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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Jun 08. 2021

피부과 시술기 1. 견적이 꽤 많이 나오는 얼굴

나는 평소 외모 관리에 금전적 시간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편이다.


화장품을 예로 들자면, 30대까지 페이스샵, 스킨푸드 같은 길거리 브랜드에서 대강 할인율이 높은 것 위주로 사서 발랐고, 40대에는 시어머니가 매일 출근 도장을 찍으며 타 오신 화진화장품 사은품을 써 없애느라 내 돈 주고 화장품을 사 본일이 없다. 아침에 선크림을 한 번 바르고 나면 4시간 간격으로 꼼꼼히 덧바르기는커녕 밤에 세수도 안 하고 자기 일쑤였다. 바닷바람이 강한 제주에 살면서 모자가 자꾸 날아간다는 이유로 맨 얼굴에 선글라스만 대강 걸치고 다녔고, 햇살이 작렬하는 호주에서는 툭하면 수영장에서 바닷가에서 모자도 안 쓰고 선텐을 했다. 그 결과 까무잡잡한 건강미인이 되기는커녕 기미, 주근깨와 검버섯이 만발한 더러운 얼굴이 되었다.


어느 날 아침, 얼굴 가까이에서 인기척을 느껴 눈을 떠보니 열한 살 아들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숫자를 세고 있다. 스물둘, 스물셋, 스물넷..... 뭐 하는 거냐고 물으니, 얼굴에 점과 주근깨를 세어 보고 있단다. 한참을 중얼거리던 아이들은 더 이상은 못 세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엄마 얼굴이 그렇게 지저분해?"라고 물으니 진지하게 미안한 표정으로 말한다. '네. 좀 얼룩소 같아요."


호주에서 한국 엄마들을 만나면 꽤 자주 나오는 얘기 중 하나가 강렬한 자외선과 잡티에 관한 것이다. 피부는 포기했다며 한숨짓는 그녀들에게 "아이고, 그래도 예쁘기만 하신데요 뭐. 제 얼굴 보세요." 하면 "아니에요. 리즈님도 그 정도면 괜찮아요."라고 대답하는 것이 인지상정 이거늘…. 아무리 입 발린 소리를 잘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라도 내 얼굴을 보면 애매하고 안쓰러운 웃음을 지을 뿐 차마 괜찮다는 말은 하지 못 한다.


개중에 성격이 좀 화통하신 분들은 '선크림 좀 열심히 발라요. 큰일 났네. 큰일 났어' 하기도 하고, 친절한 분들은 레이저 치료를 해 보라며 적극적으로 시술을 권유하시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늙는 것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던 나는 피부과나 성형외과 시술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다. 한 번 시술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 그 늪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꾸준히 관리하지 않으면 다 소용없다. 햇볕을 좀 받으면 도로아미타불이라는 이야기도 숱하게 들었다. 무엇보다, 어차피 다시 생길 잡티, 어차피 다시 자랄 머리카락에 쏟아붓는 돈이 왜 나는 그렇게 아깝게 느껴지는지.


하지만 백옥 같은 물광 피부 미인으로 가득 찬 한국 땅에 오랜만에 발을 들이니 돌연 위기감이 느껴졌다. 기미와 검버섯, 뾰루지 얼룩으로 뒤덮인 거울 속의 내 얼굴이 어찌나 추레해 보이는지. 오랜만에 만난 남편에게 맨 얼굴을 보이는 게 창피해서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싶을 정도였다.


수많은 점들은 그렇다 치고, 오른쪽 눈 밑과 왼쪽 볼에 작게 시작해 빠른 속도로 커져가고 있는 색소 침착. 그 반점들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아들 말대로 가까운 미래에 얼룩소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얼굴도 피부과에 가면 해결이 될까? 얼굴을 완전 갈아엎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일단 상담이나 받아보자 하고, 제주도 맘 카페의 피부과 후기들을 샅샅이 검색하기 시작했다.


주근깨가 이렇게 골고루 만 났어도.


피부과를 고르는 것은 믿을만한 정비소를 고르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뭘 좀 알아야 정확하게 비교 분석할 수 있고 (속칭) 눈탱이를 맞지 않을 확률이 크다. 그래서 피부과 상담 전 사전 지식 습득을 위해 맘 카페를 드나들기 시작했다.


검색어 : 검버섯 기미 잡티 피부과 추천


검색 결과 나온 글들을 샅샅이 읽었다.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정보 분석을 한 결과 나는 아래와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1. 제주도에 있는 모든 피부과가 모두 한 번씩 누군가의 추천을 받고 있다는 것. (댓글 광고로 의심되는 글이 섞여있음)

2. 맘 카페에 정식으로 광고를 하지 않은 업체의 이름은 노출이 금지되어 모두 비밀 댓글이나 쪽지로 정보를 교환하고 있지만, 비밀로 오가는 정보조차 지극히 주관적이고, 믿을 만하지는 않다는 것.

3. IPL, 토닝 레이저, 리쥬란 주사니 하는 것들에 대해 정확한 개념을 모르는 상태에서 여러 사람들의 후기를 읽다 보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점점 더 혼란에 빠진다는 점.


광고성 후기와 리얼 후기가 혼재된 블로그, 카페의 글들로는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2박 3일 만에 깨달은 나는 엄마들 사이에 많이 회자되는 제주시 피부과 네 군데를 직접 탐방하기 시작했다.


