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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아침 Oct 13. 2024

시어머니 1 - 사람은 백 년을 못 살아!

사람을 백년을 못 살아!


2019년 11월,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1917년에 태어나 백년을 넘게 살고 가셨다. 나는 2010년부터 6년 쯤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1년 정도 친정엄마와 시어머니 모두 한 지붕 아래 함께 살았다. 그때 십 대였던 아이 둘을 포함해 우리 가족의 나이를 합산하면 300살이 넘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평균연령을 높여 주던 시어머니는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시어머니는 연세에 비해 매우 건강한 편이었지만, 알고 있던 것들을 자꾸 잊어버리는 일은 불가항력이었다. 드디어는 집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당신의 막내아들만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런 시어머니를 종종 시험에 들게 했다.


밥을 먹으려고 식탁에 둘러앉아서는 남편을 가리키며 어머니에게 물었다. 그다지 유창하지도 않으면서 애써 사투리를 동원한 질문이었다.


“어머니, 이 사람 누겐지 알아집니까?”

“이 사라암? 막내아들이주게.”

“어머니, 게믄 나는 누겐지 알아지쿠가?”

“모르켜.”

“막내아들 각시 마씸.”

“각시라? 게난 각시가 이서났구나.”

“예.”

“아이고, 착허다게. 각시 행 살아사주게.”

“내일 또 물어보쿠다예~. 잊어불지 맙서예~.”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어머니는 당신의 막내아들만 기억했다.


어머니의 백 세 생신이 지난 어느 날은 이렇게 물었다.


“어머니, 어머니 나이 멫 살인지 알아져 마씸?”

“나? 나이? 이제 모르켜.”

“어머니, 백 살 마씸.”

“백사알? 아이고, 아니라 게. 사람은 백 살씩 못 살메.”

“경해도 어머니는 백 살 마씸.”

“아니라, 경 안 된. 사람이 경허믄 죽지. 어떵 살아지나?”


사람은 백 년을 살 수가 없다는 말은 의미심장했다. 들을 때도 인상적이었고, 앞으로도 내게 오래 남아있을 말이다. 인간의 기대수명이 150살을 내다보는 시대라고 해도, 사람은 백 살을 살 수 없다는 그 말을 이길 수는 없을 것 같다.


실제로 어머니는 사람은 그렇게까지 오래 살 수 없다는 나이를 넘기고 2019년까지 사셨다.


백 년을 사는 동안, 제 아무리 개인적인 삶이라 할지라도 역사를 비껴갈 수는 없는 일이다. 한 세기의 역사를 관통하고도 살아남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슬픈 존재가 된다. 그때에 이르러 자기의 역사를 지우거나 잊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그게 자신을 지키는 최후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어머니와 동시대를 살았던 거의 대부분이 4.3의 상처를 갖고 있다. 어머니도 그랬다. 그때 죽은 어떤 가족에 대한 기억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남편 집안의 사람들은 제법 오랫동안 연좌제에 묶여 고통을 당했다.


상실과 슬픔 외의 시간은 지독한 노동으로 채워진 삶이었다.


내가 우리 할머니와 아버지의 생애에 대해서 매우 불완전한 화자인 것 이상으로, 시어머니에 대해서는 몇 걸음이나 더 물러선 아주 초라한 관찰자일 수밖에 없다. 나의 눈에 어머니는 그저 그림 같은 존재였다. 고부갈등 같은 게 성립될 수조차 없는 간극이 그녀와 나 사이에 있었다. 우리가 무엇을 놓고 갈등할 수 있을까. 그녀는 함께 지내는 동안 내내 그림 같았다.


가만히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았고, 창밖으로 부는 바람을 보았고, 어두워지면 잠자리에 들었다.


백년의 시간을 뚫고 온 한 여자는 상실과 망각 사이에서 점차로 흐릿해져갔다.


#시어머니 #백세시대 #가족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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