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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아침 Oct 13. 2024

시어머니 3- 이 구역의 노는 여자

이 구역의 노는 여자


식구들의 빨래를 개는 일은 백 살 노인의 몫이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맡겼다.


눈은 텔레비전에 두고 슬슬 빨래를 접는 듯했지만, 어머니가 접어둔 빨래들은 ‘칼각’이 잡혀 있었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일은 ‘놀래(놀러) 가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9시가 되면 노인복지관에서 어머니를 모시러왔고, 오후 5시에 파했다. 복지관에 가는 일을 우리는 이렇게 표현했다.


“어머니! 놀래 오랜 햄수다!”


눈은 텔레비전에 고정하고, 손은 설렁설렁 움직여 빨래를 반듯하게 개는 어머니는 백 년 산 사람의 초능력을 발휘했다. 아침 9시 벨이 울릴 때였다. 텔레비전이 틀어져 있고 아침 특유의 생활 소음이 흐르는 와중에도 그녀의 청각의 아주 예민하게 감각해냈다! 자신을 부르는 벨 소리라는 것을!


어머니 놀래 오랜 햄……! 아직 말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손에 든 빨래를 집어 던지고, 가지런히 정리해 둔 빨래를 질겅질겅 밟으며 현관으로 향했다. 마음은 급했고 몸은 느렸다. 그렇지만 방향은 정확했다. 복지관 직원이 내미는 손을 향하여 그녀는 끝도 없이 나아갔다.


빨래를 개지 않는 날에는 이미 벌써 대문 앞 화단에 걸터앉아 있었다. 어떤 날에는 미리 대문을 열고 어디론가 먼저 가는 바람에 온 동네를 뒤져서 그녀를 찾아야 했다.


남편에게 듣기로, 어머니는 집안 살림 보다는 경제 활동에 헌신했다. 온 가족이 달려들어 방앗간 일을 했고, 어머니는 방앗간의 대표 노동력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시간만 되면 삼양 검은모래 해변으로 나갔다고 한다. 삼양 검은모래 해변은 본래 모래찜질로 유명한 곳이었다. 모래에 몸을 묻고 누우면 관절염도 신경통도 다 낫는다는 소문은 제주 아낙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그 소문은 돌고 돌아 우리 엄마도 알고 나도 알 정도였다. 어린 남편은 모래를 파고 누운 어머니를 온종일 기다렸다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곳에 모였던 아낙들이 만들어냈을 웅성거림을 상상해 본다. 웃음과 울음, 한탄과 한숨, 앓는 소리와 낫는 소리, 모든 것들이 뒤엉켜 바닷바람과 함께 파도소리로 부서지는 것 같다. 그곳은 병원이었고 피난처였고 휴양지였으며 놀이터였다. 여기가 아닌 곳이었다.


내가 함께 살았던 노인들 가운데 나의 시어머니는 내가 제일 모르는 노인이다. 알 수 없는 처지였고, 나는 언제나 그녀와 저만치 먼 곳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짐작해 볼 수는 있었다. 이곳이 아니라 저곳을 향해 끝도 없이 나아가는 마음, 백 년을 살아도 다급한 그 마음을. 어머니는 놀래 갈 때 멋졌다. 노는 여자는 영원히 멋지다.


#시어머니 #가족 #복지관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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