 형체조차 알 수 없는 얼굴을 상상했던 나로서는 이만하면 안심이었다.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드러누웠다.


아이피엘이나 프락셀 등의 잡티 시술을 하면 통상적으로 하루 정도만 세수를 하지 않으면 된다. 다음 날부터 (딱지가 손의 마찰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가벼운 세수를 하고, 딱지와 각질 밑 새살이 잘 돋아날 수 있도록 재생 크림을 수시로 발라줘야 한다고 한다. 나는 점을 뺐기 때문에 3일간 세수를 할 수 없었는데, 핑계 김에 머리도 감지 않고, 집에 틀어 박혀 대부분의 바깥일을 남편에게 부탁할 수 있다는 점은 참 좋았다.


그 당시 내가 가장 정성을 기울여한 일은 점 뺀 자국에 붙은 메디폼에 수포가 생기면 새로운 메디폼을 잘라 붙이는 일이었는데, 스물 두 개의 점 뺀 자리를 쉴 새 없이 관리하다 보니 나중엔 메디폼을 엄청 작은 사이즈로 잘라 붙이는데 나름의 전문성을 갖게 되었다.




시술 후 3일째.


머리에 한 보따리 짐을 얹고 다니는 것처럼 찝찝했다. 일어나자마자 부랴부랴 머리를 감고, 살살 세수를 했다. 후드득 딱지와 각질이 떨어져 나가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상상을 하며 거울을 보았다.


그 순간의 심정과 얼굴 상태는 당시 내 인스타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날 이후, 5개월이 조금 지난 지금 나는 총 6회의 토닝 레이저 (진피층의 색소를 파괴하여 기미, 잡티를 예방하고 전체 톤을 밝게 해주는 레이저)와 1회의 서비스 잡티 시술을 받았다. (현재 2차 딱지가 앉은 상태다) 주 1회를 목표로 한 스케줄 상으로는 진작에 끝났어야 하는데, 피부과가 멀고 운전을 싫어하다 보니 빼먹는 주가 많았다.


어쨌든 다음 글엔, 피부과 레이저 시술 7회 후 경과에 대해 좀 써보겠다.



- 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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