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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지살롱 Oct 21. 2023

자연의 언어 엿듣기

인간을 축복의 길이나 지혜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몇 가지 태고적부터의 방법에 덧붙일 만한 새로운 것은 없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단순하고 소박한 방법의 하나는 자연에 대해 경이감을 갖고 가슴 설레며 그 자연의 언어를 엿듣는 일이다.

-헤르만 헤세 '나비' 발췌-


`데미안`으로 유명한 작가 헤르만 헤세는 나비를 꽃에서 꽃으로 꿀도 모으지 않고 빈둥거리는 방랑자이며, 날개달린 꽃으로 표현했다. 그는 유년기부터 나비에 관심이 많았고 40세까지 나비를 수집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여러작품 중 나비에 관한 글들을 모아서 낸 책 `나비`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을 읽으며 그가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을 알고 관찰하며 사유했기 때문에 글을 잘 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헤세에 의하면 가장 단순하고 소박한 방법의 하나가 자연의 언어를 엿듣는 것이라 했는데 도시에 사는 바쁜 현대인에게는 복잡하고 시간이 꽤 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자연과 마주한다는 것은 도심을 떠나 시간의 여유를 갖게 될때인데 휴가라도 떠나야 그제서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내가 꽃과 식물의 색채에 관심을 갖게 된 일의 기억을 돌이켜 보면 대자연에서 자연을 만났을 때였다. 숲과 바다, 자연에서 만난 화려한 색감의 동식물을 보며 자연에서 온 색의 다채로움에 위대함을 느꼈다. 꽃과 식물 곤충 그리고 동물들의 선명하고 화려한 색채가 자연에서 어디서에 오는걸까. 무당벌레는 무얼 먹고 저런 선명한 빨간색에 주황

색 또는 흰색 도트 문양을 낼 수 있을까. 꽃과 풀은 물과 흙의 영양분과 바람만으로 어떻게 그런 다채로운 색상을 가질 수 있을까. 얼룩말은 어떻게 하얗고 까만 털이 기하학적인 패턴으로 나올 수 있을까. 88 나비는 어떻게 날개에 숫자 88을 그래픽으로 새긴 것 같은 모양을 갖고 있을까. 늘 궁금하고 신기하기만 하다. 하지만 도심에 살면서 일상에서 자연을 만나기는 어려워 자연의 언어에 귀 기울여 본적이 언제 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마주하는 식물도 아파트나 도로에서 흔히 보는 가로수와 획일적으로 심어놓은 화단의 꽃과 나무들, 마주하는 동물들은 산책 나온 반려견 또는 길고양이들이 대부분이다. 새는 비둘기와 까치, 까마귀, 참새로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시와 비슷한 회색빛으로 동화된 동물들만이 우리 곁에 있다. 풍부한 자연과 함께하지 못한 삶은 단조롭고 풍요롭지 못하다.


자연에 대한 갈망이 생기고 나니 몇 년 전 부터 캠핑을 다니기 시작했다. 캠핑을 가더라도 대자연이 아닌 사람들이 가꿔놓은 캠핑장이긴 하지만 캠핑장 뒤쪽은 개발이 안된 산책길들이 있어 그길에서 사마귀나 숲에 사는 곤충들이나 계곡에서 작은 물고기들을 만나기도 한다. 가을에 밤나무나 감나무가 주렁 주렁 매달려 있는 캠핑장에 가서 울긋 불긋 잘 익은 감나무를 보면 마음도 풍요로워 짐을 느낀다.

아이가 태어난 현대사회는 내가 어릴때 보다 더 자연을 접하기 어려워졌다. 그대신 책과 영상에서 자연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영상이나 책으로 보는 자연은 살아 있지 않다. 직접만나서 보고 들으며 자연을 느껴야 한다. 하지만 도심에서 직접 만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해 일상에서 자연의 언어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도 헤세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스팔트 사이를 비집고 피어난 민들레꽃의 질긴 생명력을, 아이들이 흘린 과자 가루를 들고 줄지어 집으로 옮기고 있는 개미 무리를 보면서도 아이가 그들의 언어를 엿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아이 학교를 데려다주며 아파트 화단을 날아가는 노랑나비를 가끔 만나게 되는데 햇살이 비춰 더 투명한 노란빛으로 보일 때는 영험한 무언가로 보이기도 하다. 엇박자로 위로 아래로 날개를 흔들며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고 있으면 자연의 음악에 맞춰 왈츠를 추며 날아다니는 꽃 같다. 일상에서 자연의 언어를 엿듣는 연습을 해본다.


쿵 짝짝 쿵 짝짝 쿵 짝짝 쿵 짝짝


나비는 먹기 위해서나 늙어가기 위해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랑하고 생산하기 위해 살아간다. 그러기 위해서 그것은 비할 데 없이 화려한 의상을 걸치고 절단 선과 색채 속에서, 비늘과 솜털 속에서 다채롭고 정제된 언어로 그 존재의 비밀을 표현하는, 자기 몸보다 몇 배나 큰 날개를 달고 있다. 나비는 보다 강렬하게

생존하기 위해, 번식의 축제를 보다 더 빛내어 이성을 매혹시키고 유혹하기 위해 생존한다. 이러한 나비와 그 화려함의 의미는 모든 시대 모든 민족에 의해 느껴진 단순하고도 명백한 자연의 개방이다.

-헤르만 헤세 '나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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