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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지살롱 Oct 21. 2023

오늘의 감사한 일

어제는 아이와 저녁을 먹다가 아이의 생각이 궁금해 물었다.

"엄마가 매일 감사 일기를 쓰는데 오늘은 어떤 일기를 쓸까 고민이 되네. 너는 오늘 어떤 게 감사해?"

아이는 고민도 없이 웃으며 "엄마가 맛있는 밥을 해준 것에 감사해"라고 대답했다.

이런 기특한 말을 하다니, 그렇다면 오늘의 감사 일기는 단순한 스팸 계란 볶음밥인데도 맛있는 밥이라고 말한 일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이런 아름다운 광경은 매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어떤 날은 그거 말고 다른 거, 특별한 거를 먹고 싶다며 집에 없는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달라며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그날의 기분과 상태에 따라 평범한 볶음밥이 특별해지기도 하는데 아이에게도 어제는 그런 날이었던 것 같다.


어제의 무드에서는 소소한 일상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도서관에서 찾던 책들이 대출 중이 아니라 바로 대출이 가능했고, 점심에는 짜장라면의 물 조절이 적당하여 전보다 더 맛있게 먹었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지만 막힘없이 내가 원하는 데로 이루어졌다. 억지로 짜내지 않아도 모든 게 감사한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일상이 더 소중하고 감사하다.


매일 작은 기록을 감사 일기로 쓰다 보니 벌써 2년째 쓰고 있다. 감사 일기라고 적지만 적힌 일기에는 감사하지 않은 일이 더 많았다. 작은 일도 나의 시선으로 기록하겠다는 의지로 감사 일기를 간단한 그림과 함께 SNS에 올려 공유했는데 일상이 너무 소소해서 적기에 망설여지기도 했다. 어떤 날엔 마음에 드는 연필을 발견한 것이 좋아서 적었고 어떤 날엔 가을에 단풍이 시작하는 걸 처음 발견해적기도 했다. 아이가 침대에서 뛰다가 발가락에 금이 가 깁스를 한 것, 아이 숙제를 봐주다가 꾸물거리며 딴짓하는 아이에게 화가 폭발한 것, 바쁘게 걷다 담장에 장미가 활짝 펴서 보니 5월이었다는 것도 적었다. 초반에는 똑같은 일상에 매일 다른 감사한 일을 찾느라 머리로 짜내는 게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일상을 기록하는 날이 더 많아진 것이다.


기록을 위해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욕심도 생겨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고, 팔로워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쓰고 싶다고 생각하니 나의 일상이 다시 또 평범하게 느껴져서 기록할 거리를 찾지 못해 일주일 내내 일기를 쓰지 못한 날도 있다. 그림도 더 잘 그리고 싶어서 라인으로만 그리다가 색도 칠해보고 다른 스타일도 그려보고 있지만 힘을 주려고 할 때마다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만 같다. 특별한 걸 쓰려니 쓰지를 못하고 이러다 계속 아무것도 안 쓰게 될 것 같아 다시 작은 일상도 기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중요한 건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있는데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신경 쓴 것 같다. 남에게 보여주는 일기를 쓰려고 하니 당연히 단조로운 나의 일상은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다. 내가 좋았고, 감사했고, 신경 쓰였던 일들이 그동안 짧은 일기와 그림들로 표현되어 쌓이니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조금은 특별하게 보였다. SNS에 해시태그를 달아서 팔로워도 조금씩 늘고 있다. 아직 200여 명의 팔로워 중에 광고 계정이 반은 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좋아요'와 공감 댓글에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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