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 행복이 정확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편안하다’ 거나 ‘기분 좋다’가 아니라 분명히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어느 날 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졸음을 견디며 이불속에서 책을 읽자니 반쯤 열어둔 창으론 차갑지 않은 바람이 솔솔 불어 들어오고 멀리선 곤충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이 아무것도 아닌 순간에 나는 갑자기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좋다면 좋고 나쁘다면 나쁠 평범한 날 중 하나였다. 행복감은 객관적인 상태와는 상관없는 느낌이라는 걸 다시 한번 알았다. 꼭 바라는 조건이 충족되거나 특별히 좋은 일이 일어나야만 행복한 기분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얼마 전 작고한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 ‘완벽한 날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른 아침에 산책을 마치고 숲에서 벗어나 환하게 쏟아지는 포근한 햇살 속으로 들어선 아주 평범한 순간, 나는 돌연 발작적인 행복감에 사로잡혔다.” 메리 올리버가 말한 발작적 행복감과 내가 느낀 정확한 행복이 어쩌면 비슷한 상태는 아니었을지 감히 생각해본다.
내가 느끼는 행복의 순간은 대개 잔잔한 몸의 감각을 통해 온다. 따뜻한 햇빛 아래를 타박타박 걷다가 부드러운 바람이 뺨을 스칠 때, 오래 일하고 돌아온 밤 노곤한 몸을 뜨거운 물에 담글 때, 목욕 후 마시는 맥주의 시원하고 따끔한 첫 모금... 물론 단순히 기분 좋은 몸의 감각만을 행복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자극적이지 않은 작은 감각마저 놓치지 않고 느낄 만큼 현재에 집중하는 편안한 상태가 아마도 행복의 더 큰 조건 이리라. 내가 생각하는 편안한 상태란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이 제 자리에서 자기 방식대로 조화롭게 존재할 때다. 다른 자리를 기웃거리지 않고 다른 삶을 흉내 내지 않고 내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낄 때다.
그러나 조화롭게 존재한다거나 정확한 행복을 느낀다는 건 사실 좀 거창하다. 나는 일상에서 그저 좋은 기분을 자주 느끼려고 노력한다. 무엇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지 잘 알고 많이 하려한다. 나는 쉽게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다. 카페에서 책 읽는 시간, 커피가 식어가는 걸 아쉬워하면서도 책장 넘기는 손을 멈추지 못하고 집중한다거나, 조용한 도서관에서 이제는 듣기 어려워진, 어르신들이 천천히 신문 넘기는 소리가 들릴 때, 다정한 사람과 같은 곳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을 때도. 내겐 이 모든 순간이 작지만 만족스러운 기쁨이다.
맡은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을 유능한 사회인이라고 부른다면 하루의 틈을 자잘한 순간의 기쁨으로 채울 수 있는 사람 또한 유능한 생활인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새해가 됐다. 올핸 내 생활과 삶에 더 유능해지고 싶다. 좋아하는 것을 알고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는 하루를, 한 해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