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교 다닐 때 수학을 잘 못했고 싫어했다. 루트, 원주율, 사인, 코사인 등이 삶을 살아갈 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온몸으로 거부했고 예체능을 하게 되면서 마음에 평안을 느꼈지만, 수학을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외심을 느낀다. 나랑은 다른 영역이란 생각이 든다. 결혼 전부터 나중에 아이를 낳는다면 수학은 아빠에게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 아이는 수학이라고 할수 없는 더하기 빼기를 하고 있지만 자릿수가 커지면서 암산으로 채점하기 힘들어져 답안지를 보며 채점하고 있다. 아이 또한 두 자리, 세 자리의 덧셈, 뺄셈을 힘들어하고 하기 싫어한다. 하지만 수학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매일 연산문제 2-3장씩은 푸는 연습을 시켜야 한다고 한다.
엄마는 수학을 포기했지만, 아들은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매일 2장씩 수학 문제 풀이를 시키고 있다. 따로 수학학원을 다니지 않고 지난 3개월 아파트 문화센터에서 하는
주산 수업을 일주일에 한 번씩 들은 게 사교육은 전부인데 처음엔 재밌어하더니 숫자가 많아지니 힘들어해서 그마저 그만두고 말았다. 아이는 수학 문제 풀기가 너무 싫다고 한다. 그 맘은 알지만 막상 문제를 풀면 답은 잘 맞는다. 푸는 시간이 오래걸리고 셈 하는 걸 귀찮아 한다. 나도 싫어했던 과목이라 시키는 게 더 어렵다. '너는 학원도 안 다니니 기본적인 연습은 해야 해' 라며 매일 수학 문제를 풀게 하지만 매일 거부하는 아이에게 강요하는 게 쉽지 않다. 급기야는 연산 문제 숙제를 하면서 답안지 보고 베끼다가 걸리고 말았다. 문
제 풀이 과정을 봐주지 못하고 나도 내 작업을 하느라 바빠서 답만 맞춰 줬는데, 어느 날 남편이 답을 맞혀 주면서 아이의 답안지 베끼기는 들통이 나버렸다. 남편은 두 자릿수의 더하기 빼기에 식도 없고 너무나 깨끗하게 푼 문제지를 의심스러워하였지만, 나는 우리 아이가 그럴 아이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아닐 거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남편이 아이에게 어떻게 풀었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얼버무리며 답을 하지 못했다. 내가 제대로 봐주지 못하기도 했지만, 속이고 풀지 않았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웠다. 아들을 철석같이 믿고 있던 엄마는 '우리 아이가 이럴 줄은 몰랐다'며 배신감이 들었다.
배신감이란 단어를 여기에 쓰기엔 사실 조금 무겁다. 배신감이라고 하기엔 그렇고 내 아들은 안 그렇겠거니 했던 엄마의 착각 정도가 맞을지 모르겠다. 답안지 보고 베낀이후로 남편이 아이의 수학 숙제를 들여다 봐주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시간이 나면 봐주긴 했지만, 이제는 내가 제대로 봐주는지 못 미더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빠가 수학을 봐주면서 나는 오히려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 느낌이 들었다. 역시 본인이 잘하는 걸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몸이 거부하는걸 아이에게 시키면서도 맘이 편치 않으니 아이 또한 마찬가지였지 않았을까. 아이가 꾀가 생겨 수학 답지를 베끼기 시작했다고 선배 엄마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베끼는 아이들은 또 베낄 것이기에 답안지 관리를 잘하라는 것이었다. 아이가 답을 본 건 답안지 관리를 못한 엄마의 잘못이라고 한다. 우리 남편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니 엄마가 잘못했나 싶었다. 뒷장에 붙어있던 답안지는 떼어냈지만, 매번 문제 풀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시키는 건 여전히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