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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지살롱 Dec 27. 2023

피아노 교습소

나는 손가락이 길고 가늘다. 그 덕분에 어렸을 때 피아노 좀 쳤겠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보았으나, 배우지 못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언젠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늘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노래방을 가면 박자를 잘 놓치는 박치였고 음악 쪽에 재능이 없는 걸 알게 된 후로는 포기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늦었으니 아이는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피아노에 전혀 관심 없어하며 학원을 거부했다. 억지로 보내기는 어려우니 단념하고 있었다. 하지만 Two cellos라는 외국 뮤지션들의 첼로 음악을 듣고는 아이가 첼로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첼로 학원보다는 피아노 학원의 접근성이 좋으니, 악보도 보고 하려면 기본부터 배우라고 피아노 학원으로 먼저 아이를 꼬셨는데 평소에 피아노를 배워보고 싶다는 걸 알던 남편에 떠밀려 나까지 등록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피아노 있다고 하면 부잣집으로 생각했다. 그 큰 피아노가 집에 있으려면 집이 꽤 커야 했고 피아노 한대값이 그 당시에도 몇백만 원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하고 싶었지만, 배우지 못했던 피아노를 성인이 되고 아이를 낳고서야 시작하다니 기분이 좀 이상했다. 피아노는 마음속에 계속 있었지만 행하기 어려웠는데, 막상 학원을 등록하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고 치면 되는 것이었다. 특별히 대회 나가는 것도, 직업에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니니 부담이 되긴 하지만 어쨌든 시작했으니 곡 3개 정도는 마스터하고 생각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누군가 한 달에 한곡을 목표로 피아노를 연습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한곡이라도 제대로 칠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


요즘 날도 추워지고 몸도 마음도 움츠러 들어 새로 배우는 것에 흥미가 떨어져 있던 참이었는데, 막상 시작하려니 조금 귀찮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배움은 곧 돈이고, 비싼 피아노 학원비를 선뜻 내주는 남편에게 고마워 감사한 마음으로 피아노를 시작했다. 피아노 학원은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운영된다. 우리 아파트상가에 피아노 학원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은 성인반은 없고 집에서 가까운 한 곳에서 성인반도 운영되고 있었다. 그런데 낮에는 아이들도 많고 성인이 있으면 아이들이 집중이 안된다고 하며 6시부터 가능하다고 했다. 아이랑 둘이 같은 시간에 듣지만, 다른 선생님과 다른 방에서 배울 거라고 했다. 아이에게 이야기해 줬는데,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지 계속 물어봤다. 나도 전화로만 상담하고 결제할 때 문 앞에 원장실에서만 상담해서 안에는 잘 보진 못해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다. 나중에 보니 조그만 방에 피아노가 하나씩 놓여 있는 방이 여러 개 있었기에 같이 배우지 않는 것이었다.


드디어 아이와 첫 수업을 다녀왔다. 가기 전에 아이는 꽤 떨려했다. 항상 처음 가거나 낯선 곳을 갈 때 힘들어 하지만 엄마와 가니 긴장감은 덜해 보였다. 둘 다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방문했는데 원장선생님이 아이는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선생님에게 안내해 주시고 나는 간단한 악보를 볼 줄 아는 것을 확인하시고 안쪽에 있는 피아노 방으로 안내해 주셨다. 성인을 위한 피아노교본으로 첫 장부터 오선과 온음표, 이분음표, 4분 음표를 배우고 바로 오른손부터 도레미레도레도부터 시작했다. 떴다 떴다 비행기등 간단한 악보를 보며 치고 연습하고 왔다. 피아노만 있는 작은 방 안에서 어색해하며 도레미파솔파미레도 같은 계이름만 열심히 연습하느라 아이가 뭘 하는지 알 수 없었는데, 집에 오는 길에 아이와 각자 뭘 했는지 이야기했다. 아이는 그 시간대 같이 있던 아이들과 빙고게임도 하고 건반도 쳐봤다고 했다. 나는 흰건반만 쳤는데, 아이는 검은건반만 쳐봤다고 했다. 성인과 어린이는 교재도 다르다. 성인이 진도도 빨리빨리 나가는 것 같다. 아이는 바이엘과 기본 교재들로 진도를 일 년을 나간다고 하는데 빙고게임하다 언제 피아노를 칠까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어느덧 피아노를 배운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왼손으로 화음을 내는 연습을 하고 어제는 낮은 음자리표를 배웠다. 낮은 음자리 표에서는 계이름이 달라지니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양손이 자연스럽게 움직이지 못하고 삐그덕 삐그덕 하고 있다. 피아노를 배우는 동안 나는 교재를 들고 다니며 집에서 책상 위에 손을 얹어 자리 연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는 교재는 학원에 두고 피아노는 학원에 가서만 친다. 학원에서도 나는 시간이 모자라서 조금만 더하고 싶어서 한곡이라도 더 연습을 하고 나오는데, 아이는 책상에 앉아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아이가 멀뚱이 앉아있는 시간도 아까운데, 아이는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눈치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아이는 피아노 학원에 다녀오면 바로 리코더를 분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아직은 어색한 피아노를 하고 오면 마음대로 불 수 있는 리코더로 긴장되었던 마음을 다스리는 것 같다. 나는 양손을 들어가고부터는 피아노 연습에 대한 갈망이 더 커졌다. 결국 디지털 피아노를 주문했다. 엄마가 열심히 연습해서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면 아이도 자극받을까. 언젠가 히사이지조 음악을 멋지게 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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