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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아침 Oct 13. 2024

시어머니 2 - 할머니를 할머니라고 부르지 못하고

할머니를 할머니라고 부르지 못하고


아이들은 어릴 때 곧 죽어도 자신들이 서울 출신이라고 우겼더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꼬마였을 때부터 할머니에게만은 유독 제주 사투리를 쓰려고 노력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그렇게 했다. 킬링 포인트는 남매가 모두 할머니를 할머니라 부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머니!”


둘 다 그렇게 불렀다.


아이들은 나와 제 아빠를 흉내 냈다. 그래야 말귀도 어둡고 가끔씩은 가족이 누군지, 손님이 누군지 헷갈려 하는 노할머니와 제대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딸아이가 여덟 살 때의 일이다. 아라동에서 노지 딸기를 두어 소쿠리 사다가 여름 내내 먹을 수 있게 주물럭을 만들어 냉동고에 소분해 두는 중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딸기주물럭 한 컵을 들려주고 할머니에게 갖다드리도록 심부름을 시켰다. 주방에서 마루로 종종 걸어간 아이의 한 마디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어른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어! 머! 니! 이거 드십서!”


아들도 다르지 않았다. 할머니를 식사 테이블로 모셔 올 때마다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어! 머! 니! 이제 밥 먹게 마씸!”


아들은 한동안 할머니와 방을 함께 썼다. 닫힌 방문을 슬며시 열어 보면 둘이 마주 앉아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어! 머! 니! 이 양말은 나 꺼우다!”

“아니라. 이거 나 꺼!”


서로 양쪽에서 양말을 붙들고 ‘니꺼 내꺼’ 하는 중이었다. 둘 다 양말에 진심이었다. 아들은 그게 자기 양말이었기 때문에 진심이었고, 백 살의 할머니에는 무엇이든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는 강박적인 버릇이 있었으므로 역시 진심이었다. 그녀의 주머니를 뒤져 보면 한쪽에는 휴지, 다른 한쪽에는 식구들의 양말이 들어 있었다. 그 와중에도 아들은 할머니를 향해 꼭 어머니라고 불렀다.


할머니를 어머니라고 힘주어 부르고 반드시 사투리로 말하는 것, 그게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러면 어머니라고 불리운 백 살 언저리의 할머니는 아이들을 향해서 말했다.  


“착허다!”


양쪽의 대화는 그것이 거의 전부였다. 나는 어머니의 세계가 아이들에게 잘 전해지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는 쪽이다. 말해질 수 없는 어떤 시간의 덩어리를 생각하면 그건 슬픔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할머니를 어떻게 회상하는지 나는 물어본 적이 없다. 나중에 백 살을 살아낸 어떤 존재가 수십 년이 지난 후에 흐릿하게 아이들 마음을 스치고 지나갈 수 있을까. 할머니 대신 어머니라고 불렀던 존재와 함께했던 시간을 기억해낼 수 있을까.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은 어떻게 대처할 수 없는 슬픔이라는 사실 때문에 아름답기도 한 법이다.


#할머니 #어머니 #백세시대 #가족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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