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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아침 Oct 13. 2024

아버지 3 - 아버지의 세계 바깥으로

아버지의 세계 바깥으로


아버지는 사전 예찬론자였다. 그는 새 학년이 될 때면 사전을 선물했다. 함께 서점에 가서 국어사전, 영어사전, 옥편 같은 걸 골라주었다. 옥편 사용법, 영어 사전 사용법도 그에게서 배웠다. 사전 사용법이라는 것은, 단어들의 배열 원칙과 질서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는 나에게 그런 원리를 가르쳐 주는 걸 좋아했던 거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아버지와 함께 영어 교과서 예습을 했다. 아버지는 군대에 있을 때 미국에 체류했던 적이 있다. 수십 년 전의 그 기억을 되살려내서 그는 나에게 영어의 어순과 문법적 규칙 같은 걸 가르쳐주었다. 


청계천에 헌책방 거리가 있을 때, 그곳에 데려가 세계문학전집을 사준 것도 아버지였다. 서울로 이사 와서, 우리는 지방 출신들답게 서울 사람들은 가지 않는다는 서울의 명소들을 차례차례 도장 깨기 하듯 다녔다. 한강 유람선을 탔고, 63빌딩에 갔다. 남산타워도 가고, 종로에서 광화문을 거쳐 인사동까지 투어도 했다. 그리고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 들어섰다. 청계천 헌책방은 충격적이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책들은 처음 보았다. 그 책 무더기 속에서 사고 싶은 책을 골라내는 사람들, 그 책이 어디인지 찾아내는 책방 주인들, 그리고 그런 청계천을 이미 잘 알고 있던 아버지, 그곳에 있는 모두가 놀라웠다. 이게 서울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사주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세계문학전집도 다 읽지 못한 나는 백과사전 같은 건 조금도 욕심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책을 읽는 아이라는 사실을 흐뭇해했다. 


그렇지만 내가 세계 바깥을 읽는 일은 썩 내켜하지는 않았다. 


나는 만화책을 읽으려고 했고, 아버지는 만화책만큼은 시간을 정해두고 읽으라고 제한했다. 나는 야사를 읽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그런 독서는 옳지 못하다며 정사 위주의 역사를 읽어야 한다고 했다. 1989년 전교조 탈퇴 각서를 거부해서 해직된 선생님들이 우리들에게 쓴 편지를 읽고 답장을 썼는데, 아버지는 교육자와 노동자는 다르다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다행인 점은, 그런 금지가 반복적으로 강요되지 않았다는 거다. 한 번 혹은 두 번쯤 말해졌다. 그 다음은 그저 침묵이었다. 


대학에 가서는 아버지 보시기에 좋지 아니할 것 같은 책들을 책상 위에 늘어놓고 다녔다. 선배들이 추천한 불온한 책들이었다. 아버지가 지탱해온 세계를 고발하는 책들이었다. 그렇다고 그걸 열심히 읽은 건 아니었다. 다만 이제 이런 것쯤 마음대로 읽어도 되는 어른이 되었다고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뉴스에서 대학생들의 시위가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날, 집에 늦게 들어오거나 외박을 했다. 이런 일들에 대해서 아버지는 심기 불편한 얼굴이었지만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한 번은 늦은 밤, 집안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다가 화장실 변기에 버렸는데, 내 생각에는 아버지가 그것을 알았던 것 같다. 그는 이미 젊은 시절에 담배를 하루에 두 갑 이상씩 피우던 사람이었고, 어느 날 갑자기 금연을 선언했던 사람이다. 나는 그가 술이든 담배든, 어떤 것도 욕망하지 않도록 타고난 사람인 줄 알고 살았다. 하지만 그는, 담배는 죽는 날까지 참는 거라고 엄마에게 말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끝내 자신이 담배를 참음으로써, 끝내 나의 담배에 침묵함으로써, 자기의 세계를 지키고 나의 흡연을 반대했다. 


생각해 보면, 그의 모든 금지는 그런 식이었다. 그는 이미 확립된 세계의 질서를 신봉하는 군인이었다. 그렇지만 ‘사전 바깥’에 대해서 거의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만 자신의 세계를 강력하게 지지했다. 이를 테면, 나는 군인들의 독재가 세상을 망쳤다고 말했지만, 그는 권력을 찬탈한 군인에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유의미한 속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믿는 쪽을 택한 사람이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매우 보수적이었지만, 그것을 나에게 물려주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는 평상시에 거의 말이 없었는데 그의 침묵은 자기 세계를 지키는 방식이기도 했고, 세계 바깥으로 달아나는 자기 딸을 용인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나는 그가 어떤 괴로움 속에서 자신의 시대를 버텨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는 그런 걸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지금의 내 나이 무렵에 나를 만났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가 살아온 삶의 상당 부분을 나는 결코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나는 그와 고작해야 스물일곱 해를 살았을 뿐이다. 내가 아는 아버지의 세계는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세계와 같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만들지 않은 세상과 이미 만들어진 세상, 자신이 만들어가는 세상과 자식인 내가 새롭게 만들어가고자 하는 세상, 그 어떤 것이 낫다고 아무도 쉽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믿는다. 


나는 그가 침묵으로 나를 지지 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이제 안다. 침묵은 쉽지 않다. 나의 아이들에게 나는 침묵하지 못한다. 침묵은 외롭다. 삶이 그런 것처럼. 


#아버지 #담배 #가족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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