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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우리 가족에게 주는 것

얼른 여름이 왔으면 좋겠다.

by 레이지살롱

지난 주말, 속초로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계속된 코로나에 자연스레 주말엔 집에서만 보냈고 아이는 방학중에도 계속 돌봄 교실에 나가다 보니 3월 개학 전에 아이에게 방학이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코로나 전 여름부터 우리 가족은 동해바다에 푹 빠져 있었는데 여름이 되면 주말에 무슨 일이 없다면 무조건 새벽부터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새벽 6시부터 일어나 달리면 9-10시쯤 도착해서 바다 제일 앞자리 파라솔 자리를 빌려 하루 종일 신나게 놀고 4-5시쯤 정리를 하고 저녁 먹고 집으로 올라오면 밤 11-12시쯤 되는 당일치기 동해 여정을 즐기곤 했다. 여름을 더 잘 즐기고 싶어서 일치감치 파라솔과 비치 체어도 갖추고 바다를 맘껏 즐길 준비도 해 놓았다.


재작년 남편이 이직하며 직장의 스트레스가 컸었는데 동해 바다의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을 알게 된 이후로는 평일에 쌓인 스트레스를 날리기 위해 주말엔 남편에게 동해는 달려야 하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아이에게 바다는 놀이터보다 더 좋은 곳이 었는데 날이 좋으면 하루 종일 물속에 있었고 날이 추우면 하루 종일 삽 하나로 모래를 파고 놀았다. 외동이라 매번 놀아달라고 하는 아이가 바다에서는 혼자 삽 하나로 몇 시간을 지치지 않고 놀았다. 나와 남편은 파란 바다를 보며 온전히 쉴 수 있는 공간이었고 나에겐 그리운 시드니의 맨리 비치가 생각나기도 한 바다였다. 그렇게 동해 바다는 우리에게 각각 치유의 바다였다.


우리가 동해를 좋아하는 이유 중 다른 하나는 조개이다. 서해에서는 여러 번 잘 나온다는 곳에 가봐도 한두 시간 겨우 찾아봐야 2-3개 겨우 구경하는데 동해에선 물놀이하다가 발에 잡히는 게 조개였다. 그리고 갯벌 진흙 속의 조개가 아니라 모래 속에 있던 조개들이라 해감도 크게 필요가 없다. 아이는 조개를 먹진 않지만 내면에 사냥 본능이 있는 건지 조개 잡는 건 무지 좋아한다. 물놀이와 모래놀이도 좋아하지만 아이가 동해를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조개 잡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작년엔 집에 놀러 온 친구들에게 아이가 잡은 조개로 봉골레 파스타와 조개찜을 대접하기도 했다.


이렇게 여름에 가면 하루 종일 맘껏 놀 수 있는 바다인데 겨울이 되니 선뜻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말에 날이 좀 풀려 영하권에서 벗어나니 바다에서 잠시 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갔다. 보통 물놀이는 양양, 삼척 쪽을 선호하지만 지난여름 갔던 속초 여행이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도 속초로 다녀왔다. 날이 풀렸더라도 겨울 바다는 역시나 추웠다. 하지만 삽하나 와 캠핑의자를 챙겨 자리 잡고 앉아서 아이는 또 모래 구덩이를 열심히 파고 우리는 자리에 앉아서 바다와 모래 파는 아이를 바라보며 차가운 바다를 즐겼다. 나와 남편은 바람이 불어 옷을 꽁꽁 싸매고 앉아 있는데 아이는 패딩도 벗어던지고 2시간 동안 앉지도 않고 모래 구덩이를 파는데 신이 났다. 말리지 않으면 하루 종일 팔 것만 같았다.


바다에 못 들어갈 땐 모래를 매번 파고 있으니 일반 플라스틱 모래놀이용 삽은 한계가 있어서 조금 크고 튼튼한 삽을 작년에 사주었는데 바닷가 갈 땐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모래 구덩이를 판다고 누가 뭘 주는 것도 아닌데, 아이는 항상 신이 나서 모래 구덩이를 파고 자신의 아지트를 만들며 뿌듯해하고 좋아한다. 이번 여행에도 어김없이 모래 구덩이를 파고 혼자 만족해했다. 돌아갈 때는 다시 구멍을 메꿔 원래대로 해 놓고 돌아오니 돈이 들지도, 옷이 젖지도 않는 너무 좋은 놀이터다. 이번엔 우리가 추워서 더 파고 싶은 아이를 말려 데리고 왔지만, 얼른 따뜻한 여름이 되어 원하는데로 하루종일 팔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답답한 마스크도 벗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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