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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글쓰기

잘 난 것 하나 없는 나도 사랑하기로 했다.

by 레이지살롱



대학교 때 김점선 화가의 책을 읽고 신선한 충격에 휩싸였다. 왜냐면 나에게 글쓰기란 문예창작과를 나오거나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이 쓰는 '소수의, 글 쓰는 자격을 갖춘 사람' 들이 쓰는 것이라 여겼는데 그때 당시 내가 읽었던 책 속의 화가는 거침없이 본인의 생각을 글로 썼다. 책에는 작가의 삶과 생활을 기록했는데 냉장고에 있는 바나나우유를 가지고도 한 페이지의 글이 있었다. 그 글들이 너무 신선한 날 것 같은 느낌이었고 하나의 소재로도 본인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가가 너무 부러웠다. 그때 느낀 충격은 '글쓰기를 배우지 않은 사람도 글을 쓸 수 있구나, 하지만 이렇게 독특해야(작가 자체가 워낙 개성이 강하고 독특했다) 글을 쓸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동시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글로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의 세계관이 있어야 그림에도 세계관이 표출된다고 믿었는데 그 당시 나는 아무것도 특출 난 게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글을 제대로 쓴 적은 없었고 어딘가에 나의 기록을 남겼다 하면 스스로 창피해서 지우기 일쑤였다. 일기장이나 노트에 적혀 있던 글은 무슨 일이 있을 때나 내 감정이 주체 안될 때 쓰는 글이 대부분이었기에 한두 달 지나거나 일이 년 후에 발견했을 때는 혹시라도 누가 볼까 두려워서 쓴 부분을 찢어 내어 도려 내버렸다. 심지어 싸이월드 노트에 적어 놓았던 글이나 메일함에 저장해 놓았던 메일마저 지워버렸다. 잘나지 못했던 나의 과거가 부끄러웠다. 지우고 나면 항상 남지 않는 나의 기록들이 아쉬웠다. 매번 오늘부터는 기록을 하자는 심경으로 항상 다이어리에 손을 대지만 앞에 1,2월 정도에 글을 끄적거리고 내 생일 표시 정도로 끝내버리곤 했었다. 그런 생활을 반복하다가 요즘 하는 말로 '이번 생은 글렀어' 란 심정으로 아예 다이어리를 쓰는 시도 조차 안 한 지 어언 10여 년 만에 다시 기록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10년 안에는 결혼, 임신, 출산, 육아가 들어가 있는데 그 시기는 나를 지우고 살았던 것 같다. 아이 외에는 다른 기록이 없다.


작년 8-9월부터 다이어리에 하루 기록을 두세 줄씩 남기는 기록을 시작했는데 1년 넘게 하고 있다. 한두 달 지속하다 보니 비록 짧은 몇 줄이었지만 나도 매일 기록이란 걸 남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후 몇 달 후 '아티스트 웨이'란 책을 접하고 매일 아침 글쓰기를 시작했다. 매일 쓰는 글은 정말 다듬어지지 않은 나의 일상과 계획, 소망 또는 그날의 기록이 대부분이지만 쓰다 보면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던 사람이었지'라는 자각을 갖게 된다. 그리고 매일 반복된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어느 부분이 안 되는 사람이고 어느 부분을 못 참는 사람이었는지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 잘하는 걸 발견하는 것보단 내가 못하는 부분의 발견이 더 빨랐던 것 같다. 그래서 보완점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를 찾기 위한 글쓰기의 시작이었고 조금씩 찾는 과정에 있다. 무언가 꾸준히 하질 못하고 금방 질려 버리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오래 붙들고 있는 게 없었는데 지금 내 일생에 최고로 오래 무언가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나 같은 성격의 사람이 글을 쓰기 위한 방법은 작심삼일을 계속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재미를 찾아야 한다. 부족하고 뛰어난 것 없지만 나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이제 조금 쓰는 재미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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