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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아침 Oct 13. 2024

아버지 4 - 스키야키와 복숭아 캔 통조림

스키야키와 복숭아 캔 통조림


*스키야키


1928년생의 남자, 8남매의 장남, 무뚝뚝한 경상도 출신의 군인.


이런 캐릭터라면 당연히 편견어린 결론이 가능하다. 아버지는 그 결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여럿의 고모들과 여러 숙모들은 저렇게 고집이 세고 말이 없고 재미가 없는 남자와 어떻게 사느냐고 안타까워했다. 그 안타까움은 크게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런 걱정들의 밑바닥에는 아들이 없는 맏며느리에 대한 ‘지나친’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우리 세 식구 외에는 알지 못하는 모습이 그에게는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아내가 입력한 값만큼 출력을 하는 남자였다.


그는 아내의 수다에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이었고, 옷도 입혀주는 대로 입었다. 혹시라도 외출했을 때 뭐가 묻으면 얼른 화장실로 달려가 재빠르게 얼룩을 지우고 돌아와서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남자였다. 그렇게 하도록 잘 훈련이 되어 있었다. 군인답게.


아내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설거지도 열심히 했다. 냄비에 그려진 꽃무늬가 다 벗겨질 정도였다. 매주 일요일에 대청소를 했는데, 무릎이 아픈 아내를 대신해 열심히 걸레질을 했다. 단 한번도 남성성을 내세우지 않았고, ‘아들’ 없는 삶에 대한 아쉬움을 언급해 본 적도 없다. 딸이 만나게 될 남자에 대한 걱정을 하는 평범한 세 식구의 풍경으로 살았다.


엄마의 입력 값보다 더한 출력을 내는 일도 종종 있었다. 이를 테면, 주말에는 자발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요리를 해주었다.


사실 나는 그가 끓여주는 라면을 먹지 않았다. 우리가 라면을 함께 나눠먹을 수 없을 만큼 험악한 사이어서는 절대 아니다. 단지 그가 레시피대로 끓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물은 정량의 두 배로 넣고, 스프는 반 밖에 넣지 않았다. 짠 음식은 몸에 나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아빠가 끓여준 라면은 내 인생 최악의 라면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라면을 각자 끓여서 함께 먹었다.


그래도 아버지의 스키야키는 맛있었다.


날계란을 곁들여 먹는 일본식 소고기 야채 전골 요리가 스키야키인데, 그가 어떻게 해서 이 요리를 만들 수 있게 되었을까. 짧은 일본 시절에 먹었던 요리였을 거다. 그는 그 옛날에 가보았다는 미국이나 일본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해주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일요일의 요리사로서 최선을 다했다. 맛있는 추억을 우리에게 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와 함께 간 일본 여행에서 스키야키 냄비를 앞에 두고 우리는 그가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회고했다. 나는 어버이날에는 종종 스키야키를 먹는다. 그는 나에게 스키야키의 남자로 남아 있다.


*복숭아 캔 통조림


엄마는 늘 앓아 눕는 사람이었다. 아픈 엄마의 약을 사려고 아빠가 약국에 다녀오는 일이 잦았다. 지금에 와서 엄마는 젊었을 때는 건강했다고 늙어서야 아프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그건 자신의 과거를 보정하고 미화하는 일이다. 그녀는 자주 아팠고, 어린 나는 나쁜 상상을 많이 했다.


엄마가 아플 때면, 아빠는 복숭아 캔 통조림을 사왔다. 내게 심부름을 시키지도 않았고, 꼭 직접 사왔다. 그게 예전에는 귀한 음식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엄마가 그 통조림 하나를 다 비우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기엔 그 안에 든 과육과 과즙이 너무 달았다. 달아도 너무 달았다. 남은 통조림은 내 차지였다.


아픈 엄마는 집안을 우울하게 만들었지만, 남은 통조림은 어린 나를 기쁘게 했다.


생각해 보면 아빠는 엄마가 아플 때마다 어쩔 줄을 몰라 했던 것 같다. 아마 엄마가 특별히 복숭아 통조림을 좋아했던 건 아닐 수도 있다. 지금도 그녀는 단 음식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다. 다만 어느 아픈 날에 복숭아 통조림이 유난히 입에 맞아 컨디션 회복에 도움이 되었고, 요령이 없는 남자의 단순한 사고회로가 그것만을 콕 집어 기억했을 수 있다. 입력한 만큼 출력을 하는, 그래서 그걸 무한반복하게 된 그런 종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늘 평정심을 유지하는 과묵한 남자가 아픈 아내에게 줄 복숭아 캔 통조림을 사려고 마트 진열대를 기웃거리는 그 모습을 나는 혼자서 자주 떠올린다.


아버지는 자기 삶의 로맨스와 낭만을 실현하는 일보다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서도 질서와 규칙을 세우고 그걸 유지하는 일에 평생을 썼다. 그런 점에서 스키야키와 복숭아 캔 통조림은 그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로맨스였다.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엄마와 나를 잘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을 때, 간호를 하던 엄마에게 그는 자꾸만 자기 아내를 불러달라고 했다.


“저기 우리 집사람 좀 오라고 해주세요.”

“내가 당신 집사람이잖아요. 나 여기 있어요.”

“아니, 닮긴 했는데, 우리 집 사람은 젊고 예뻐요.”


죽음이 드리워진 눈동자, 한줌의 빛을 포위했으나 온통 짙은 어둠으로 가득 찬 눈동자, 그러다가 점점 텅 비어버린 눈동자를 갖게 된 남자가 자기 생애를 통틀어 가장 뜨겁게 사랑을 고백한 순간이었다. 젊고 예뻤던 시절에 입력된 것으로부터 한참이나 늦게 도착한 복숭아 맛의 밀어였다.


#아버지 #스키야키 #복숭아 #통조림 #가족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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