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이 내리쬘 때 텐트를 칠 때면 가끔은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맞는 캠핑의 낭만을 꿈꾼 적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비 오는 날 캠핑을 하고 캠핑 후 젖은 텐트 말리기와 온갖 짐들의 습기를 빼야 하는 ‘우중 캠핑' 뒤처리로 호되게 당한 뒤로는 더 이상 비오는 날의 낭만을 찾지 않게 되었다.
봄과 가을에만 가는 캠핑인데도 야외취침이기 때문에 날씨가 어떨지 몰라 방한용품을 모두 챙기게 된다. 비라도 예정되어 있으면 우천 시를 대비하는 김장비닐과 우비, 습기를 잡아줄 서큘레이터까지 챙겨야 해서 짐이 더 많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주말 친구 가족과 두 달 전에 예약해 놓은 캠핑을 다녀왔다. 일주일전에 비예보가 있어 취소할지 말지 고민했지만 결국 가기로 결정했다. 캠핑장에 미리 양해를 구하고 강수량이 제일 적은 오전에 일찍 도착해 텐트를 치고 짐을 풀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릴 때 텐트를 치기 시작했는데 다 치고 나니 빗줄기가 굵어져 큰 비에 젖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날 마침 캠핑장 근처 시장에서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라 짐을 대충 정리하고 장 보러갔다. 비가 내려 오일장에도 상인들이 거의 없었지만 그 와중에 계란과 손두부, 숯불에 구워 먹을 고등어를 샀는데 저렴하고 퀄리티가 좋아 만족했다. 걱정한것에 비에 나름 성공적인 시작에 뿌듯해하며 같이 간 일행과 부침개도 부쳐먹고 비예보에도 취소하지 않고 잘 버텼다며 서로를 칭찬했다. 비가 오지만 우리는 나름 잘 놀고 있다고 위로를 하며 비 오는 캠핑을 즐겼지만 둘째 날은 종일 내리는 비에 기온이 떨어져 추워졌다. 전날부터 비를 맞은 텐트는 비에 축 늘어졌으며 모든 캠핑살림살이들이 젖고 습기가 가득해
모든 게 축축하게 느껴졌다. 둘째 날 오전부터 날씨에 기분이 영향을 받게 되었다. 날이 너무 추워서 가져온 옷을 다 껴입었는데도 싸늘했다. 밖에 있는 것보다 텐트 안에 전기장판을 틀고 이불 안에 들어가 있어야 따뜻해져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비에 젖은 우비는 말리지 못해 한쪽에 걸려있고, 물건들이 제자리들을 찾지 못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정리되어있지 않은 어지러운 텐트 내부를 보면 마음이 더 심란했다. 하지만 지붕이 있고 사방이 막혀 있어 비가 와도 끄떡없는 방방장이 있어 옆에서 심심하다고 떼쓰는 아이가 없어 다행이었다. 아이들은 눈뜨자마자 방방장에 갔다가 먹을 때만 얼굴을 비춰 끼니만 때우고 다시 방방장으로 돌아갔다. 어른들은 끼니때가 되면 먹을 고민만 하면 되는 단순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다. 캠핑을 가면 가장 좋은 건 먹는 걱정, 자는 걱정만 하면 된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게 제일 큰 걱정거리였으니 그건 자연의 섭리라 바람에 텐트가 잘 견디는 대비만 할 뿐이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바람이 예보보다 적게 불어 텐트가 날아가지 않기만을 바랬다. 그 외에는 먹을 걱정이라 고민의 범위가 적고 단순해서 좋다.
둘째 날 오후가 되니 비가 그치고 다시 해가 조금 나기 시작했다. 고작 이틀 동안 내린 비였지만 비가 오는 내
내 우울감을 느꼈는데 비가 그친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다음날 텐트 철수할 때까지도 비소식이 없는걸 확인하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람이 이렇게 단순한 동물이었나 싶게 날씨 하나로 기분이 달라짐을 느꼈다. 사진으로 보는 우중캠은 낭만이 가득하다. 부침개와 튀김, 막걸리를 떠올리게 하며 하루종일 앉아서 빗소리만 들어도 행복할것만 같다. 하지만 현실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힘들었던 점은 사라지고 사진 속 낭만만이 기억으로 각인되어 추억으로 남는다. 비 오는 날 캠핑을 또 하라면 이제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캠핑 중 비가 오게 되면 또 부침개를 부쳐먹으며 웃으면서 견딜 수는 있다. 다음날 해가 난다는 희망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