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알고 지내던,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던 선배 한 명이 10년 넘게 내 욕을 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날, 나는 어안이 벙벙해 울지도 못했다. 매일 연락하는 절친 관계는 아니었지만 곧잘 만나서 고민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나누던 사이였다. ‘그동안 보여준 호의는 모두 거짓이었나? 언니 언니 하며 따르던 나를 얼마나 비웃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와 역겨움 같은 것이 밀려들어 어쩔 줄 모르겠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던 내게 파이널 펀치를 날린 지인의 말도 있었다. “네 주변에 왜 그런 사람들이 꼬이는지 돌아보지 그래.”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던 나는 결국 선배와 선배의 실체를 전해준 지인, 그리고 나를 두 번 울린 지인까지 모두를 연락처에서 지우기에 이르렀다.
억울함과 분노가 사그라들자 혹시 내게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으로 생각이 넘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식의 뒤통수를,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수긍하긴 어려웠지만 그 선배가 이상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정리하고 넘기기도 개운치 않았다.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을 건넨 지인도 오래 지켜보며 느낀 걸 조심스레 얘기했을 터였다.
그러나 고민이 길어질수록 확실해지는 건 틀어진 관계 앞에서 누구의 잘못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단언하기는 어렵다는 사실뿐이었다. 내 경우 서로가 서로에게 크고 작은 실수를 주고받으며 살고 있었다. 선배와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고 선배의 기만을 이해하게 된 건 아니지만 나 또한 또렷이 설명하기 어려운 악의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이 있었을 것이다. 여전히 개운치 않은 결론이었지만 언제까지 그의 의중을 헤아리는 데 시간을 쏟을 수는 없었다. 관계는 두 사람 사이의 일이지만 각자의 입장에서만 풀 수 있는 문제도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관계의 데스노트를 만들기에 앞서 내가 사람을 사귀는 방식을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사실이었다. 인간관계를 너무 쉽고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는지, 맞지 않는 상대를 성급히 혹은 별생각 없이 내 삶 속으로 들여놓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면 그 선배의 행동에 힌트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만나고 돌아올 때마다 선배의 말이 나를 칭찬한 건지 디스 한 건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저 그만의 유니크한 화법이라 여겼다. 그와 절친한 사람들 중 나와 친분이 없는 이들이 하나같이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도 꺼림칙할만했지만 나는 선배와 나 사이에 놓인 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우리는 자주 만났지만 진심을 주고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울지도 못하고 토할 것만 같던 그날의 사건으로 내가 배운 건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식의 단조로운 명제가 아니라 관계에도 보살피는 정성과 진심,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평범한 진실이었다. 내게 힘이 되는 관계엔 정성을 더하기로, 이래저래 자신 없거나 내게 안 좋은 시그널을 보내는 관계는 더 이상 유지하지 않기로 했다.
그만 작별해야 할 관계가 보였지만 결단이 쉽지는 않았다. 확실한 가해와 확연한 진상의 경우라면 쉬웠겠지만 상대가 나쁜 사람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교적 무해한 사람끼리 맺은 관계도 때로 유해한 관계로 돌변할 수 있다는 걸 배운 뒤였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드물었다. 이로운 관계과 이롭지 않은 관계가 있을 뿐.
정리해야 할 관계의 유형은 매우 다양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내가 싫어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만나고 돌아서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는 경우가 대개 그랬다.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그 사람과 공유하는 시간을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알 수 있다. 편안한지 불편한지, 용기를 주는지 주눅 들게 하는지, 혹 기운이 달리거나 무리하게 되지는 않는지. 때로는 스스로 해결해야할 문제를 관계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상대도 있는데 이때는 내가 그것을 용인하고 감당할 수 있는지 잘 살펴야한다.
구체적으로 내가 원치 않는 관계를 정리한 방법은 이렇다. 어릴 때처럼 절교선언을 하는 건 어쩐지 유치하고 후폭풍 위험도 있으니 가장 안전하고 실용적인 방법은 역시 서서히 멀어지는 것이다. 이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연락이 올 때 안 받는 것도, 만나자는 제안에 매번 거짓말하기도 괴롭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렇게까지 하며 사람을 밀어내는 것이 옳으냐는 고민이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상대를 마음에서 내보내지 않은 채 물리적으로만 피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상대를 피하려 하기보다 마음에서 내보내는 것이 먼저였다. 마음에서 내보내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신기하게도 정말 멀어져 있곤 했다. (목적을 가지고 집요하게 달라붙는 특수한 상황 제외)
서서히 멀어진다는 건 마음속에서 그 사람에게 내주었던 공간을 서서히 좁혀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상대를 향한 미움이나 원망, 이해할 수 없음이나 죄책감도 결국은 마음속 공간에서 자라나기에 공간을 비우지 않으면 크게든 작게든 신경이 상대를 향해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상대에게 내줬던 공간을 마침내 비운 후론 만나자는 제안에 시간이 없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이건 거짓말도, 상대를 공격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정말 시간이 없을 뿐이다. 그 사람에게 내어줄 시간이.
상대가 잘못됐다거나 싫다는 말을 할 필요도 없다. 시. 간. 이. 없. 어.라고만 말하면 된다. (혹시 뭘 하길래 그렇게 바쁘냐고까지 묻는다면 잠시 침묵해도 된다.) 우리의 시간을 어떻게 쓸지, 특히 누구와 공유할지 결정하는 건 아무리 고민해도 지나치지 않은 주제다. 이렇게 숙고 끝에 만들어진 온화하고 분명한 에너지는 상대에게도 그렇게 전해진다.
관계를 잘 정리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 자주 떠오른 것은 누군가를 막 알아보고 멈칫멈칫 다가갈 때의 그 설렘이었다. 이성 관계가 아니어도 누군가를 발견하고 자신의 삶 안에 들이기로 결정하는 순간은 경이롭다. 과거의 나는 이 경이로움을 의식하지 못했고 내키는 대로 문을 열고 닫았을 것이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며 내 상처에 소금을 뿌렸던 지인의 연락처를 복구하며 생각했다. 분명 애도하고 떠나보내야 할 관계도 있지만 끊어질 듯 말 듯 위태롭게 그러나 끈질기게 이어지는 관계도 분명 있다는 것을. 사람 사이의 일이란 사람의 힘만으로 완전히 다루기는 어렵다는 사실도.