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으른 여행자 Mar 09. 2021

꽃잎의 용기

매화나무 앞에서 울뻔한 날

뒷 숲의 몇 그루 되지 않는 매화나무가 개화를 시작했다. 곧이어 여기저기 군락을 이룬 벚나무와 살구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가뜩이나 몇 그루 되지 않는 매화는 그만 꽃잎을 떨구기 시작할 것이다. 이른 봄의 매화가 유독 반갑고 애틋한 이유다.


긴 겨울을 인내한 끝에 꽃을 피워내는 매화를 사람들은 강인함의 상징이라 말하지만 나는 이렇게 여린 잎을 밀어내고 파르르 떨고 있는 아기 같은 꽃이 눈물겨워 그 앞에서 울 뻔했다. 이 작고 약한 잎은 몇 달, 몇 주도 가지 못하고 곧 땅으로 지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사력을 다 한다.


돌아갈 곳과 때를 알면서 분투하는 순간이 얼마나 아름답고 용감한지, 약함을 알고도 묵묵히 존재하는 것들이 온 숲에서 고요히 아우성치는 봄이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약함을 견디는 일에 대해 그리하여 결국 강해지고 마는 것에 대해 한참 생각했다. 

2021. 3. 9 매화


매거진의 이전글 아름다움과 죽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