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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Nov 19. 2021

포르투갈행 비행기 표를 샀다.

세 번째 이민을 앞두고


얼마 전, 백신 접종 후 휴식을 취하며 내 블로그의 지난 글들을 훑어보다가 우연히 아래 댓글을 읽고 소름이 돋았다. 2020년 6월. 글에 달린 simple life 님의 댓글이다.


이 분은 누구실까? 왜 뜬금없이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에서 나와 이웃이 되는 꿈을 꾸시는 걸까? 나는 포르투갈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데.... 당시에도 좀 의아했던 기억이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지 않았던 우리 가족의 포르투갈행을 이 분은 2020년 6월 19일에 예견하고 계셨던 것일까? Simple Life 님, 보신다면 다시 한번 댓글 달아주세요. ^^ 너무 궁금합니다.



오늘 포르투갈행 비행기표를 샀다.


50대에는 유럽 어딘가에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이루게되었다. 아직 50대가 되려면 4년이 남았는데, 이 모든 것은 코로나 덕분이다. 코로나가 호주의 국경을 봉쇄시켰고. 졸지에 이산가족이 된 우리는 작년 12월 말. 3년간의 호주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아이들 학교와 큰 아이 축구 클럽 문제가 애매해져서, 제주에서 몇 달 숨 고르기를 하고 영국으로 출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계획대로 되나? 한국으로 돌아오니 해결해야 할 일들이 차례차례 밀물처럼 몰려왔고, 큰 아들은 고등학교 축구부에 들어갔고, 작은 아들은 동네 작은 분교가 너무 좋다고 절대 떠나지 않겠다고 난리고, 나는 요가와 명상과 차의 세계에 빠져 1년이란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버렸다.


부모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애매한 신분이 되어버린 큰 아들을 생각하면 진작에 비자 신청을 하고 떠날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왜 그렇게 하염없이 뭉기적 거렸는지. 결심을 하면 바로바로 실천에 옮기는 나로서는 이례적으로 몸이 안 움직여졌다. 축축하고 음산할 날씨, 우리 예산으로는 열악하게 살 수밖에 없는 주거 환경, 무엇보다 자기는 절대 영국에 안 갈 거라고 버티는 작은 아들을 억지로 끌고 가는 것 같은 미안함..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영국 산책>을 읽으며 우리의 새로운 터전에 애정을 가져보려 했지만, 돌이켜보면 영국은 우리와 인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요가를 마치고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최근에 프랑스에서 귀국한 친구가 던진 한 마디가 우리의 운명을 바꿨다. "나는 언젠가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에서 살고 싶어. 특히, 포르투갈 남부에 몬시크라는 동네는 정말 최고야. 아이가 있다면 꼭 살고 싶은 도시!"


나도 물가도 저렴하고 기후도 좋고, 게다가 축구 강국이기까지 한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에서 살고 싶지! 하지만, 지금 이 나이에 새로운 언어를 배울 자신은 도저히 없어. 영어만 할 줄 아는 사람이 유럽에 살고 싶다면 영국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나? EU에서도 탈퇴하고 날씨도 우울하고, 물가도 비싸고 사람들도 냉랭하다지만.... 적어도 길에서 손흥민을 마주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까.


스페인에서는 스페인어를 못 하면 살기 어려운데, 포르투갈은 영어로도 충분히 살 수 있어. 특히 포르투갈 남쪽은 유럽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작은 동네 마트 아가씨나, 시골 양봉하는 할아버지 조차도 영어를 한다니까.


뭐라고? 그게 사실이야?


내 친구는 포르투갈에 3년 살았는데 아직 포르투갈어 잘 못해.




나는 그날 당장 포르투갈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구글 검색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모르던 사실들을 알게 됐다.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포르투갈에 관한 정보들



1. 유러피안 또는 미국인 디지털 노마드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나라. 물가가 저렴하고 공공 인터넷이 잘 발달되어 있음


2. 물가가 매우 저렴 (마트 식재료 가격을 검색하니 농, 축, 수산물의 가격이 제주의 1/2 수준 정도로 추정됨)


3. 신선한 해산물, 고기, 치즈, 와인 등 식재료가 풍부함


4. 국제학교 또는 영어권 사립학교 선택의 폭이 넓고 학비가 저렴한 편임 (물론 학교 나름이지만)


5. 기온이 영상 6도~24도 사이로 쾌적하며, 한겨울에도 영하로 안 떨어지는 날씨. 11월 현재 낮 18도/밤 13도


6. 비자 (영주권, 시민권) 취득이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움. 포르투갈 비자를 취득하면 EU 모든 나라에서 거주하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


7. 치안이 좋음 : 2019년 세계평화지수에서 아이슬란드, 뉴질랜드의 뒤를 이어 무려 3위


8. 스페인/포르투갈 패키지여행을 다녀오신 분들은 거의 대부분 포르투갈을 다시 한번 좀 더 길게 가고 싶은 도시로 꼽음 : 사람들이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고, 물가도 저렴하고, 공기도 좋고 여러모로 기대 이상이라는 평


9. 비영어권 국가 중 영어 사용자의 비용이 매우 높음 (유러피안 은퇴자, 디지털 노마드, 여행객들이 많아서)



"우리 영국 대신, 포르투갈로 가는 건 어때?"


남편에게 조사한 내용을 열거하니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콜'을 외친다. 자기는 제주도에서 계속 살 거고 영국은 절대 안 간다던 둘째도 신기하리만치 순순히 "포르투갈 가면 돼지 키울 수 있는 집으로 이사 가요."라고 한다. 큰 아들은 당연히 오케이! 호날두의 나라 아닌가. 영어가 모국어인 나라보다는 우리처럼 제2 외국어로 쓰는 나라로 가는 것이 왠지 더 마음 편하지 않냐는 데에도 모두가 동의를 했다.


다음 주에 일주일간 포르투갈에 다녀 올 예정이다. 비자 신청에 필요한 은행 계좌를 만들고, 위에 구글로 검색해서 얻은 정보가 모두 사실인지 확인도 할 겸 떠나는 나.홀.로. 답사 여행이다. 유후~


서울에서 결혼하여 뉴질랜드, 제주, 호주를 거쳐 세 번째 이민국이 될 포르투갈. 다 늦은 나이에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 어떻게 가서 살려고 하냐는 걱정을 하는 사람은 내 주위에 없다. '덕분에 나도 포르투갈 가보게 생겼네.' 하는 속 편한 사람들만 잔뜩이다.


2019년에 <내 나이 쉬흔 살에는>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는 막연히 스페인을 꿈꿨었는데, 바로 밑에 붙어 있는 나라로 가게 되었다. 나는 곧 50이 되고, 꿈꾸었던 모든 것을 이룰 예정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내 나이 쉬흔살에는 https://blog.naver.com/liz2958/221652267978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 어른이 되었고, 죽이 맞는 남편과 어떤 환경에서도 씩씩하게 적응할 수 있는 아이들을 가족으로 두었다. '글로벌 기업의 꿈을 이루어야 하니, 제주도는 걱정 마시고 유럽 진출에 전념하세요!'라고 응원해주는 든든한 동료들이 있고, 대수롭지 않게 곧 따라오겠다고 말해주는 자유로운 영혼의 친구들도 있다.


그저 명상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이렇게 인생이 술술 즐겁게 풀려갈 줄이야.


- 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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