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 호미화방

by 레이지살롱

20년 전 홍대 앞 호미화방에 가면 언제나 두근두근 설렜었다. 그곳엔 다양한 컬러의 물감과 유명한 화가 이름이 붙은 가지각색 사이즈의 붓들과 온갖 종류의 미술 용품들이 모두 모여있다. 화방 통로마다 언제든 도와줄 준비가 되신 분들이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달라고 외쳤고 그림에 꿈을 품고 방문한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곳이었다. 사고 싶은 재료 들은 많았으나 돈을 잘 쓸 줄 몰랐던 나는 몇천 원, 몇만 원 투자해서 더 아름다운 색을 사서 발라볼 생각 못하고 상상 속으로만 색을 칠했다. 머 하나 사는데도 손을 벌벌 떨며 사질 못했고, 겨우 필요한 것들만 사러 가면서도 다양한 제품들을 구경하는 재미로 미술 재료 살일이 있으면 신나서 방문하곤 했다.


호미화방에 드나들면 뭐라도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홍대생도 아니고, 그림을 꾸준히 그리지도 않으면서 화방에 방문할 때마다 그냥 뭔가 될것 같았다. 하지만 회사다니며 서서히 화방 발길을 끊었고 요즘은 디지털드로잉이 더 익숙해 있었다. 다시 재료를 사용하려 아크릴물감과 붓, 오일파스텔 등을 꺼냈는데 붓이 다 갈라져서 쓸만한 게 없었다. 얼마 전 우연히도 '나 혼자 산다'에서 호미화방이 나온 걸 보니 잊고 있던 첫사랑이 생각났던 것처럼 예전의 설레었던 감정이 되살아 난 것 같았다.


드디어 어제 호미화방을 다시 방문했다. 마지막 방문한 지 10년이나 지났지만 호미화방은 여전히 그자리에 있었다. 예전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간판이 바뀌었고, 내부는 여전히 밝고 다양한 제품들과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홍대 앞 분위기와 건물들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 같은 골목 안 호미화방이 같은 자리에 건재해 있는 모습을 보니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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