뭐가 뭔지 알기 : 의사 선생님께 꼬치꼬치 질문하라.


병원에 방문하면 일단 접수를 하고 무엇 때문에 병원을 찾았는지와 자신의 상태를 묻는 문진표를 작성하게 된다. 잠시 기다려 의사 선생님을 만나 피부 상태를 체크받는 1차 상담을 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사무장님과 2차 상담을 한다.


상담만 받고 그냥 가는 사람이 워낙 많아 의욕을 상실했는지 (또는 전날 과음으로 인한 피로 때문일 수도 있고) 대충 성의 없이 상담하시는 의사 선생님도 있지만, 그래도 전문가를 만났으니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꼬치꼬치 질문을 해야 피부과 시술에 대한 전반적인 감을 잡을 수 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 전 세안을 하고 현미경 같은 걸로 촬영을 한 후, 그 사진을 토대로 현재의 상태를 자세히 설명해 주는 곳도 있고 그냥 얼굴을 보고 피부과 시술의 종류를 설명해주는 곳도 있는데, 사전 촬영의 여부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잡티 관리 피부 시술의 과정과 원리는 어디나 동일하다.


일단 아래 표를 보시라.


출처 : 와인피부과 http://www.wyneskin.co.kr/


피부가 백옥같이 깨끗한데 주근깨만 몇 개 없애고 싶은 사람, 다 좋은데 검버섯이 생겨서 고민인 사람이라면 피부의 표피층에 시술하는 IPL 아이피엘이, 기미나 색소 침착 (뾰루지 자국)이 고민인 사람은 진피층에 레이저를 쏴서 색소를 잘게 쪼개 주는 토닝 레이저가 효과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점, 주근깨, 검버섯, 기미, 오타모반, 색소침착 등 모든 얼룩이 복합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의 얼굴은 한 가지 시술만으로 단기간에 해결되기가 힘들다.


~ 는 것이 상담을 해 주신 모든 피부과 선생님들의 공통적인 설명이었다.


우선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표피층의 잡티를 아이피엘로 제거한 후, 보이지 않는 진피층의 색소를 토닝 레이저로 10회 정도 치료하는 것을 추천했다. 토닝 레이저의 종류는 루비, 듀얼, 포토나, 레블 라이저, 엑셀 브이 등등 여러 가지 기기가 있는데 병원마다 보유한 기기가 다르다. 의사 선생님이 자신이 보유한 레이저 장비의 한도 내에서 피부 상태를 봐가며 적절한 파장을 조절해 시술하는 형식이다.


총 소요기간은 일주일에 한 번 꾸준히 치료할 경우 약 3개월.


"그럼 3개월 후에 저는 피부 미인으로 거듭나는 건가요?"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조심스러운 답변을 했다. "완벽하게 깨끗해지긴 어려워요. 본인이 얼마나 관리를 하느냐에 따라서도 다르고. 하지만 지금보단 확실히 낫겠죠."


비용은?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이 끝나면, 실장님과 2차 상담을 하게 되는데 이때 본격적인 견적을 받을 수 있고 다소간의 흥정도 가능하다. 나는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는 가운데 상담을 했고 귀가 무척 얇은 편이라 흥정은커녕 부르는 대로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인 것은 바로 계약금을 내지는 않았다는 것. (상담 당일 바로 카드를 긁게 만드는 진취적인 실장님들이 많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한 두 차례의 레이저로 피부 미인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던 나는, 지금 내 얼굴이 견적이 한 두 푼 나오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절망했다.


의사 선생님은 레이저 시술의 종류와 방법에 대해서만 설명하는데 반해, 실장님은 그에 더해 각종 피부관리와 주사 시술을 권한다. 점을 몇 개 빼고 왼쪽 뺨과 오른쪽 눈 밑에 난 큰 검버섯을 없애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지고 피부과를 찾은 나였건만, 이야기를 한참 듣다 보니 잔주름 없는 동안 피부, 연예인 물광 피부를 갖고 싶은 욕구가 불끈 솟아올랐다.


한참 상승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당초 예산의 몇 배에 달하는 비용이 소요되기 마련이다. 견적에 화들짝 놀란 내가 주춤하는 반응을 보이니, 눈치 빠른 실장님들은 '일단 잡티 제거만 해도 지금보다는 많이 달라져 보이실 거예요.' 하면서 한발 물러나는 식으로 밀당을 했다.


네 군데 피부과의 상담 결과를 종합한 결과, 나는 리쥬란이니 울쎄라니 하는 등등의 약물 시술은 건너뛰고 IPL (표피층 시술) 1회 + 토닝 레이저 (진피층 시술) 5회 정도의 관리를 받아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냉철한 이성은 모 병원 실장님의 프로페셔널한 상담 스킬과 특별 프로모션 패키지에 와르르 무너져, 결국


IPL + 프락셀 + 알 수 없는 시술 한 가지를 종합한 잡티제거 3종 시술을 38만 원에

토닝 레이저 + LDM 물방울 리프팅 10회 패키지를 90만 원에 계약해

총 128만 원을 지불하기에 이르렀다.


돈 아끼려면 이러고 다니세요.



2편에 이어서.....


- 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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