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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채팅방

오픈 방에서 나의 존재

by 레이지살롱


모르는 사람들과의 오픈 채팅방이라니, 나는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들어가 있는 오픈 채팅방은 7개이다. 처음엔 아파트 주민 단체방을 시작으로 스터디 모임, 모닝챌린지방, 각종 정보 모임방이 여러 개가 되었다. 하루 종일 실시간으로 New가 뜨는 방엔 정신없어서 나오기도 했다. 지금도 나올까 말까 고민되는 방이 몇 개 있지만 그렇게라도 얻는 정보를 포기 못해 들어가 있는데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오픈 채팅방은 익명성을 바탕으로 하기에 어떤 방에서는 휘파람 프로도로, 어떤 방에서는 000동 주민, 어떤 방에서는 SNS상의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년에 공공기관에서 글쓰기 배움을 할 때는 실명으로 강의를 듣고 실명으로 오픈 채팅방에 들어갔는데 한동안 내 이름이 어색하게 느껴졌었다.


회사에서도 영어 이름을 썼기에 10년간 지내면서 하루 종일 회사 사람들에게 영어 이름으로 불렸고, 현실 친구를 만나는 시간보다 회사에서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월등히 많았기에 영어 이름이 익숙했다. 휴직한 지금은 SNS상의 이름으로 살고 있다. 현실 사람을 만나는 시간보다 SNS 친구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훨씬 많아지고 있어서 나의 정체성에 혼동이 오기도 한다. 사람이 어떻게 불리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데 SNS상에서 나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오픈 채팅방도 내가 어떤 이름으로 들어가 있느냐에 따라 말 한마디 안 하는 방과 계속 말하며 나의 존재를 알리게 되는 방이 있다. 물론 나갈까 말까 고민하는 방은 나의 존재감이 전혀 없는 방이다. 내가 1/1500명 중에 하나인 존재인데 내가 사라져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방이다. 그런 방은 보통 정보를 위해 남아있다. 하지만 의미 없는 '읽지 않은 카톡수'가 늘어남에 따라 피로도도 올라가는데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오늘 아침에도 '삭제' 버튼을 누르려다가 일단 두었다. 무슨 미련이 남는다고 떠나질 못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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