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래
타로를 보고 난 뒤 나의 하루는 마누를 생각할 새도 없이 바쁘게 흘러갔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때문에 수업을 이어나가기가 힘들어졌고, 더 이상 붙잡을 힘이 없었던 나는 4년간 운영하던 교습소를 내려놓기로 했다. 정든 아이들과의 아쉬움 가득한 인사도 잠시뿐. 폐업 준비를 모두 끝내고 나니 또다시 그때 보았던 타로카드의 내용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그럴 리 없어.
내가 요가를 배울 리 없어.’
그날 이후 나는 성실하고 부정적인 청개구리가 되었다. 어찌나 성실했는지, 요가는 절대 아닐 거라는 다짐을 하며 클라이밍을 다녔다. 벽을 타고 올라가며 생각했다. 그래~ 나는 이런 게 어울려! 3개월 뒤엔 검도도 배웠다. 도복을 입고 죽도를 휘두르며 생각했다. 그래~ 요가보다 분명하고 좋네!
그러나 청개구리는 이미 머리로 알고 있었다. 자신은 사실 타로 카드를 엄청나게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했던가. 관심 가는 운동을 모두 해 본 개구리의 마음은 고작 종이쪼가리 따위에 내 인생을 맡기지 않을 것- 에서 어느 순간부턴, 타로가 진짜 내 인생을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마누는 이런 나의 발버둥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클라이밍을 할 때도, 검도를 할 때도, 요가만은 절대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 와중에 단 한 번도 요가를 해보라고 권하지 않았다. 마치 내가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알고 있는 사람처럼. 흥. 재수 없어.
결국, 나는 현을 따라 집 근처 요가원을 찾아갔다. 무려 현실 부정 5개월 만이었다. 요가할 결심을 세웠다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웠다. 다른 운동처럼 좋은지 아닌지는 해보면 알겠지.
첫 수업 날, 나는 세 번 놀랐다.
한 번은 내 몸의 어마무시한 뻣뻣함에.
두 번은 생각보다 어려운 자세에.
세 번은 외계어 같은 자세 이름에…
선생님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자세를 하는 내 모습은 결코 부드럽지 못했다.
오랫동안 앉아서 생활하던 내 뒷다리는 펴질 기미가 안보였고, 모든 자세 안에서 관절의 가동범위는 극히 좁았으며 오랜만에 힘을 쓰는 근육은 춤을 추듯 후들후들 난리 부르스를 떨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수업이 끝났을 때 올라오는 후련함이 있었다. 클라이밍과 검도가 끝났을 때 느꼈던 시원함과는 달랐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딘가가 탁-! 풀린듯한 느낌. 뭔가... 뭔가 다른데. 이게 뭐지?
‘한 번만 더 해볼까’
그 한 번이 등록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렇게 뭐에 홀린 것처럼 카드를 긁었다.
마누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흡족하게 웃을 뿐.
흥. 재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