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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지살롱 Sep 27. 2023

여름밤 친구들


어느 날부턴가 매미소리가 사라졌다. 낮에는 아직도 덥지만, 이미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 ‘백로’가 지났다. 지난주에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시기인 ‘추분’도 지나고 아침저녁에 겉옷을 준비해야 할 만큼 날씨가 쌀쌀하다. 여름의 매미의 울음소리는 심리적으로 더 덥게 만든다. 가뜩이나 더워 죽겠는데 맴맴소리가 귓가를 찌르면 불쾌지수가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끄럽게 울던 매미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는 작은 연못들이 많다. 비가 많이 오면 연못에 물이 고이지만 무더위가 지속되면 물이 말라버리는데 신기하게도 아파트에 개구리울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일부러 연못 주변에 인공적으로 소리를 켜 놓은 줄 알았다. 어느 날 아파트단지 연못에서 아이들이 개구리알을 잡는 것을 보고 나서야 개구리도 이웃으로 받아들였다. 몇 년 전에는 개구리소리를 못 참은 한 주민이 연못에 약을 풀어서 개구리를 말살시켰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이사 왔을 때는 아파트에 목청이 떠나가라 우는 날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밤낮으로 또 우는 친구들 중 하나는 귀뚜라미다. 창문을 열어 놓으면 귀옆에서 울고 있는 듯 가까이 들려 집에 들어와 있는 건 아닐까 착각한 적이 여러 번 있다. 그럴 때면 귀를 창가에 가까이대어 들어보고 밖에서 나는 소리임을 확인하고 나서야 하던 일을 계속한다. 귀뚜라미 말고도 츳츳츳츳- 하는 소리도 들리고, 여러 종류의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가까이하기엔 징그럽지만 풀숲에서 나는 소리는 각박한 아파트 생활에 활기를 불어준다. 다행스럽게도 귀뚜라미 친구들은 가을까지도 존재한다.


앞에 이야기한 여름밤 친구들은 모두 겨울에는 겨울잠을 자는 친구들이다. 여름밤에 그렇게 목 놓아 울다가 찬바람에 사라지는 친구들이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사실 매미는 밤에 우는 친구는 아닌데, 도시의 인공조명으로 인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여름에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서운한 마음이 들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엔 무심히 지나쳤던 자연의 현상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귀뚜라미의 작은 날개 부딪히는 소리가 어떻게 저렇게 크고 청량하게 날까. 개구리는 아파트 연못에서 어떻게 살아 내고 있을까. 아파트는 매년 분기마다 소독약을 뿌리는데도 매미나 귀뚜라미같이 작은 벌레들은 어떻게 살아낼까. 고귀한 그들의 생명력에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이가 들고 손자가 생겨났을 때, '할머니가 어릴 땐 귀뚜라미 소리를 들었어.' 라며 회상하는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후 변화에 이상기온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며 당연한 것들이 당연시되지 않는 날이 올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올해도 꽤 더운 여름을 지냈지만 기후학자들은 매년 기온이 올라가기에 올해가 제일 시원한 여름이라고 했다.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이 계절을 기다렸지만, 지나간 더위가 왠지 아쉽게만 느껴진다. 여름이면 매년 찾아오는 친구들을 내년에도 또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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