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야, 걔 ‘신천지’ 아니야?

전남친과의 첫 만남

by Lazy Yoga Club


“잠깐만 친구야, 걔 ‘신천지’ 아니야…?”


심리 상담을 해준다면서 마음이 약한 친구들을 붙잡아 포교한다던 뉴스가 밥먹듯이 나오던 그 시기에, 그 남자 역시 신천지가 아닐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나는 얼마 없는 친한 친구 ‘현’을 보호하고자 약간의 떨리는 마음을 다 잡고 그를 만나보기로 결정했다. 이상한 성경을 꺼내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우리보다 더 많은 인원을 데려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시뮬레이션을 돌리면서.


그리고 만남 당일.

수많은 걱정이 무색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신천지도 대순진리회도 아닌, 포교활동과는 거리가 한~참 먼 숫기 없는 청년이었다. 어쩐지 피곤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나타난 마누는 커다란 뿔테 안경에 커다란 눈, 낙타같이 긴 속눈썹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비밀스러운 영적 지도자의 기운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지도자보다는... 동네 PC방에서 볼 법한 백수의 바이브가 강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풍성한 머리숱. 나잇대와 다르게 얼굴 면적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염자국(!). 시종일관 어색하고 느릿한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INFP라서 낯가림이 심하다고 한다) 대답은 약간씩 느렸고, 문장은 늘 한 박자 느리게 닿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신의 전문 분야를 말할 때면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묵직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때- 그 속에는 방향을 알고 걷는 사람 특유의 힘이 있었다. 눈빛 역시 은은하게 빛났다. 잘은 모르지만 중심이 단단하게 잡힌 느낌. 첫인상은 평범하게 느껴졌고, 오히려 그 모습이 인상적으로 남았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날 마누에게 타로 상담을 부탁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하는 질문치 고는 좀 많이 무거웠지만, 코로나의 여파로 아가들의 발길이 끊겨 4년간 운영하던 미술교습소를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질문은 많은데 답은 좀처럼 보이지 않아 마음이 복잡한 상태였다. 이 인생을 누구에게 점검받아야 할지, 무엇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날들 중 하나였다.


바짓가랑이라도…

아니 종잇장이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이었지.

그런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혹시 타로 봐줄 수 있어요?

믿지는 않는데 요즘 고민이 있어서요”


그는 잠깐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재미로 한 번 봐드릴게요.”


재미라니 이 자식아.

내 인생이 걸려 있는데.

아 맞다.

나 타로 안 믿지.


카드를 섞는 그의 손은 생각보다 작았다. 화려한 제스처도, 신비로운 연출도 없는 단정한 손짓. 그저 묵묵히 카드를 펼쳐놓고 내가 뽑은 카드를 이리저리 배열하더니 한 장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누가 카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꽤 많은 질문을 한 것 같은데, 그중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카드들을 적어본다.

[ACE of SWORD]

“제가 누나에게 뭔가를 알려준다는데요?”

“뭘요? 저는 요가할 생각이 없는데요? “

“그러게요. 뭘까요.”


[DEATH]

“이건 죽음 카드예요.

지금 하던 것들과 지녔던 가치관을 버리고 새롭게 나아가는

완전히 다른 길을 뜻해요.”


[The High Priestess]

“고위 여사제 카드는

영적인 공부나, 사람을 이끄는 일과 연결되어 있어요. 정신에서 출발하는 일이요.”


완전히 다른 길. 정신에서 출발하는 길…

포교는커녕 밥이나 잘 챙겨 먹는지 모르겠는

한 남자가, 카드 몇 장으로 내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조용히 열어젖히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나의 미래를

그는 카드로 이미 보았을 것이다.

설명을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힌트들을 보며

나는 애써 상황을 외면했다.

앞으로의 선택은 온전한 내 몫이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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